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포동리에서 만난 이준경씨 |
횡성의 인구가 해마다 조금씩 늘고 있지만, 청년층의 유입은 많지 않다. 일찌감치 농촌으로의 이주를 계획하다 횡성에 온 지 3년째인 이준경(41) 씨는 어떻게 횡성살이를 하고 있을까.
이준경 씨는 ‘전원생활의 안락함’을 찾아 온 ‘낭만파’ 귀촌자가 아니라 ‘생계형’ 귀촌자에 해당하는 것 같다. 그는 횡성에 오기 전 건설회사와 출판사에 근무를 했었다고 한다. 건설회사는 “적성”에 안 맞았고, 출판사에선 “상사와 안 맞아서 쫓겨났다”는 그는, “더 이상 잘리는(해고되는) 일은 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다가 농사를 짓기로 마음을 먹었다. 가족들의 먹을거리를 스스로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생태귀농학교를 다니며 전국의 여러 귀농현장을 돌아다녔는데, 수업과 현실이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땅도 있고 집도 있어야 귀촌해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을 보게 된 이준경 씨는 농촌에 가서도 취직부터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가진 거라곤 몸뚱아리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상과 현실이 너무 다른 ‘귀촌 현장’
귀농학교를 마치고 횡성으로 오기 전, 이준경 씨는 서울의 한 생활협동조합에서 근무를 했다. 그때의 인연으로 횡성군 갑천면 포동리의 공동체농업지원센터에 취직이 결정되면서 2013년 11월부터 횡성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1년 가량 아내와 주말부부로 지내며 갑천면의 한 옛날농가 아궁이 방에 세들어 살던 이준경 씨. 나무를 해서 불을 때야 했기 때문에 어느 주말엔가 “나무하느라 (서울) 못 간다”고 했더니 아내가 “내가 횡성으로 가겠다”고 했단다. 그렇게 해서 지난해 연말 이 씨 부부는 횡성읍내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이준경 씨가 일하는 공동체농업지원센터는 마을의 고령농민들이 모여 ‘농산물 꾸러미’를 만들고 서울의 소비자와 직거래를 하는 일이 주된 사업이며, 자가사료로 사육하는 양계장에서 계란을 생산하고 있다.
이 씨의 일과는 거의 공동체농업지원센터의 울타리 안에서 진행되기에, 그가 주로 접촉하고 대화하는 사람은 동네 할머니들이라고 한다. 무언가 필요한 물품을 사러가더라도 갑천면을 벗어나지 않고 하루종일 포동리에 머물다보니, 이 씨는 스스로 “갑천면 개구리”(‘우물안 개구리’에서 끌어온 표현)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오는 10월말이면 공동체농업지원센터와 계약한 2년의 기간이 끝나게 되는데, 이 씨는 그때까지만 근무하기로 결정을 했다. 이준경 씨는 “처음엔 모든 게 만족스러웠고 재밌게 일했다. 그런데, 개인적인 발전이 정체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이준경 씨는 지난 겨울부터 학곡리의 한 공방에서 목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적성에 맞는지 알아보려는 생각”이었는데, “생활가구를 제작하는 일이 재미도 있고 소질도 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목수’일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지만, 올 가을 이후의 생업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나름대로 ‘준비’를 시작했지만, 아직 전망이 확실치는 않은 것이다.
| ▲ 공방 선생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탁자를 제작 중이다. 수압대패로 다리면을 다듬고 있다. |
이준경 씨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내비치는 한편, 해오던 일에 대한 ‘아쉬움’도 숨기지 않았다. “지역 어르신들의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농산물의 소비 통로를 만드는 것은 그 자체로 굉장히 의미가 있는 일이고, 그 일을 잘 해내고 싶었지만, (스스로의) 한계를 느꼈다”고 했다. 결국 이준경 씨의 횡성살이는 제2막을 준비한다. 그가 횡성으로 이주해서 정착하려는 청년들에게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까. 그의 성공을 기원한다. [이창조 기자]
이창조 기자 redfrog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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