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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한의사의 세상살이 진맥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15.03.25|(0호)

                                      불통(不通)



이현주(한의학 박사. 이현주한의원장)


 “내가 다른 사람에게 뜻을 잘 전달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의 생각하는 바를 잘 받아들이고 있는지 검토하는 비(脾)는 음식물을 소화흡수하고 온 몸에 전해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밥을 잘 먹는 것은 정신의 건강도 좌우하는 정말 중요한 일이다.”


만물이 존재할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은 기입니다. 즉, 기는 생명체를 포함한 모든 물질에게 운동성을 부여함으로써 물질 자체 혹은 다른 물질과의 상호관계를 형성하고 존재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러한 기가 인체 내에서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관해서 한의학에서는 크게 두 가지 관점으로 설명합니다. 하나는 경락이론의 관점으로 기경팔맥, 12경맥 등의 기혈운행의 통로를 통해 기의 운행이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동의보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오장육부의 승강출입을 통해 기가 전신을 순환한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승강출입(昇降出入)이란 말 그대로 ‘기가 위아래의 수직방향, 체내외의 수평방향으로 움직인다’라는 의미입니다., 오장육부는 각각 고유의 역할들이 있습니다.

심장은 자동차의 엔진처럼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신장은 자동차의 라디에이터처럼 심장에서 발생한 열이 몸을 태워 없앨 만큼 지나치게 높이 올라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간은 마음의 작용을 외부로 표현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폐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수용하는 역할을 합니다. 자연계에서 불의 따뜻한 기운은 위로 올라가고, 물은 항상 아래로 흐릅니다. 그러나 사람의 체내에서는 심장은 위에 있고 신장은 아래에 있어서 심장의 따뜻한 기운은 아래로 발바닥의 용천혈까지 내려가야 하고, 신장의 찬 기운은 머리의 백회혈까지 올라가서 열을 식혀주어야 건강을 잘 유지할 수 있습니다.

동서양이 모두 ‘두한족열(頭寒足熱)을 건강함의 가장 기본으로 삼는 것이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간이 마음을 밖으로 표현하는 작용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은 이해가 그리 어렵지 않겠지만 ‘폐가 타인의 마음을 수용한다’라는 설명은 언뜻 이해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폐는 호흡을 주관합니다. 우리가 호흡할 때 내쉬는 숨은 내가 마주보고 있는 다른 사람, 나와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이 들이 마시게 되고, 나는 또 다른 사람이 내쉬는 숨을 들이마시게 되는데 비록 공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 그것을 매개로 서로의 기(氣分)를 교환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의학에서 질병으로 인한 불편함이나 통증은 ‘불통즉통’의 네 글자로 설명하고 있는데 위에서 말한 기의 승강출입이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불통의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오장 중에서 심신은 승강을 간폐는 출입을 담당하고 있고, 비는 마치 수레바퀴의 회전축이나 문지도리처럼 승강출입을 통해 회전하는 기의 중심축이 됩니다. 심신간폐 네 장부의 기운(氣運=기의 운행)이 아무리 왕성하고 잘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 중심축이 되는 비의 기능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으면 체내의 기혈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비는 생각을 주관하는 장입니다(脾主思). 내가 다른 사람에게 뜻을 잘 전달하고 있는지 혹은 다른 사람의 생각하는 바를 잘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한 검토를 하는 곳이 비입니다. 사즉기결(思卽氣結) 즉, 생각이 지나치게 많으면 기의 운행이 멈추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은 사회적동물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끊임없는 소통을 전제로 인간의 존재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나의 체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기의 순환도 결국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얼마나 잘 적응하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비는 마음의 작용에서는 생각하는 것이지만 육체의 작용에서는 음식물을 섭취해서 소화흡수하고 이것을 온 몸에 전해주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잘 먹고, 잘 싸고, 잠 잘 자면 병이 없다’라는 말에서 보듯 건강의 조건 세 가지 중에서 두 가지가 먹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3월 17일자 서울신문의 기사에서 보면 잘 먹는 사람일수록 우울증에 잘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성격이 좋은 사람, 어디서나 잘 어울리는 사람을 ‘비위가 좋다’라고 하는데 여기서 ‘脾胃’가 바로 소화기능을 의미합니다. 밥을 잘 먹는 것은 단지 육체의 건강을 잘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신의 건강도 좌우하는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횡성희망신문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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