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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에서 살아온 토종씨앗이야기(34)김동수씨의 <횡성채포집 딸기>“ 농사를 지으면 착해질 수밖에 없어, 자연과 상대하니까. 나눔이 돈 들지 않고”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15.06.24|(0호)

 

         

▲ 김동수(76세.횡성읍)


           


 지난 주 희망신문에 <횡성에서 보존되어온 옛날 딸기>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기사가 있었다. 읍상리의 김동수(76세)씨가 오래도록 재배해왔던 딸기로, 토종전문가 안완식 박사는 “1900년대 일본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이며, 국내에서 발견되지 않은 종자로 보존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한국전쟁 직후 횡성 곳곳에 널리 퍼져 있던 이 딸기는, 김동수씨가 북천리의 한 채포집에서 얻어온 것이라서 <횡성 채포집 딸기>로 최근 이름 붙여졌다. 

 김동수씨 집은 횡성읍의 여느 주택처럼 잔디 마당이지만, 뒤로는 160여 평 농장을 가꾸어놓았다. 여기서 오리와 닭, 토끼를 키워 알과 고기를 먹고 퇴비를 만들어 밭 거름으로 사용한다. 꽃잔디와 대파 등의 주 작물 옆으로 해마다 조성해놓은 15평 정도의 딸기밭은 가뭄인데도 무성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이 오래된 딸기는 요즘 딸기에 비해 쉽게 물러서 멀리 이동해갈 수 없는 단점이 있지만, 과즙이 풍부하고 가물지만 않으면 알이 엄청 굵은 게 특징이라고 한다. 딸기 모양은 끝이 네모지거나 뭉툭하며 진홍색으로 잘 익는 5월 말부터 6월 초순까지 한창 따먹을 수 있다.

 

 

▲ 진홍빛으로 익어가는 옛날 딸기. 끝이 뭉툭하거나 네모진 모양이며 과즙이 많고 맛이 좋다. 이랑 바깥쪽으로 열매를 딸 수 있도록 딸기를 심었다.


“ 딸기를 심으면 지금쯤 런너(배꼽줄)가 나와. 첫번째 거는 안되고, 둘째. 셋째 런너에 포토를 넣으면 뿌리를 내리지. 그때 원줄기에서 잘라내서 가을 김장거리 심을 때, 이 모종을 옮겨 심으면 아주 정확하지.”

 그러니까 딸기를 따먹고 나서 7-8월까지가 모종을 만드는 시기가 된다. 해마다 새 뿌리를 심어 옛날에는 짚을 지금은 비닐을 씌워서 이랑을 만들어 심으면, 찬 겨울을 넘겨야 하는 딸기가 저절로 저온처리가 되면서 봄에 새싹을 내는 것이다. 

 “ 이랑 둑은 높을수록 좋아. 그리고 배꼽줄이 나오면 이랑 안쪽으로 가게하고 두 포기씩  심어. 그러면 딸기는 바깥쪽으로 달리지. 그럼 열매를 따기가 좋지. ”
 그러고 보니 딸기들은 모두 이랑 바깥쪽을 향해 붉은 열매를 달고 있었다. 아주 오래된 종자가 병 하나 없이 깨끗하게 보존되었다고 평가받은 것은, 이렇게 해마다 뿌리를 이식하면서 심었던 재배기술 때문이었다. 



 김동수씨는 횡성고의 전신인 횡성농업고등학교를 나와 20세부터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지금 3.1 공원 안에 있던 그의 HILL SIDE (언덕가) 과수원은 당시 횡성의 명물이었다고 한다. 횡성에서는 처음으로 포도, 복숭아, 딸기를 심어 팔았던 곳으로 돼지와 젖 짜는 산양, 소, 토끼, 닭들을 골고루 갖춘 3천평 규모의 목가적인 농장이었다. 젊은 연인들이 데이트 장소로 애용했고, 많은 이들이 찾아와 과일을 사갔다. 

 “봄에 수확은 딸기밖에 없었지. 그때 딸기밭 100평에서 100만원을 하면, 쌀농사보다 그 좁은 면적에서 고수익을 올렸던 거지.”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이십여 년 동안 언덕가 과수원은 그에게 정신적인 만족과 신체적인 건강함을 두루 선물했다. 덴마크, 스위스가 그의 농업모델의 꿈이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이룰 수 없었다.

 

 

 

 

 

▲ <횡성채포집 딸기>가 자라고 있는 김동수씨의 뒷마당 밭. 일본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짐작되는 딸기를 한국전쟁 직후부터 해마다 이식 재배해 튼튼하게 보존해왔다.


1970년대 초반, 대기업이 양돈 산업에 뛰어들면서 돼지 값이 엄청 떨어지자, 대다수의 소규모 양돈업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가족 같은 돼지를 파묻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른바 양돈의 독과점화가 되어가던 시점에 그도 돼지농사를 접어야 했다. 

 농업정책의 고비마다 피해를 입었던 그는 농업을 접고 다른 일을 해오다 지금의 주택으로 이사 오면서 작은 규모나마 20년 째 농사를 다시 짓고 있다. 잠시 제수씨 집에서 보존되었던 이 딸기는 다시 옛 주인을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근래에 주택 주인이 땅을 파는 바람에 김동수씨는 이제 6월 말이면 정든 땅과 헤어져야 한다. 그는 평생을 함께 했던 딸기를 어찌할까 고민이다. 이제부터  배꼽줄이 나온 곳에 포토를 놓고, 뿌리를 내리게 해서 모를 이식시키는 작업을 할 생각이다.

“ 농사를 지으면 착해질 수밖에 없어, 자연과 상대하니까. 그리고 나눔이 돈 들지 않고... 만남도 중요하지만 헤어짐도 깔끔해야 되거든...”

 그에게 오랜 시간 목가적인 아름다움과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선물했던, 그리고 수십 마리 돼지를 땅에 묻으며 수익이 맞지 않아 농사를 접게 했던 그 농업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방법이란 과연 무엇일까. 오래도록 정성들여 재배해서 무성해진 초록 딸기 잎, 그 아래 이랑 바깥쪽으로 가지런히 진홍색으로 익어가는 옛날 딸기가 우리들에게 그 물음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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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희망신문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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