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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인 ‘호돌이’와 엠블렘 |
1988년 9월 17일, 제24회 하계올림픽이 서울서 개막됐다. 10월 2일까지 16일 동안 열린이 올림픽은 우리 국민들에게 ‘8·15광복(1945년)’ 못지않은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조사한 ‘국민들이 생각하는 역사적 사건’에서 서울올림픽은 한국전쟁(72.2%, 복수응답)에 이어 2위(64.1%)를 차지다. 8·15광복(62.7%)은 3위였다.
칼루이스와 벤존슨 간의 육상100m 대결, 한국 여자핸드볼의 구기종목 사상 첫 메달 획득, 세계적 조롱거리가 된 한국복싱의 금메달 등 스포츠사(史)에 남을 장면과 사건들이 있었다.
서울올림픽은 정치사회적으로는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이 뚜렷하다. 앞서 80년 모스크바(소련)와84년 로스앤젤레스(미국) 올림픽이 반쪽짜리 올림픽으로 치러졌지만, 서울올림픽에는 미국과 소련을 포함한 동서 양 진영이 모두 참여했다. 한국정부가 160개 참가국 중 북한과 단독수교를 맺고 있었던 25개 참가국 대부분과 나중에 수교를 맺을 수 있게 된 것도 외교적 성과다. ‘한국’ 혹은 ‘서울’이라는 브랜드를 세계에 알리게 된 점 역시 긍정의 요소로 꼽힌다.
반면,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서울올림픽은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상징으로 활용됐고 많은 억압과 희생이 동반됐다. 도시의 빈민과 노점상들은 ‘미관상’ 정리되어야 했다. 1983년 신정동, 목동의 신시가지 조성사업, 성남 모란장 폐쇄 등은 그 피해의 사례로 꼽힌다.
이창조 기자 redfrog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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