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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영철 교수 |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씨 아롱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삼백년 원안품은 노적봉 밑에
님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
목포 하면 이난영, 이난영 하면 목포가 생각날 정도로 목포는 이난영을 빼놓고 말할 수 없는 곳이다. 그녀가 부른 <목포의 눈물>(1935)은 나라를 빼앗긴 일제 강점기에 ‘민족의 한’을 담아 노래했기에 이제는 ‘겨레의 노래’라 불러도 손색없다. 그 이유는 노래 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일제 강점기 갓 결혼한 새색시가 부두에서 임과 이별하면서 흘리는 눈물이 임진왜란 당시 노적봉에서 왜적과 싸우기 위해 임과 헤어지면서 흘린 눈물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스승인 김영철 교수(건국대학교 명예교수)에 따르면, 노래 가사인 ‘삼백 년 원한’은 임진왜란의 쓰라린 고통을 표현했기에 노래가 발매되기도 전에 총독부 검열에 걸려 곤혹을 치뤘다고 한다(김영철, 『한국 가요 사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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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1935)은 나라를 빼앗긴 일제 강점기에 ‘민족의 한’을 담아 노래했기에 이제는 ‘겨레의 노래’라 불러도 손색없다. |
만학도 제자(김민섭)와 함께 목포대학교 종합학술대회를 마치고 ‘목포의 눈물 노래비(1969)’를 찾아간 것은 지난 5월 경이었다. 필자는 오래 전인 1989년 여름에 유달산을 찾은 적이 있다. 군대에 가기 전에 자유여행을 하다가 목포의 눈물 노래비를 찾아갔던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노래비는 건재하건만, 변한 건 가녀린 머리털과 잔주름뿐이다. 유달산을 헤맨 끝에 드디어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러나 한국 최초의 노래비인 목포의 눈물 노래비는 초라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일제 강점기 고복수의 <타향살이>와 더불어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은 나라를 빼앗긴 설움과 슬픔을 노래로 달래주는 애절한 국민 연가였다. 이난영을 필두로 목포는 국민가수 남진과 조미미를 낳았다. 훌륭한 선배가 개척한 길을 후배는 따라가는 법이다.
유달산 중턱을 내려간 일행은 다음 행선지인 목포근대역사관으로 갔다. 목포근대역사관은 1관과 2관으로 되어 있다. 목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1관은 옛 일본 영사관 건물로 쓰였던 곳이고, 2관은 일제 수탈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동양척식주식회사를 개명한 건축물이다. 1관에 들어서니, “이곳에서 바다로 들어가는 까닭에 통칭 목포라 한다”(『신증동국여지승람』)라는 기록이 눈에 들어왔다. 목포의 지명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영산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이 목포인 것이다. 또 다른 안내문에는 “총독부는 창씨를 하지 않은 경우, 아동에 대해서는 각급 학교에 입학을 허용하지 않도록 했으며,”라는 글을 볼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만해 한용운 스님은 아내 유숙원과의 사이에 딸(한영숙)을 하나 두었으나, 만해 스님이 창씨개명을 거부하였기에 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딸을 심우장에서 직접 가르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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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1관은 옛 일본 영사관 건물로 쓰였던 곳이고, 2관은 일제 수탈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동양척식주식회사를 개명한 건축물이다. |
일제가 1908년에 설립한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조선 경제를 침탈하기 위해 설립한 특수 회사이다. 1921년에 신축한 이 건물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해군 기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일제가 괴물 회사인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목포에 설립한 까닭은 이곳이 우리나라 최대의 문물집산지였기 때문이다. 특히 목화와 쌀을 일본에 수출했던 목포항은 군산과 함께 식민지 강탈의 대표적인 지역이었다. 1897년 개항 이후 호남 곡창지대에서 반출된 쌀은 호남선 열차를 타고 부두에 부려놓으면 고베(神戶)로 실려갔다.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의 주 업무는 시간이 지날수록 대부금을 위주로 한 금융 업무로 비중이 증가했다. 이곳에서 식민지 친일 지주가 육성된 것이다. 목포 시민은 이러한 치욕의 상징인 동양척식주식회사 철거를 반대하고 일제 강점기 수탈 유적도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하고 있다. 부끄러운 과거도 역사로 보듬고 철저하게 인식할 때 불행한 과거는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리라.
