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횡성에 살고 있는 직장인이자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올해로 횡성에 온지는 딱 10년이 되었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할 만큼 긴 시간이라는데, 저에게는 너무 빠르게 지나간 것 같습니다. 지난 10년을 최선을 다해 살았는지 이 글을 쓰면서 급 반성하게 되네요. 하하.
처음 횡성과 인연을 맺은 때는 대학 졸업을 앞둔 2005년 12월, 갈풍리에 있는 도미니꼬수녀회에 놀러가면서입니다. 원주에서 나고 자랐지만 옆 동네 횡성에 올 일이 없었는데, 대학 동기 수녀님이 계셔서 놀러오게 되었고, 수녀님의 권유로 횡성복지관에 원서를 내어 사회복지사로 첫 직장을 횡성에서 다니게 되었습니다.
복지관에서의 1년 반은 지금도 그때의 내가 경쟁자일 만큼 열정적으로 일하던 시기였습니다. 많은 주민들을 만나고, 밤을 새워 프로그램을 만들고 준비했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았던, 내 안의 에너자이저가 써도 써도 닳지 않던 요상한(.) 시기였습니다.
그때 농촌 지역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고, 안된다고 손사래 치던 ‘청소년축제’를 직원들의 도움으로 개최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열린 게 기적이라 부를 만큼 반대도 컸었지만 이제는 ‘청소년어울림마당’으로 자리 잡았지요. 아이들이 축제를 통해 꿈을 키우고 열정을 불사르는 모습을 보면 자랑스럽고 뿌듯합니다.
이 정도면 제 신분이 어느 정도 노출이 되었지요. 예, 저는 횡성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복지사로서 횡성에서의 삶은 제가 생각하고 꿈꾸던 복지를 조금씩 실행해오는 꿈의 퍼즐을 맞추는 것 같은 즐거운 작업이었습니다.
또 다른 이름 하나! 저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횡성의 모습이 처음 5년은 일터로서 존재했다면 나중 5년은 두 아이를 키워내는 삶의 공간으로 존재합니다. 일터로서 횡성에 살 때는 주말이면 심심하고 외롭기도 했는데,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아이를 중심으로 엄마 친구들, 아이 친구들이 생기면서 이 공간이 보다 다채롭고 풍요로워졌습니다. 늘 똑같아 보이던 학교, 어린이집, 놀이터, 마트, 식당 등이 다르게 보이고 친근해졌습니다.
이제는 주말에도 심심하지 않습니다. 일요일이면 성당 어린이미사를 가는데 6살부터 입학이 가능하여 아직 깍두기(.) 참여자지만 미사 한두 시간 전부터 모여, 아이들은 성당 앞마당에서 뛰어놀고 엄마들은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 한잔을 마시며 밀린 담소를 나눕니다.
한 엄마의 텃밭에서 고구마 심기도 하였습니다. 흙을 파고, 물을 주고, 고구마 줄기를 뉘어서 심는 법을 가르칩니다. 아이들은 고사리 손으로 흙을 파고, 조리로 물을 주고, 호기심어린 눈으로 고구마 줄기를 눕혀 심습니다. 비록 아주 잠시지만 평소엔 보기 힘든 성실함과 집중력을 발휘합니다. 저도 무언가를 하나 배워둬야겠습니다. 다음 재능기부를 해야 하니까요.
횡성은 저에게 처음에는 낯설었고, 다음엔 일터였고, 지금은 삶의 공간입니다. 김춘수님의 유명한 시(詩) 구절 중 누군가 불러주었을 때 꽃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저에게는 횡성이 이제야 비로소 오롯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부끄럽지만 이제 횡성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는 더 다채롭게 보이겠지요. 벌써 기대가 됩니다.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천천히 즐기려고요. 이 글을 읽는 분들, 혹시 다음에 길에서 만나면 우리 아는 체해요. 다 같이 횡성사람이니까요. 좋은 이웃이 되고 싶어요^^

김은정(34세) :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생활이 즐겁고 살아갈수록 횡성이 좋다. 5살, 3살, 두 딸의 엄마로 횡성군 드림스타트에서 일하고 있다.
김은정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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