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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연수 할머미(갑천면 포동리, 75세) |
2009년, 횡성에서 살아온 토종씨앗을 처음 조사할 때는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몰라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혹시 수십 년간 씨앗을 받아서 농사짓고 있는 것 있어요. ”하고 물어물어 찾곤 했다. 한 마을 안에서 여러 집을 다니다 보니 똑같은 씨앗들만 나왔다. 조사하는 의미를 찾지 못하고 고민하다가 마을이장님께 부탁드려서, 마을에서 오랫동안 토종으로 농사짓고 계신 어르신을 소개받아 찾아간 곳이 갑천면 포동리 이연수 할머니(75세)댁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마을에선 대부분 한두 집 씨앗들이 돌고 도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씨앗이 있을 거라고 이웃들이 알려주는 집을 찾아가면 그 마을 씨앗은 다 찾을 수 있었다. 이연수할머니도 마을에서 심고 있는 모든 씨앗을 갖고 계셨다.
그해는 토종 전문가이신 안완식 박사님을 모시고 토종보유현황조사를 할 때였다. 이연수 할머니는 우리밀, 목화, 하얀팥(물팥), 붉은팥, 올서리태, 늦서리태, 녹두,대추콩(대추밤콩) 등 십여 종을 갖고 계셨다. 박사님과 이야기하면서 토종으로 농사짓는 일이 대접을 받는다는 사실에 신이 나셨는지, 광으로 하우스로 들락날락 하시면서 씨앗들을 내주셨다. 거의 다 시어머니 때부터 농사를 지어오던 것이라고 하셨다. 할머니 계산으로 시어머니의 시어머니까지 올라가니 100년이 넘었을 거라는 씨앗들을 내주셨는데, 할머니보다 나이가 많은 횡성의 토종씨앗을 처음 본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의 인연으로 여성학을 전공하며 이대 대학원에 다니던 이효정씨가 횡성지역 할머니의 삶을 들여다보며 “토종씨앗지키기 운동을 통해본 여성농민의 토착지식에 관한 연구”논문을 발표한 일은 할머니에게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몇 년 만인 올해 3월 말에 다시 할머니 댁에 갔을 때 토종씨앗은 반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그동안 횡성에서 살아온 토종씨앗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홀로 농사짓지만, 이연수할머니는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지으신다. 몸이 편치 않으신 할아버지의 수발과 농사일을 하시느라 힘이 부쳐서 올해는 논농사는 짓지 않고, 옥수수,감자, 고추 등을 좀 심어 놓으셨다고 하셨다. 밀도 지우고 목화도 지우셨다고 한다. 방앗간이 없는 상태여서 “밀은 화초로 키우는 것도 힘에 부쳐” 하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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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 토종전문가 안완식 박사에게 붉은팥 토종씨앗을 보여주시는 이연수 할머니 |
2009년 현황 조사할 때 할머니 씨앗 중에 시어머니 시절부터 심어서 7~80년은 됐을 목화가 있었는데, 그해 심지 않았다며 씨앗을 챙겨 주셨다. 그때는 씨앗을 얻은 것만 좋아라하며, 심지 않고 여기저기 자랑만 하고 다닌 바람에 이연수할머니의 목화를 잃어버렸다. 전통방식으로 농사짓는 할머니들의 씨앗을 찾아 널리 알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 심게 하자고 하면서도 말만 앞서고 정작 심지 않고 지우게 된 경우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조그만 위안이 되는 것은 할머니가 주신 밀씨를 여기저기 퍼트렸다는 것이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심고 가꾸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정성을 들여 토종씨앗을 가꾸는 농민들이 늘어나면서 어디에선가 이연수할머니의 밀씨는 자라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렇게 이연수 할머니의 목화는 사라져버렸다. 할머니가 오래오래 사실 거라 생각하고 아무 때나 가면 목화 씨앗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하고 있었던 탓이다. 다행히 여러 곳에서 목화를 심는 분들이 계셔서 다시 구할 수는 있었지만 할머니 씨앗을 잃은 게 안타깝다. 젊은 시절 새마을부녀회활동도 열심히 하셨고, 지금도 마음으로는 다 할 것 같지만, 여기저기 아파서 농사일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할머니를 보면 믿는 구석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올 봄에 받은 녹두, 서리태, 물팥, 대추콩, 속노란 검정콩, 쥐눈이콩 여섯 종의 씨앗을 여성농민회 채종포에 심고, 회원들도 나눠 심었다. 올해는 할머니의 씨앗을 받는 농사를 지을 것이다. 내년에는 더 많은 회원들이 할머니 씨앗으로 농사를 지을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찾아간 게 다행이었다.
부침개를 먹고 가라고 붙잡으셨는데 그냥 나오니 섭섭해 하시면서 데쳐놓은 황새나물을 싸주시고 텃밭에 난 명이, 밤나물, 달롱(달래) 등을 캐주셨다. “몇 뿌리만 심어놔도 나중엔 가족들이 미처 못 먹을 정도로 풍성해지니 꼬옥 심어 먹으라”는 당부로 배웅을 해주신 이연수 할머니를 또 찾아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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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연수 할머니의 토종씨앗들. 왼쪽부터 하얀팥(물팥), 밤콩, 녹두 |
횡성희망신문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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