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1972년 11월 30일~12월 1일 서울에서 열린 제1차 남북조절위원회 본회담을 마친 후 평양 측 남북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 대리인 박성철 제2부수상이 서울을 떠나기 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서울 측 공동위원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이후락 공동위원장 뒤편으로 남측 위원 중 한 사람인 최규하 당시 대통령특별보좌관의 모습이 보인다. [출처 : 국가기록원] |
1972년 7월 4일 남북한 정부는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분단 이후 군사적 대결 양상으로만 치닫던 남북한이 최초로 평화통일 원칙에 합의한 역사적인 공동성명 문서다.
남쪽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쪽의 김영주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의 이름으로 발표한 성명에서는 △외세의 간섭이 없는 자주적 통일 △평화적 방법을 통한 실현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한 민족대단결 원칙을 천명했다. 즉, 남북이 무력통일을 포기하면서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의 3대원칙을 등장시키게 된 것이다. 남북한은 또 중상비방 및 무장도발의 중단, 다방면의 교류, 상설 직통전화의 개설, 남북조절위원회 구성 등도 약속했다.
공동성명이 도출되기까지 남북의 고위당국자가 비밀회담을 이어갔는데, 남쪽에서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평양을 오가며 회담에 참여했고, 북쪽에서 박성철 제2부수상이 서울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북공동성명 이후 3개월 만에 남쪽에서는 반민주적인 유신체제가 들어서고, 2개월 뒤 북쪽에서는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헌법이 공포되면서 통일논의는 힘을 잃어갔고, 1973년 8월 ‘김대중 납치사건’을 계기로 남북조절위원회마저 중단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4남북공동성명은 한반도 통일논의의 중대한 시금석으로 남아 있다.
횡성희망신문 yongy63@naver.com
<저작권자 © 횡성희망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외협력관, 6년 전 논란을 다시 꺼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