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이었던 지난 5월 8일 한통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오마이뉴스 통합검색에 아버지의 전쟁이라고 치면 저의 아버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읽어보시고 댓글 달아주세요. 지금이라도 아버지의 명예를 찾아 드리고 싶습니다”
문자를 보낸 이는 김병선(44, 우천면)씨다. 오마이뉴스 기사 <아버지의 전쟁>은 오빠 김병옥(49, 서울시 종로구)씨의 제보로 이루어졌다. 오마이뉴스 김도균기자의 글 <다리 잘린 ‘아버지의 전쟁’... 분통 터집니다 [제보취재] 군번·명예제대 특명 도용 의혹 제기한 김병옥씨>를 읽었다. 기사를 읽기 직전에 먹은 점심이 내려가지 못하고 묵직하게 걸렸다. 누구라도 그랬을거다.
병선, 병옥씨 두 사람은 지난 2010년부터 돌아가신 아버지 고 김정근씨가 국가의 행정착오와 무책임으로 인해 유공자로 지정받지 못한 억울함을 호소하며 국가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아버지 김정근씨가 돌아가신 지 28년이 지났다. 아버지의 전쟁은 언제 끝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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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 김정근씨의 군복무 시절(1949-1952)의 모습 |
전투 중 부상, 다리 절단위기 넘기고 5년 4개월 복무
고 김정근(1931~1984)씨는 1949년 3월 자원입대해 육군 제 6사단 19연대 소속 위생병이었다. 1950년 10월 평안북도 태평동 전투에서 중공군의 포위를 뚫고 돌파하는 과정에서 왼쪽 다리에 파편상을 입고 부상부위에 동상을 입었다. 이듬해 1월 경기도 포천에서 아군의 방어선이 붕괴되면서 뒤처진 부상병 30여 명과 부하 위생병을 인솔해 3일 만에 부대로 복귀하지만 왼쪽 귀와 왼쪽 손, 발에 극심한 동상 피해를 입었다.
이때 입은 동상이 악화되어 서울 제36육군병원을 거쳐 51년 11월 초 부산 제 3 육군병원 토성동 분원으로 후송된 김씨는 동상으로 썩어들어가기 시작하는 왼쪽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자 탈영했다. 고등학교 시절 체조 선수로 활약했을 정도로 건장했던 김씨로서는 한쪽 다리를 잘라내야 한다는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탈영 후 민간병원에서 집중적인 동상치료를 받은 후 3주 만에 군 병원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1952년 8월경, 병사들의 인사를 관할하던 육군본부 부관감실의 호출을 통해 자신이 서류상 이미 제대한 것으로 되어 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상을 입은 왼쪽 다리 절단 수술을 하기로 되어 있던 51년 11월 5일자로 <부상으로 인한 명예제대 특명(제 3631호)>이 내렸던 것을 뒤늦게 알았지만 김씨는 재복무를 청원했다. 생사의 기로를 함께 넘나들었던 전우들을 두고 혼자 떠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그 후로도 22개월 더 군복무를 하고 1954년 6월 1일 일등중사(현 하사)로 만기 제대했다. 5년 4개월에 걸친 긴 복무였다.
제대 후 김씨는 겨울철이면 동상에 따른 팔다리의 극심한 고통 등을 견뎌내야 했다. 10년 동안 전국의 용하다는 의사를 찾아다니며 부상후유증과 싸우는 동안 청주에서 운수업을 하던 집안의 가세도 점차 기울었다. 김씨는 63년 9월 서울 성모병원에서 결국 왼쪽 다리를 절단했다. 다리를 잘라낸 후 평생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한 김씨를 대신해 그의 아내는 행상과 막노동을 하며 병옥씨 등 1남 1녀를 키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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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들 김병옥씨는 차량 뒷유리에 국가에 대한 항의글을 부착해서 다닌다. |
육군과 원호처 “대상아니다. 접수 거부” 긴 싸움의 시작
1969년 김씨는 원호대상자 신청을 해보라는 주변사람의 조언에 따라 원호처(현 국가보훈처)를 찾았다. 다리를 잘라낼 수밖에 없었던 게 바로 전투에서 입은 파편상과 동상 때문이라는 것을 입증만 한다면 국가의 생계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군 복무 시 자신에 대한 치료 기록, 특히 다리절단으로 더 이상 군 복무를 수행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내려진 명예제대 특명 기록이 남아 있다면 원호대상자로 지정받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김씨의 군 복무 기록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신청서 접수조차 거부당했다.
육군은 군 복무 기록을 찾아달라는 김씨의 진정서에 대해 만기제대이므로 원호 대상이 아니며 다리 절단과 군 복무 중 입은 동상과의 인과관계도 입증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
김씨는 목발을 짚고 절뚝이면서 여러 해 동안 전국을 헤매며 부상 사실을 입증해 줄 전우들과 상관, 군의관들을 수소문해 진술서를 받았다. 그러나 지난 8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수차례의 원호대상자 심사 청원은 모두 기각됐다.
