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횡성의 새 식구가 된 현천고 학생들이 5월 13~14일 1박2일간 <자전거로 떠나는 향토역사 기행>에 나섰다. 하루 60km가 넘는 거리를 자전거로 이동하면서 횡성지역의 여러 역사유적지를 탐방한 현천고 학생들은 소중한 감동과 보람을 느꼈던 것 같다.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12명의 교사와 횡성경찰서 및 관내 각 지구대 소속 경찰들이 수고를 아끼지 않았고 길가의 주민들은 박수로 반겨주었다. 이창성 교사는 “처음에는 갈등도 있었고 힘들 때마다 짜증을 내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를 이해하고 끌어주는 모습을 보며 이 기행은 이미 그 목적한 바를 넘어서고 있다고 확신했다”고 전했다. 역사기행을 마친 학생 2명의 이야기를 2회에 걸쳐 들어본다. [편집자주]
내 뒤에는 반 친구들이 버텨주고 있었다

김유진(현천고등학교 1학년 3반)
자전거 기행을 다녀온 후 기행 당일 날 저장해 놓은 한 메모를 발견했다, 메모엔 ‘풍수원 성당’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정말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었을 때 딱 쉬어가던 문화유적지에서 고개를 푹 숙인 우리들 앞에서 열심히 설명하시던 변창수 선생님이 생각났다. 그와 동시에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너무 힘든 나머지 열심히 설명하고 계셨던 선생님의 말씀을 찌푸린 얼굴로 고개를 숙여가며 들었기 때문이다.
기행을 하는 내내 가보았던 유적지는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번 기행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다. 일제 강점기 때 강원도 중에서 특히 횡성이 일본군과 격하게 투쟁했다는 것과, 우리나라를 위해 많은 네덜란드 군인들이 희생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현재 생활하고 있는 곳에서 옛날에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나라를 지켰다는 것에, 아무리 힘들고 지쳐 있어도 귀는 자연스럽게 열렸다. 비록 앞에서 설명하고 계신 선생님만큼의 열정으로 듣진 못했지만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얘기들이 있는 것을 보면 나도 흥미가 가고 들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횡성 참전기념공원’이었다. 그곳에 가면 전쟁 당시 참전했던 네덜란드 군인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우리를 위해 투쟁하며 목숨을 잃은 네덜란드 군인의 이야기는 지친 정신 속에서도 탁 들어왔다.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같이 동상 앞에서 묵념을 할 때 정말 그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던 장면은 ‘풍수원성당’이었다. 기독교가 억압받던 시대에 처음 만들어진 성당인 풍수원성당은 외관과 내관 모두 너무 아름다웠다. 그리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성당은 들어가자마자 나에게 편안함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오래됐지만 그 세월 속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아쉽게도 2박3일로 예정됐던 기행은 마지막 날 비가 와 도로가 젖는 바람에 1박2일로 끝이 났지만, 마지막 날 가기로 했던 ‘정금리 해림효원’은 나중에 또 가볼 기회가 있을 거라 믿는다. 이번 기행을 하면서 친구들과 단합심도 기르고 스스로의 한계에도 도달했지만 ‘역사 기행’이라는 목적도 이뤄냈다고 본다.
자전거를 친구들과 함께 타는 것은 중간에 포기할 줄 알았다. 자전거를 배운지 2년이나 지나 있었고 자전거 기행 전에 다시 자전거를 배우긴 했지만 오르막길을 연습할 때에는 포기하고 걸어가기 일쑤였다. 잘 타는 친구들과 못타는 친구들의 거리가 점점 멀어졌고 나는 못타는 아이들 축에 끼었다. 혼자가 아니어서 외롭진 않았지만 앞에서 기다리는 친구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기행 하루 전에도, 뒤처지고 친구들과 멀어지다 포기하게 되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이 되었다. 가고 싶단 마음보다는 가기 싫단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자전거 통합기행을 가는 내내 나는 항상 친구들과 함께였고 뒤쳐졌다 하더라도 내 뒤에는 반 친구들이 버텨주고 있었다. 오르막길을 갈 때는 힘들어하는 친구가 한명이라도 있으면 모든 친구들이 자전거에서 내려 다 같이 걸어갔다. 모든 오르막길을 걸어간 건 아니었기에 정말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지만 앞에서 나와 같이 힘들어 하는 친구와 선생님이 이를 악물고 온 힘을 다해 페달을 누르는 모습을 보며 힘을 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또한 내리막길을 지나갈 때에 모두 함께 느끼는 바람은 내가 여태까지 느꼈던 바람 중에 가장 좋은 바람이었다.
첫째 날엔 온몸에 힘을 주고 긴장하며 탔지만 그때마다 말은 거칠게 하면서도 걱정스런 표정으로 달려와 주는 남자친구들이 있어 든든했다. 둘째 날엔 긴장이 풀려 조금 여유있게 갈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첫째 날에는 못 보았던 주변 경치가 보이기 시작했고 마음 한구석이 뻥 풀리는 기분을 느꼈다. 둘째 날에는 정말 길고 힘든 오르막길이 있었지만 서로 기대고 밀어주며 지나왔다. 자전거에서 내려 걸어가고 싶은 구간에 뒤에 있는 친구들이 생각나 힘들어 하면서도 걷고 있을 때 앞에 계신 선생님이 먼저 멈춰주셔서 감사함을 느낀 적도 많았다.
중간에 다치고 지쳐서 차에 타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 친구들이 미안해 할 필요는 없다고 느꼈다. 그 친구들 또한 자신의 한계에 닿을 만큼 노력한 것이기에. 정말 힘들고 또 힘들었던 자전거 기행을 완주하고 학교로 돌아왔을 때 학교에 남아있던 친구들이 안아주고 격려해 주는 순간 이 기행이 얼마나 의미있는 여행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모두가 부둥켜안고 수고했다면서 다독이는 순간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차오름을 느꼈다. 자전거 기행을 하며 뒤에서 버텨주고 밀어주던 친구들과 앞에서 날 이끌어 주신 친구들과 어우러진 도로 위 경치는 정말 최고였다. 고맙습니다. 현천고.
현천고 김유진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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