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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여수시 마래터널 입구에 세워진 여순사건희생자위령비 |
‘여순사건’은 ‘제주4·3사건’과 더불어 해방정국에서 발생한 민족적 비극 가운데 하나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 14연대 내 군인들이 ‘제주4·3사건’에 대한 무력진압을 거부하며 시작된 ‘여순사건’은 10월 27일 진압군에 의해 완전 제압되기까지의 겨우 일주일 동안 최소 600명에서 많게는 수천명의 민간인들이 학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의 진실화해위원회조사를 통해 수백명의 민간희생자가 확인되기는 했지만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작업은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여순사건은 두 가지 연관된 사건으로도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첫째는 이승만 정권이 반공체제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면서,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본뜬 국가보안법이 1948년 12월 1일 제정되었다는 것. 둘째는 당시 육군 소령이었던 박정희가 남로당 군사총책으로 체포되었다는 것. 박정희는 1949년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구형받고 무기징역 선고받았으나, 자기가 가지고 있던 군부 내 남로당원 명단을 넘겨서 감형받은 이후 특사로 풀려났다.
이창조 기자 redfrog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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