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과 산에 자라는 풀들 잘 관리하는 것도 토종 지키는 일
오일장 구경 가는 날이면 늘 찾는 곳이 있다. 바로 횡성농업인회관 앞쪽의 정애기 할머니(86세)의 난전이다. 멀리서 횡성시장을 일부러 찾아오는 분들의 카메라에 가장 많이 찍히는 분일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할머니는 유명하다. 전국귀농운동본부 계간지인 귀농통문에 실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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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근면 상동리 정애기할머니 |
지난 장날에는 엄나무순인 개두릅, 두릅, 달롱, 가시오가피, 머우대, 물거름대, 잡나물 등 갖가지 나물을 뜯어 나오셨고, 수수랑 조, 팥이랑 녹두도 가지고 나오셨다. 요즘 할머니는 무슨 농사를 짓고 계시나 궁금했다.
“할머니, 내일 놀러가도 돼요. ” “응, 와. 아무 때나. ” 점심 먹고 공근면 상동리 할머니 댁을 찾았다.
할머니는 오전에 아들과 함께 하우스에 비닐 좀 씌우고 호미질을 했더니 등판이 아프다며 누워계셨다. 아프다가도 장에 나갈 생각으로 몸을 움직이면 그럭저럭 살만하시다는 할머니. 장에 나가려면 여러 구색을 갖춰야 되겠고, 씨앗을 사서 농사지으면 남는 게 없으니, 돈도 아낄 겸 토종씨앗을 지우지 않고 계속 농사를 지어 오셨다고 하신다. 40년을 시어머니랑 함께 농사짓는 며느리도 할머니처럼 농사일을 할 수는 없지만 씨앗만은 지키겠다고 약속할 정도로 토종농사에 애정을 갖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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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냉초. 주위사람에게 약으로 쓰라고 엿으로 고아 나누어주곤 한다. |
할머니는 빗자루 만드는 수수를 아끼신다. 집에는 몇 년 동안 쓰고 있는 빗자루가 있었다. 사서 쓰는 수입 빗자루와는 비교가 안 된다고 하시며, 집안에서 오륙년 있다가 닳으면 마당비로 쓰기에 십년 이상 쓴다는 빗자루를 보여주셨다. 이쁘게 뜨개질을 해서 옷을 입힌 수수 빗자루다. 지난번에 보았던 김부옥 할머니의 댑싸리 빗자루처럼 가슴에 팍 박히는 기분이 들었다. 빗자루 매는 것도 배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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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 잔대, 달래, 참나물 등이 가득한 할머니의 나물밭 |
모시대라고 하니까 모시대구나 할 정도로 나물을 구별하는 게 어려웠지만 한 눈에 들어오는 ‘냉초’라는 약초가 있었다. ‘냉초’는 뿌리째 달여서 엿을 고면 냉대하로 고생하는 여성들에게 특효약이라 임신 못하는 여성들이 찾는 약이라고 한다. 인제까지 가서 얻어다 심어 엿을 고아서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셨다고 하신다. 약초라지만 꽃이 피는 풀이기도 하고 나물이기도 한, 품위 있게 생긴 냉초를 가꾸고 계신 할머니. 냉초는 할머니가 살아가는 모습과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세상 쓸모 있는 일만 하시는 할머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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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 똑같아 보이는 8종류의 조와 수수 모종들을 할머니는 다 구분하신다. |
집에 가서 먹어보라며 내 바구니에 자꾸 넣어주신다. 비비추도 묵나물하면 좋다며, 잔대, 다래순, 숟가락나물, 젓가락나물, 광대사리, 고추나물 ,동추, 두릅, 삼나물, 오가피 등 처음 보는 나물을 알려주시며 뜯는데, 그동안 이름 없는 풀들에 지나지 않았던 것들이 이름을 얻고 나물이 되는 과정을 경험했다.
“이것도 먹는 거예요.”
“그럼, 얼마나 맛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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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애기할머니와 마늘밭. 앞의 두둑은 아욱을 심은 곳이다. 뒤로 보이는 돌기단에 벌통이 있지만 지난 겨울 벌이 다 죽었다. 벌이 사라지면 식물이 열매를 맺지 못한다며 걱정이 크다. |
모르는 것을 배우고 싶은 갈증이 난다는 기분이 이런 걸까. 고사리밭, 고비밭, 다래순밭은 어디 있는지, 어디에 뭐가 있는지, 어디에 쓰면 좋을지, 할머니는 모르시는 게 없다. 그런데 예전처럼 다닐 수 없는 게 속상하신 할머니는 그나마 텃밭에 뿌려둔 산나물들이 위안이 된다고 하신다,
풀과 작물과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수백 년 이상 이 땅에서 나고 자란 풀들을 잘 관리하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토종을 지켜나간다는 것은 꼭 작물을 재배해서 농사짓는 것만이 아님을 배운다. 들과 산을 잘 관리하는 것도 토종을 지키는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지혜를 얻는다.
‘농촌살림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 줄 할머니가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시죠. 할머니, 다음 장날에 뵈요...’
<횡성여성농업인센터>
횡성희망신문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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