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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촌인의 애환[귀농인이 본 횡성4]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12.05.23|(0호)

▲ 이건용 갑천면. 글로리아 허브대표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이 산업발전의 변천사이다. 보릿고개를 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의 결과 세계 7대 수출국이라는 경제성장을 이룩한 나라가 됐다. 여기까지 단숨에 온 것도 아니다. 국가, 기업, 근로자들의 피와 땀과 심지어 생명까지 잃으면서 이룩해온 노력과 희생이 있었다.

유태인들이 이스라엘 국가를 건설하고 강원도 크기만 한 나라가 전 세계를 상대로 조금도 뒤지지 않는 능력을 갖추기 까지 쉽지 않았듯이 우리나라가 보릿고개를 넘어서기 위한 과정도 쉽지만은 않았다.

국가경제 5개년 계획이 진행될 때 파월장병들의 수고와 희생, 파월 민간기업과 기술자들의 노력과 고귀한 피와 땀, 그리고 광부와 간호원들의 독일취업을 통한 노력과 희생들, 뜨거운 열사의 나라인 중동 건설근로자들의 피와 땀으로 대신한 외화획득은 이 나라 경제건설에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또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낯설고 물설은 미국으로 이주한 재미교포들의 이민사 등을 살펴보면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우리 귀농, 귀촌인들의 애환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귀농·귀촌 낯선 외국으로의 이민과 같아

경제적으로 잘살고 못사는 것이 성공의 척도인 것 같으나 이민을 하건 귀농을 하건 언제나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이다. 자신의 목표와 성공을 위해서도 충실해야하지만 ‘어떻게 사느냐’ 즉 함께 더불어 사는 일에 미숙한 것에서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나는 도시생활을 하면서 나 자신을 위해 여러 교육도 받고 인격도 도야하고 경쟁력도 키워야 성공한다는 생각으로 흔히 말하는 스펙에 몰두했고, 각종 사회단체나 모임을 통한 인간관계에 소홀하지 않고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귀농 후에 겪게 되는 새로운 세계는 귀농 전 평생을 살아오면서 쌓아온 이력들이 어느 것 하나도 인정되거나 존중받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무시되고 의심받고 오해받고 마는 것이 귀농의 현실이었다. 물론 대우받고자 온 것은 아니다. 또한 개인이 갖고 있는 스펙이 적용되는 농촌도 아니다. 다만 오해나 무시, 나아가 곤욕을 당하는 것은 귀농생활에서 가장 힘들고 슬픈 일들임이 분명하다. 기존의 친구, 이웃을 떠나 새로운 고장에서 이웃과 어울려 잘 지내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왔지만 내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귀농인들의 삶을 관심 있게 보았다.

귀농인들의 유형은 여러 가지였다. 하나는 지역민들과 잘 지내는 사람들이다. 또 하나는 지역민과 많이 충돌하는 사람들이다. 지역민과 잘 지내는 사람들은 불만이 있어도, 무시당해도 말없이 참는 사람들이고 후자는 그것을 못 참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민을 가건 외국취업을 하건, 귀농을 하건 공통점은 하나인데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것이다. 그러나 로마법을 어기고 사는 로마인도 많다는 것이다. 즉 어느 쪽 한편만 잘하고 잘못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잘못할 수도 있고 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농촌 삶 먼저 이해하는 자세 없으면 애로

언젠가 지역민과 많이 충돌하고 지내는 어느 귀농인이 나에게“이선생! 굴러온 돌이라 차별이 심하니 굴러들어온 돌들끼리 뭉쳐서 대항합시다. 그러기 위해서 귀농인 모임을 만듭시다.”라는 제의를 해왔다.

나는“A선생님! 나는 도시에서 수많은 모임에 가입해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귀농 후 농부가 되면서 모든 모임에서 탈퇴하고 농사만 짓습니다. 나는 귀농인 편만도 아니고 지역민 편만도 아니고 마을주민입니다. 마을주민이면 모두가 하나이고 이웃인데 편을 가르는 모임은 사양합니다.”라고 대답했다.

텃세하고 차별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사 온 사람 업어드리고 이사 가는 사람 등 밀어 내라”는 말처럼 도시생활 하다가 농촌에 온 것이 잘못이 아니라면 반갑게 맞이하고 오순도순 정겹게 같이 살도록 도와주길 바라는 것이 귀농인 마음이다. 반대로 귀농인은 도시생활에서 길들여진 습관과 사회와 문화적 혜택을 농촌인보다 많이 누리고 살았지 않은가. 어려운 농촌에서 농사지으며 순박하게 살아온 농부들의 삶을 좀 더 적극적으로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면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접점이 생길 수 있다고 본다.

언젠가 마을 귀농인의 가정에 도시친구들이 찾아왔다. 시원한 냇가 정자나무아래 냇물에 발 담그고 삼겹살에 소주한잔 걸치면서 유행가를 부르며 대낮 술파티를 열고 있었다. 나는 단호히 말했다. “대낮 한여름 농번기에 너나 할 것 없이 농사일에 땀 흘리며 농사짓는 농부들이 보고 듣고 있는데 그와 같은 행동은 안 된다. 그렇게 하면 귀농인 모두에게 욕을 먹이는 것이다.”라고 충고했다. 귀농인들의 이 같은 잘못된 행태 때문에 귀농인 모두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농촌에는 농촌만의 문화와 풍습이 보이지 않게 유지되어야 한다.


지나친 일욕심도 애환의 한 원인

귀농인의 애환 중 또 하나는 일욕심을 너무 부리는 것에서 나온다.

나는 몇 달전 어깨와 팔이 아파서 정형외과 진료를 받았다. 엑스레이 판독결과 양쪽 어깨에는 각각 4개씩의 힘줄이 있는데 그 힘줄의 역할로 팔과 어깨가 힘을 쓸 수있는데 그 중의 힘줄하나가 닳아서 끊어졌다고 의사는 설명했다. “당신의 직업이 무엇이냐”고 의사는 물었다. 나의 직업은 농부라고 떳떳이 대답했다. 의사는 “도대체 무슨 일을 그토록 많이 해 어깨 힘줄이 닳아서 끊어지도록 일을 하십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잠시 동안 말문이 막혔다.
‘귀농 후 13년 동안 하루도 쉬지않고 일만 했구나!’

이것이 농부들의 현실이며 애환이다. 귀농인의 현실은 더하다. 일이 익숙치않으면 요령이 없고 요령이 없으면 몸이 쉽게 망가지기 때문이다. 건강을 다시 생각하며 나는 기도했다. 건강을 지켜달라고. 기적이 일어나 어깨의 고장 난 힘줄이 복원됐다. 아주 많이 감사하며 푸르고 높은 하늘을 우러러 내 어깨힘줄을 다시 고쳐주신 전능자에게 감사했다.

‘농민들이여! 시대가 우리를 어렵게 해도 힘을 냅시다.’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런 기분처럼 혹시 피곤한 귀농인들이 있다면 현실에 탓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대로 팔을 크게 벌리고 가슴을 펴서 이웃들과 정답게 살아가자고 제안해 본다. 귀농인이 먼저 내가 살고 있는 농촌을 살릴 수 있는 일을 비록 작더라도 찾아보아야 한다. 그것이 귀농, 귀촌의 피곤함을 이길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글쓴이는 갑천면 상대리에 13년 전 귀농해 글로리아허브농원을 운영하고 있다. 5회에 걸쳐 귀농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횡성, 횡성의 농업을 연재한다. <편집자주>


횡성희망신문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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