참 묘합니다.
민생지원금이라는 말은 같은데, 군수가 바뀌고 선거가 지나니 풍경도 달라졌습니다. 2025년 초에도 횡성에서 민생지원금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당시 김명기 군정이 지급을 검토했지만 정치권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죠.
그때도 민생은 어려웠습니다. 2024년 말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나라 전체가 뒤숭숭했고, 지역경제도 녹록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민생지원금을 둘러싼 정치권의 반응은 한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26년. 이번에는 장신상 군정이 민생지원금 93억여 원을 예산에 담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군의회에서 전액 삭감됐습니다.
어라? 그때는 안 되고 지금도 안 되는 것이라면 기준이 같은 것일까요. 아니면 군수가 달라져서 이야기가 달라진 것일까요. 물론 재정 상황도 달라졌고 경제 여건도 달라졌습니다. 정책을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질 수도 있죠.
그렇다면 정치권이 설명해주면 됩니다. 그때와 지금 무엇이 달라졌는지 말입니다. 민생지원금이 좋은 정책인지 나쁜 정책인지보다 더 궁금한 것은 이것입니다. 누가 추진하느냐와 관계없이 같은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는가.
이 질문이 나오는 순간 민생지원금은 단순한 20만 원짜리 이야기가 아닙니다. 횡성 정치의 오래된 숙제가 슬며시 얼굴을 내밉니다.
선거 때는 군민이 주인이라고 합니다. 선거가 끝나면 정책을 두고 당이 갈리고, 사람에 따라 평가가 달라집니다. 그러다 다음 선거가 다가오면 또 군민을 찾습니다. 참 정치라는 것이 신기하죠.
이번에도 그렇습니다. 민생지원금이 필요하다는 쪽에서는 어려운 지역경제를 살리려면 돈을 풀어야 한다고 합니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93억 원이 넘는 재정을 투입하려면 ‘중대한 위기’인지부터 객관적으로 따져야 한다고 합니다.
둘 다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그 기준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느냐는 것이겠죠. 횡성시민연대는 민생지원금 부결 이후 ‘민생지원금 부결 주민 삶을 버린 책임 누가 지나’라는 현수막을 내걸었습니다. 공무원노조 자유게시판에도 반응은 제각각입니다. 의회의 결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선심성 예산을 막았다는 의견도 있고, 집행부와 의회가 감정싸움 대신 설득과 합의를 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나옵니다. 역시 횡성답습니다. 한쪽에서는 “왜 못 주느냐”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왜 줘야 하느냐”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군민들이 궁금한 것은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정말 필요한 돈입니까?” 필요하다면 왜 필요한지 알려주면 됩니다. 필요하지 않다면 왜 필요하지 않은지 설명하면 됩니다. 어렵지 않죠.
문제는 정치가 여기에 끼어들면서부터입니다. 어제의 반대 이유와 오늘의 반대 이유가 다르고, 어제의 찬성 논리와 오늘의 찬성 논리도 달라지면 군민들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정책이 바뀐 건가, 사람이 바뀐 건가.”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 민생지원금 논쟁은 돈 20만 원보다 더 큰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횡성의 정치가 정책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는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당이 다르다고 기준이 달라져서는 안 되고, 군수가 바뀌었다고 같은 정책의 가치가 뒤집혀서도 곤란하겠죠.
필요하면 김명기 군정 때도 지원하고 장신상 군정 때도 지원해야 합니다. 반대로 효과가 부족하다면 어느 군수가 추진하든 같은 이유로 신중해야 합니다. 그게 원칙일 겁니다.
물론 이번 의회 결정도 무조건 잘못됐다고 단정할 일은 아닙니다. 93억 원이 넘는 돈을 쓰는 만큼 필요성과 효과를 따져보자는 것은 의회의 당연한 역할이죠. 다만 그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무엇을 기준으로 삭감했는지도 군민에게 설명해야 합니다.
집행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약이고 군정의 핵심사업이라고 해서 예산이 자동으로 통과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 필요한지,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앞으로 얼마나 더 돈이 들어가는지 설명해야 하죠.
결국 군수는 설득하고 의원은 검증해야 합니다. 그리고 군민은 지켜보면 됩니다.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보다 그때는 어떻게 했고 지금은 어떻게 하는지를 말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정확한 정치 평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치인들은 선거가 끝나면 군민들이 다 잊어버릴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군민들이 생각보다 잘 기억합니다. 특히 자기 주머니와 관련된 일은 더 그렇죠. 민생지원금 20만 원을 받았느냐 못 받았느냐도 기억하겠지만, 그보다 누가 어떤 이유로 찬성했고 누가 어떤 이유로 반대했는지도 기억할 겁니다.
그러니 정치권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민생 앞에서는 당보다 원칙을 먼저 보고, 예산 앞에서는 내 편보다 근거를 먼저 보면 됩니다. 민생지원금이 정말 필요하다면 자료를 내놓고 설득하면 됩니다. 필요하지 않다면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하면 됩니다. 그리고 몇 달 뒤 생각이 달라졌다면 왜 달라졌는지도 설명하면 됩니다. 그게 정치의 기본 아닐까요?
민생에는 빨간색도 파란색도 없습니다. 군민의 삶은 선거 때만 중요한 것도 아니죠. 이번 민생지원금 논란이 그래서 조금은 다르게 끝났으면 합니다. 누가 이겼느냐, 누가 졌느냐가 아니라 횡성에서는 앞으로 어떤 기준으로 민생정책을 결정할 것인지 하나라도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기준이 다음 군수가 누구든, 어느 당이 의회 다수당이든 흔들리지 않는다면 더 좋겠죠.
그러면 다음에 또 민생지원금 이야기가 나왔을 때 군민들이 이렇게 묻지 않아도 될 겁니다. “이번에는 어느 당에서 추진하는데요?” 대신 이렇게 물을 수 있겠죠. “그래서 정말 군민에게 필요한 겁니까?”
정치가 그 질문에 같은 기준으로 답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횡성 정치가 조금은 성숙해졌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조만회 기자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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