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정희할머니(70세. 공근면 초원리)
아직 잎은 없지만 땅 속에서 순을 내려고 준비하는 산야초가 있다. 참취는 예전부터 강원도 사람들이 즐겨먹는 산나물로, 입맛을 돋우고 농작물 소득이 없는 봄에 채취하면 돈벌이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횡성의 시골에는 식구들 먹을 취나물을 키우는 농가들이 많다. 토종 참취 모종을 따로 키우고 계신 한 분을 소개한다.
처음에 김정희(70세) 할머니와 통화하는데 목소리가 굵고 힘이 있어서, 몸집이 크시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찾아뵈니 많이 말랐지만 강단진 분이었다. 몸에 밴 표준어 높임말로 조리 있게 말씀하시는 것은, 종갓집의 맏며느리로 오랜 세월을 감내하셨던 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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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알보다 가늘고 긴 토종참취 씨앗 |
스물네 살 청일면 애고지에서 공근면 초원리로 시집왔을 때 시부모님은 40대 초반이었다. 농토가 있는 시댁이라 남보다 편하게 살 수 있었지만 큰 일이 연달았다. 그때 남자들은 장가간 뒤 군대를 가는 일이 흔했다. 다음해 큰 딸을 낳은 일주일 뒤에 남편이 군대를 갔는데, 딸을 두 달 만에 병으로 잃었다. 일 년 뒤 시어머님이 막내 시동생을 낳고는 바로 돌아가셨고, 남편 없는 시댁에는 시아버님과 여섯 명의 시동생이 그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나 놀란 일을 겪었는지 몇 해 동안 심장병을 앓으면서 통통했던 몸집이 지금처럼 마르게 변했다고 한다.
남들이 초등학교를 간신히 마칠 수 있었을 당시, 남편은 새벽같이 길을 나서 읍내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인텔리였다. 새댁은 시아버님이 혼자 농사를 지을 수는 없을 것 같고, 많은 시동생들을 키우고 공부시키자면, 직장보다 농사를 지었으면 좋겠다고 남편에게 권유해야 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돌아온 남편은 고맙게도 순순히 따라주었다고 한다.
지금은 시동생들도 다 키워 내보냈고, 몇 해 전 황토벽돌로 새 집을 지어 살고 계시다. 외국에 나가 살았던 둘째와 셋째 아들이 9년 전에 들어와 같이 농사를 짓고 있다. ‘초원농원’이란 판매장을 길가에 내어, 이곳이 서리태· 찰수수· 팥· 누룽지 현미찹쌀· 단호박 등을 택배하고 있는 곳이란 걸 알려준다.
“ 참취, 곤드레 산채를 좀 해요. 봄에는 생채로 택배를 하고, 소매하시는 분들이 와서 가져가기도 해요. 저희는 손으로 하나하나 다 뜯어요. 제가 뜯어서 요게 쇠었으면 그 위에서 순애기를 뜯어서 보내니까 갖다 잡수시는 분들이 부드럽고 좋다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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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취모종 |
할머니는 4년 전에 곰취를 먼저 심었으나 재배에는 실패했다고 한다. 그래서 주변 산에서 참취 씨앗을 받아 논두렁 비탈에다 뿌려놓았다. 돌 틈바귀에 나오는 참취 씨도 받아서 심었다. 거기에다 거름을 했더니 봄이 되면 대궁이 아주 굵게 나왔다. 이렇게 받은 씨로 모종을 내어 작년에는 100여 평 밭에 심었다고 한다. 참취를 사갔던 상인들이 향이 좋다며 자연산과 똑같은 가격을 주었다. 지금 하우스 안에 파랗게 자라고 키우고 있는 참취 모종은 올해 논 300여 평에 새로 심을 모종이라고 한다.
둘째 아드님인 김상헌씨(41세)가 안내해주는 참취 밭에는 광덕분교 울타리인 높은 잣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물기가 있으면서 배수가 잘 되고 일조량이 많지 않은 좋은 조건의 밭이었다. 가을에 씨앗을 채취한 뒤에 그냥 둔 참취 잎이 비닐 위에 덮여 거름이 되고 있었다. 참취를 심어둔 구멍 안으로 흙을 파보니 막 올라오는 뾰족하고 튼실한 순을 볼 수 있었다. 김정희 할머니는 참취 나물도 좋지만 꽃도 참 예쁘다고 하셨다. 오래도록 피어서 훌륭한 화초가 되어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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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취꽃 |
할머니 댁은 농사가 아주 많다. 주된 작물인 누룽지찹쌀과 단호박을 대량으로 심고 서리태와 흰콩, 팥, 산채 농사를 같이 짓고 있다. 그 틈에 할머니가 산에서 채취한 참취가 이제 재배작물로 자리를 잡았다. 오래도록 토종 참취 농사를 이어가셨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평생 종갓집의 안주인으로 고단하지만 책임 있는 삶을 짊어지셨던 할머니의 한 말씀이 귓가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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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흙을 파보면 참취종근이 올라오고 있는게 보인다. |
“ 옛날에는 우리 농산물을 애용해야 되고, 우리 농산물을 지어 먹거리를 해결해야 되니까, 장마나 큰 태풍이 와서 수해를 봤다 그러면 어느 지역에 지금 이만저만 해서 피해가 많아가지고 농민들의 시름이 어떻다느니, 가물으면 가물어서 어떻다느니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요즘에는 농민들 얘기를 너무 안 해요. 농산물이 국내 게 없어가지고 외국에서 수입해다 먹으면 되지, 이런 식인 거야. 이게 정말 크게 잘못된 것 같아요. ” <횡성여성농업인센터 토종씨앗지킴이>
횡성희망신문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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