1박 2일 일정으로 목포에 내려온 일행은 첫날의 마지막 여정으로 시화마을로 향했다. 시화마을은 영화 <1987>(2017)를 촬영한 명소이다. 추억여행을 즐기는 답사객이라면, 이곳에 오면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골목마다 아름다운 시구절들이 벽에 적혀있고, 1980년대에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동네는 조용하고 한적하기만 하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이웃간에 정이 넘쳤던 어린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골목길에서 해질 때까지 놀던 친구들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할까? 레트로 감성에 흠뻑 젖은 일행은 다음 행선지인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에 갔다. 그곳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났다. 김대중(1924~2009) 전 대통령은 외딴섬 하의도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투옥 6년, 망명 10년, 가택연금 55회라는 전무후무한 정치적 탄압을 견디고 대한민국을 IMF로부터 벗어나게 해준 고마운 분이다. 2009년 6월 어느 날, 투석을 마친 김 대통령이 간호부장에게 한 말이 인상적이어서 옮겨본다. “간호부장, 우리 집 감나무에 감이 많이 열렸는데 가을 되면 그걸 팔아 원피스 한 벌 사줄게요. 이쁜 걸로.” 김 대통령은 주말에도 잦은 연락을 한 간호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해 감은 그 어느 때보다 탐스러웠는데 대통령은 그걸 보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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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화마을은 영화 <1987>(2017)를 촬영한 명소이다. 추억여행을 즐기는 답사객이라면, 이곳에 오면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
다음날 오후 쯤 되어서 제자와 함께 간 곳은 북교동 예술인 골목이다. 일찍이 김병종은 “목포는 그리움이 파도 깊이 스며드는 항구 도시이자 예술의 땅이다.”라고 했다(김병종, 『화첩기행1』). 그의 말처럼 900미터도 안 되는 좁은 골목길을 걸으면서 한국 근현대예술의 거장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근대극을 가져온 김우진(1897~1926), 최초의 여류 소설가 박화성(1903~1988), 한국 사실주의 연극을 완성한 극작가 차범석(1924~2006), 1960년대 대표적인 한국문학 평론가 김현(1942~1990) 등등. 이들은 저마다 다른 시대에 태어났으나 우리나라 근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문학인이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끈 것은 ‘차범석 작은 도서관’이다. 규모는 작지만 아늑하였다. 차범석 극작가는 우리가 잘 아는 최장수 국민 드라마 『전원일기』를 쓴 사람이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김우진 극작가는 <사의 찬미>를 부른 가수 윤심덕과 함께 1926년 8월 3일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을 타고 귀국 도중에 유서를 남기고 현해탄에 몸을 던진 것으로 유명하다.
목포에는 이들 외에도 소문난 춤꾼 이매방(1927~2015)과 남종화의 거두 남농(南農) 허건(1907~1987)이 있다. 북교동 예술인 골목을 나오다가 ‘이난영&김시스터즈 박물관’을 방문하였다. 흑백 사진으로만 남아 있는 이난영과 김시스터즈의 모습만 봐도 그 옛날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목포에 와서 느낀 것은 문화예술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북교동 골목길 곳곳에서 예향의 도시, 목포를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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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교동 예술인 골목을 나오다가 ‘이난영&김시스터즈 박물관’을 방문하였다. 흑백 사진으로만 남아 있는 이난영과 김시스터즈의 모습만 봐도 그 옛날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
목포는 예로부터 다도해의 관문이었으며, 홍어와 민어, 꼬막 등을 먹을 수 있는 해양 기반 음식문화가 발달한 곳이기도 하다. 대학원 시절 목포 상가집에서 먹은 삭힌 홍어는 절대 잊을 수가 없다. 도시에 살다 목포에 간 대학원생을 손님 대접한다고 주셨으니 안 먹을 수도 없어 먹었는데, 생전 처음 먹어본 톡 쏘는 향은 지금도 생생하다. 또 하나 목포와 관련하여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목포는 세월호가 돌아온 항구”라는 사실이다. 이처럼 목포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지만, 볼거리 먹거리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도시인 것이다.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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