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위한 동화에는 동화가 지어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아이들이 바라는 세상, 다음 세대인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전하고자 했던 꿈과 생각이 담겨있다. 우리의 삶과 꿈을 담아온 우리나라 동화를 되짚어본다. <편집자 주>

▲ 마해송 선생님(1905-1966): 암울했던 시기마다 현실을 직시하며 치열하게 자유와 독립, 민주주의의 모습과 희망, 어린이와 어른의 동심을 그렸던 동화작가.
마해송(1905-1966)선생님은 방정환 선생님이 만든 어린이운동단체 ‘색동회’의 멤버였던1920년대부터 돌아가시기 전까지 특히 동화작가로서 아동문학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분이다. ‘상규’가 본명이며 ‘조선 소나무’란 뜻의 해송이란 이름을 동경유학시절부터 계속 썼다.
개성의 부유한 상인집안에서 태어났으나 12세에 강제조혼을 당해 방황했으며, 15세 때 서울을 오가던 통학기차에서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그는 16세에 동경유학을 떠나 조선 유학생들과 신극운동, 어린이운동을 하며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연인과 잠시 일본에서 만났으나 곧 가택 연금되어 2년을 개성에서 지내다, 1924년 연금에서 풀려나 곧장 일본으로 건너가 25년 동안 그곳에서 살게 된다.
작가의 삶과 일치하는 동화작품들
이 시기에 그는 대표작이자 최초의 창작동화라고 평가받는 「바위나리와 아기별」을 썼고 1926년 <<어린이지>>에 발표했다. 외딴 바닷가 넓은 모래벌판 감장돌 위에 외로이 피어난 바위나리꽃이 있었다. 아기별은 바위나리꽃이 슬프게 우는 소리를 듣고 바닷가로 내려오게 된다. 엄하고 봉건적인 하늘나라 임금님은 아기별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기별을 내쫓는다. 아기별이 떨어진 곳은 바위나리가 바람과 썰물에 쓸려간 자리였다. 해마다 바닷가에는 바위나리꽃이 피어나고 바닷물 깊은 곳에서는 아기별이 빛을 내고 있다. 우리 동화에서 드물게 아름다운 이 환상동화는 어린이들에게 감동을 주며 진정한 사랑, 억압과 자유에 대한 물음을 던져줄 것이다.
1933년 <<어린이지 >>에 발표한 「호랑이, 곶감」은 웃음과 해학, 날카로운 풍자로 일제 강점기를 깨우쳐주었던 우화동화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호랑이와 곶감을 확 뒤집어놓은 놀라운 상상력이 돋보인다. 곶감에게 혼난 호랑이의 후예들은 늘 곶감을 무서워하며 살았다. 여우가 이를 알아 무서운 탈을 쓰고 곶감 행세를 한다. 호랑이들은 곶감에게 날마다 고기를 나중에는 동료들 목숨까지 바쳐야 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의문을 품은 젊은 호랑이들이 힘을 합쳐 곶감을 치고 정체를 밝혀낸다는 이야기다.
한편 그는 일본에 가자마자『 문예춘추사』란 월간잡지사에 입사했으며, 이후 능력을 인정받아 1930년 문예춘추사로부터 청소년교양월간잡지『 모던 일본』을 독립시켜 1942년 12월 강제폐간 될 때까지 사장으로 있었다. 일본에서도 인기 높은 잡지사였던 그 시기에 마해송은 “유난히 시선을 끄는 수려한 풍모의 미청년”이었으며, “일본 사람들 앞에서 굽신거리지 않았고, 이름을 그대로 쓰며 조선인임을 자랑스러워했다. 술을 좋아하고 돈을 잘 쓰지만 여자에게는 관심 없는 사람, 문예춘추사 사내에서뿐 아니라 드나드는 문인들 사이에도 소문난 고집”이었다고 한다. 1924년 일본에 다시 갔을 때 연인은 재가한 뒤였고, 순결을 지켜주었던 개성에 있던 첫 부인과는 몇 년 뒤에 이혼수속을 했다. 그 뒤 1937년 일본에 있던 조선인 무용가 박외선과 가정을 꾸리게 된다. 마해송은 1945년 1월 오랜 동경 생활을 마감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부유했던 생활을 접고 귀국한 후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는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 가난하게 살며 동화와 수필 쓰기에 전념했고, 만년에는 카톨릭에 귀의했다. 그는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았던 지식인이자 능력 있는 출판인이었지만, 6.25 전쟁 중에 일본잡지사에서 다시 와달라는 부탁과, 맥아더 사령부에서 일 해달라는 연락을 거부했다. 대신 미군정기의 혼란기, 전쟁과 이후의 암흑기, 1960년대 독재정권 시기에 침묵하지 않고, 작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치열하게 현실을 직시하며 대안의 사회와 진실한 인간의 모습을 찾고자 애썼다.
『 떡배 단배』는 미군정 시기의 중편동화다. 미국과 소련을 대표하는 외세인 <떡배>와 <단배>가 들어와 섬사람들에게 떡과 단 것을 주며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예속시켜간다. 떡배 단배의 의도대로 섬사람들이 일손을 놓고 두 편으로 갈라져 싸우는 동안, 우직하게 농사짓고 물고기 잡으며 사태를 직시하는 돌쇠가 나온다. 돌쇠는 섬사람들을 깨우쳐 떡배 편 사람들이 떡배를 치고, 단배 편 사람들이 단배를 치도록 한다. 이 동화는 6학년이 된 작은 딸이 읽고 너무 재미있다고 평을 해주었다. 1957년부터 1961년까지 신문에 연재된 장편동화『 모래알 고금』3부작은 독재자가 파탄시키는 사회상, 희망과 동심을 잃지 않는 어린이와 어른들의 인물상, 민주주의의 꿈을 길고 재미있게 담아냈다. 3부작 중의 둘째편인『 모래알 고금』(우리교육)은 아이들에게 씩씩하고 착한 마음과 주체적인 성장, 인간에 대한 사랑을 심어줄 수 있겠다.
장남만 편애하는 억압적인 아버지, 따뜻한 마음과 주체적인 성격을 가진 우직한 을성이, 부모의 편애만 믿어 생각과 행동이 얕은 갑성이, 을성이 편에 서서 믿음을 주는 식모아줌마, 어린이들을 납치하여 도둑질을 시키며 독재정권을 비호하고 있는 깡패집단의 군상이 생생하다. 을성이가 깡패에게 납치되어 부모님을 다시 만나기까지의 이야기와 가족들의 변화들이 흥미진진하다.
해방 후의 그는 “과거에 매이기보다는 현재에 관심을 쏟고 앞날을 내다보는 사람”이었으며, “가난하게 살면서 남에게 추함을 보이지 않고, 항상 빠듯한 생활을 하시면서 문단의 후배들을 소문 없이 도와주었다.”고 지인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웃으면서 죽고 싶다고 항상 말씀하셨던 선생님은 돌아가신 모습이 편안한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고 한다. 삶과 일치했던 그의 동화들은 오래도록 우리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줄 것이다. <오숙민객원기자>
오숙민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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