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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작업 안전이 최우선이다.
곽기웅 횡성군농업기술센터 소장 | 승인 2026.10.16|(351호)
곽기웅횡성군농업기술센터 소장kkw3047@korea.kr

나날이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횡성의 들녘을 바라보면 마음이 한없이 푸근해진다. 벼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콩과 팥이 여물어 가는 이 계절은 한 해 농사의 결실이 손에 잡히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푸근한 풍경 뒤에는 늘 마음이 놓이지 않는 걱정이 한켠에 있다. 농업인들이 콤바인으로 벼를 수확하고, 콩과 팥을 털고, 감자를 캐는 작업을 하는 이 시기에 혹시 다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그 걱정이 그저 막연한 우려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어머니의 사고로 배웠다. 3년 전 여름, 여든두 살이던 어머니는 척추가 부서지는 큰 부상을 입고 한 달 가까이 병원 정형외과 병동에 누워 계셨다.

병원 침상에 누운 어머니는 눈은 멀뚱거리고 몸은 움직이지 못한 채, “내가 왜 그때 조심하지 않았을까”만을 되뇌었다. 자식으로서 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사고가 얼마나 갑작스럽고 억울한지, 당사자가 아니면 쉽게 알기 어렵다. 병실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는 몸을 바라보는 일은, 아무리 상상해도 당사자가 겪는 무게와 같지 않다. 사고는 제초제를 살포하다가 일어났다.

2,500평 밭에 고추, 들깨, 콩을 기르던 어머니는 고랑에 난 잡초를 없애기 위해 등에 짊어지는 분무기에 물 20리터를 지고 비탈진 밭을 올라가야 했다. 그날은 비가 내려 바닥이 미끄러웠다. 결국은 넘어졌고, 그 사고로 척추가 무너졌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몇 가지 장면이 선명하다. 만약 해가 쨍하게 떠서 밭흙이 굳은 다음 날 제초제를 쳤더라면, 만약 땅과 신발 바닥이 미끄럽지 않았다면, 제초제를 반만 담았더라면 하고 어머니는 매일 그 가정을 되뇌었고, 다행히 치료를 잘 받아 완쾌되어 지금도 영농을 하고 있다. 그해 치료비 역시 농업인 안전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그 사고는 한 사람의 불운이 아니라, 여러 위험이 한꺼번에 겹친 전형적인 사례였다. 과중한 중량, 비탈진 지형, 비에 젖어 미끄러운 땅, 농약을 지고 살포하는 작업 방식, 그리고 고령으로 인한 균형 감각과 근력 저하, 어머니는 그 모든 위험 속에 노출되어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통계 속 숫자와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농촌진흥청이 발표한 2024년 우리나라 농기계 사고 현황을 보면, 한 해 동안 894건의 사고가 발생했고 73명이 사망했으며 425명이 부상을 입었다. 치사율은 8.2%에 달한다. 농기계종합보험에 가입한 사람들 가운데 1년간 실제로 보험금이 지급된 건수만 14,356건에 이른다.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은 작은 사고까지 포함하면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사고 연령을 보면 더 선명해진다.

50대 4.7%, 60대 21.9%, 70대 41.4%, 80대 이상 32.0%로, 고령 농업인에게 위험이 집중되어 있다. 성별로는 남성 85.5%, 여성 14.5%다. 농업 현장에 오래 몸담아 온 분들일수록 사고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다는 뜻이고, 이는 단순한 개인 부주의가 아니라 작업 방식과 환경이 함께 바뀌어야 풀 수 있는 문제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농촌의 고령화 속에서 오래 농사를 지어 온 이들의 익숙함이 때로는 방심으로 이어질 수 있고, 밭일은 익숙할수록 더 조심해야 하는 일이라는 사실 역시 여기에서 드러난다. 오래 해 왔다는 자신감이 안전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리고 수확 작업이 많은 가을철에는 진드기 매개 감염병을 조심해야 한다. 2024년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진드기 매개 감염병인 쯔쯔가무시증과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 발생 건수는 모두 6,438건, 사망자는 37명에 이른다. 풀밭과 고랑, 수확 현장처럼 피부노출이 불가피한 환경에서 일하는 농업인에게 감염병 역시 현실속의 위험이다.

특히 수확작업이 많은 가을에 특히 조심해야 한다. 긴 바지와 긴 소매, 장화로 피부 노출을 줄이고, 작업이 끝나면 옷을 털고 샤워하며 몸에 진드기가 붙어 있지 않은지 살펴야 한다. 발열이나 발진, 소화기 증상이 나타나면 일찍 병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농업인들이 농작업 중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재해는 농기계에 관한 사고, 낙상사고, 온열질환, 감염병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래서 안전은 늘 종합적으로 떠올려야 한다. 제초제와 농약을 살포할 때는 필요한 최소량만 담아 몸의 부담을 줄이고, 비 오는 날이나 비가 오기 직전에는 미끄러운 밭을 오르는 작업을 미루는 것이 좋다.

경사지에서는 분무기를 등에 지는 방식보다 동력 분무기나 보조 장비를 활용할 수 있는지 살피고, 혼자 작업하기보다 주변에 작업 위치와 시간을 알리는 습관이 필요하다. 미끄럼 방지 밑창의 농작업화, 긴 소매와 장갑, 보호안경 같은 기본 보호 장비도 빼놓을 수 없다.