김씨는 원호대상자 심사 청원을 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의문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자신의 군번(5101150)과 관련된 의무 기록이 실제의 부상과 일치하지 않을 뿐 아니라 51년 1월 포천지역에서 입은 부상은 그 전해인 50년 10월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다가 왼쪽 하퇴부에 파편상을 입고 동상이 악화된 것이지만 남아있는 의료기록에는 좌측대퇴부에 부상당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또 51년 6월에는 군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는데 입원한 것으로 되어 있는 등 자신의 의료기록에는 의문점이 많았다.
생전에 김씨는 당시 같은 연대에 자신을 포함해서 모두 3명의 동명이인이 있었던 것에서 이 같은 오류가 생겼을 것이라고 추측했다고 한다.
김씨의 군번(5101150)과 의료기록의 군번(5150484)이 다른 점이 근거였다.
하지만 이 같은 김씨의 추측과 항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김씨의 아내는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다. 가족들은 극도의 가난을 이겨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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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딸 김병선씨 |
군번에 명예제대 특명까지 일치하는 또 다른 김씨
지난 2010년 아들 병옥씨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조국을 위한 희생은 시공을 초월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서다. 그 해 9월 서울 북부 보훈지청에 이미 고인이 된 아버지의 서류를 접수, 2012년 1월 회신을 받았다.
그런데 보훈처가 서울지방병무청에 병역사항을 조회하면서 발급된 병적증명서에 그동안 명예제대증 제 3631호의 성명과 생년월일이 그동안 아버지 김씨가 아닌 김OO씨로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난 4월 13일 육군본부 병적관리과도 병옥씨가 제기한 민원에 대한 회신에서 아버지 김씨의 군번인 5101150의 성명과 생년월일이 2010년 12월 22일자로 김OO씨에서 아버지 김씨로 정정되었다고 알려왔다. 40년 동안 없다던 아버지 김씨의 군기록과 의무기록이 나온 것이다. 아들 병옥씨의 민원제기 이후 아버지의 군번과 명예제대 특명도 바로 잡혔다.
보훈처와 육군본부의 문서에 따르면 김OO씨는 1934년생으로 한국전쟁 직후인 50년 8월 22일 입대해 51년 11월 5일 명예제대 했다. 아버지의 군번과 명예제대 특명을 이용해 유공자 혜택을 받은 김OO씨는 현재 생존해 있고 그의 기록이 의정부 보훈지청에 있다. 2002년 전상자로 국가유공자 신청을 한 김OO씨는 2010년 현재의 이름으로 병적정정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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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 김정근씨 가족사진 |
국가는 “행정착오” “어쩔 수 없다” 외면
병옥, 병선씨는 소송을 준비 중이다. 아버지는 돌아가신데다 국가유공자 자녀들에게 주어지는 학비 및 등록금 지원, 취업 혜택 등도 이미 해당되지 않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지 않고는 저 세상에 계신 아버지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하실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군 기록이 어떤 이유로 그동안 잘못되었는지, 김OO씨가 아버지의 군번과 명예제대 특명을 도용해 그동안 국가유공자 혜택을 받아온 의혹과 그 과정에 부정이 개입한 것은 없는지 명백히 밝혀야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국가보훈처는 “육군에서 김OO씨와 김정근씨에게 동일한 군번을 부여하는 바람에 생긴 착오 같다”고 밝혔다. 김OO씨가 김정근씨의 명의를 도용하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국가유공자 혜택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보훈처는 “전상 여부를 심의할 때 병적 증명서나 병원 진단서뿐 아니라 육군본부 측에 관련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여러 기록들을 요청한다”며 “서류 조작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고 김정근씨와 김OO씨는 입대 날짜가 1년 6개월 이상 차이가 나는데 군번이 같을 수 있는지, 그리고 같은 날짜(51년 11월 5일)에 두 사람이 모두 부상으로 인한 명예제대 특명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오마이뉴스>의 질의에 대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서 당황스럽다. 이런 사례는 처음”이라고만 했다.
착오가 생기게 된 원인인 이중으로 군번이 부여된 경위에 대해 육군측은 “군 병원에 입원했던 김OO씨의 병상일지를 기록할 때 김정근씨의 군번을 잘못 적어 넣는 바람에 착오로 군번이 이중 부여되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창씨개명을 했던 김OO씨가 해방 후 김정근이라는 이름으로 입대를 했기 때문에 군 병원에서 입원중인 부상병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동명이인의 군번을 잘못 기재하는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기사를 접한 네티즌들은 책임을 회피하는 관계기관의 태도에 분통을 터트렸다. 네티즌들은 “나라를 위해 싸우다 다친 것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다면 이 나라는 누가 지킬 것인가” 반문하며 “국가유공자들이 억울한 일이 없도록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불구가 된 김정근씨는 수십 년 동안 자신의 잘못된 군 기록을 바로 잡아달라고 싸워야만 했다. 목숨까지 걸고 지켜낸 국가를 상대로 한 고통스런 전쟁이었다. 그리고 지금 국가는 ‘ 행정착오’ ‘법적으로는 어쩔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는 말만 되풀이 할뿐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김정근씨의 전쟁. 이 전쟁은 그래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진 및 기사에 도움을 주신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에게 감사드립니다. 인터넷검색창 혹은 오마이뉴스 기사검색창에 ‘아버지의 전쟁’을 검색하면 김도균기자가 쓴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댓글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이용희 기자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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