같은 작업이라도 물을 가득 채운 통을 지고 오르는 방식과 약제 통을 절반만 채워 이동 부담을 줄이는 방식은 몸에 가는 부하가 다르다. 작은 조정이지만, 그 작은 조정이 몸을 지키는 경우가 많다. 가을 농번기인 요즈음에는 수확과 탈곡 현장에서 끼임과 베임, 전복 위험을 먼저 떠올려야 한다. 낫이나 예취기를 사용할 때는 손을 보호할 장갑과 눈을 지킬 보호안경이 기본이다.

콩·팥 탈곡기나 콤바인처럼 회전부와 벨트가 있는 기계 앞에서는 헐렁한 옷과 장갑이 말려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농기계를 경사진 곳에서 움직일 때는 전복 위험을 늘 인지하고, 이동 전 지형을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여기에 더위와 감염병까지 생각하면, 짧은 휴식과 보호 장비가 사실은 가장 긴 사고와 사망을 막는 장치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급히 서두르다 관절 마디를 다치고 기계에 손이나 옷이 말려 들어가고 경사지에서 중심을 잃는 일은 해마다 비슷한 모습으로 반복된다.

그리고 보험이다. 어머니의 사례처럼 농업인 안전보험과 농기계종합보험은 사고가 났을 때 치료를 받고 다시 일어서는 데 실질적인 버팀목이 된다. 다만 보험은 사고를 막는 장치가 아니라, 사고가 났을 때 피해를 덜어 주는 마지막 안전망이다.

사고를 피하는 일은 결국 평소의 습관, 작업 방식의 조정, 보호 장비의 사용, 그리고 함께 일하는 공동체 안의 안전 의식에 달려 있다. 한 사람의 주의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눈길이 함께 있을 때 위험은 더 잘 보인다. 사람의 눈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사고를 멈추는 순간이 생긴다. 농업인의 안전 문제는 결국 누가, 어떤 환경에서, 얼마나 오래 일하는가와 닿아 있다.

마을마다 농기계를 다루고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은 여전히 오래 농사를 지어 온 이들의 몫이 되기 쉽고, 그 과정에서 익숙함은 때로는 방심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밭일은 익숙할수록 더 조심해야 하는 일이다. 반복되는 일상일수록 위험 신호를 가볍게 넘기기 쉽기 때문이다. 같은 제초 작업이라도 물을 가득 채운 분무기를 등에 지고 비탈을 오르는 방식과 약제 통을 절반만 채워 부담을 줄이는 방식은 몸에 가는 부하가 다르다.

비가 온 뒤 흙이 질척할 때 무리하게 작업을 밀어붙이는 대신 하루만 늦춰 마른 뒤 작업하는 선택도 마찬가지다. 작업 전 “오늘 땅이 어떤지, 누가 어디에 있는지, 어느 순간 중단할 것인지”를 함께 확인하는 습관도 필요하다. 이 확인은 번거로운 절차가 아니라 사고를 미리 멈추는 가장 현실적인 장치다. 수확철이면 탈곡기 소리, 콤바인 엔진 소리, 짐을 나르는 트럭 소리가 하루 종일 끊이지 않는다.

그만큼 현장 움직임이 많고, 그만큼 사고의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때 중요한 것은 속도를 조금 늦추더라도 안전을 먼저 보는 태도다. 서둘러 끝내는 일보다 다치지 않고 끝내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 반대로 작업 전 점검을 습관화하고, 보호 장비를 ‘귀찮은 것’이 아니라 ‘기본 장비’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분명히 사고를 줄인다. 한 사람의 주의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눈길이 함께 있을 때 위험은 더 잘 보인다.

마을 안의 누군가가 “오늘은 땅이 미끄럽다”, “이 장비는 점검한 뒤에 쓰자”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 한마디가 사고를 막는다. 또 하나 놓치기 쉬운 부분은 돌봄과 회복이다. 사고를 당한 뒤 치료비를 마련하는 일, 병원 생활을 버티는 일, 다시 일터로 돌아오는 일은 모두 개인에게 큰 부담이다.

농업인 안전보험과 농기계종합보험은 바로 그 지점에서 중요하다. 다만 보험이 만능일 수는 없고, 애초에 사고가 나지 않도록 작업 방식과 환경을 바꾸는 일이 언제나 앞자리에 있어야 한다. 보험에 가입한 뒤 안심하고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 아니라, 안전을 확보한 상태에서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사고를 줄이는 일은 공동체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 다치면 그 가족의 한 해가 흔들리고, 마을의 일손도 흔들린다. 올해 횡성의 들녘은 또 한 번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다. 그 풍경이 해마다 더 푸근하게 이어지려면, 풍요의 뒤편에 있는 안전을 먼저 물어야 한다.

수확의 기쁨은 늘 위험의 그림자 위에서 맺히는 법이지만, 그 그림자의 크기를 줄이는 일까지 농업인의 몫으로만 남겨 둘 필요는 없다. 작업 방식의 작은 조정, 보호 장비의 착용, 서로의 작업 위치를 확인하는 한마디, 그리고 보험의 가입과 갱신 같은 일들이 모여 사고를 줄인다.

어머니처럼 오랫동안 땅을 일궈 온 분들이 더 이상 “왜 그때 조심하지 않았을까”를 되뇌지 않아도 되는 계절, 그것이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그 자체로 큰 수확이 아닐까. 들녘이 황금빛으로 익어 가는 만큼, 그 들녘에서 일하는 농업인 모두 안전한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곽기웅 횡성군농업기술센터 소장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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