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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광복(지용한옥학교 도편수) |
지난해 봄, 중국의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정 선생은 조선족 3세대로 중국에서 태어나 자란 연변자치구의 조선족이다. 그런 그가 내게 연락을 한 이유는 연변의 연길시에 전통의 조선식 집을 집고 싶다는 이유 즉, 우리의 전통한옥을 중국의 연변에 짓고 싶다는 것이다.
‘조선족 3세대’ 정 선생에게 민족이 갖는 의미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했고 그런 이유 때문에 바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시공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건평 80평에 이르는 건물의 설계는 전통목조방식의 중층 한옥으로 되어있었으며 건물의 전체적인 규모는 궁궐의 정전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지역에서 성공한 그에게 한옥의 의미는 무엇이고 어떤 이유로 이렇게까지 웅장한 건물을 계획하고 굳이 한국에서 전통목수를 섭외해 지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연변은 자치구로 조선족 즉 한국인이 살고 있는 도시로 자체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활동을 하고 있는 곳이다. 그는 한민족의 상징적인 의미로 우리의 전통한옥을 선택했고 최고의 건물을 만들어 중국의 여느 다른 민족들에게 그 우월감을 보이고 싶다고 했다. 수십 년의 역사를 거슬러 오르는 정도의 작은 소수민족이 아니고 반만년의 역사 속에서 그 전통성으로 민족의 대를 이어 살아가는 민족임을 보여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난주 연변자치구 연길시 의란진 용연촌에서 대주 정국회(건물주)씨의 80평 규모의 중층형 전통한옥 상량식이 있었다. 한국의 관음사 주지인 성산스님이 상량문을 낭독했고 그 자리에 수많은 조선족 관계자들을 비롯한 중국인들이 상량식과 전통한옥의 위용을 바라보았다. 특히나 조선민족박물관의 임장춘 관장은 전통의 한옥을 이렇게 웅장하게 만든 자리에 함께 할 수 있게 돼서 감회와 감동에 사로잡힌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중국 연변의 연길에서 전통한옥의 상량식을 마무리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 모습에 대한 상념에 사로 잡혔다. 비록 중국의 한자리에서 그 역사적 상황 때문에 떨어져 살아가고 있지만 역시 한민족의 한 핏줄을 이어받은 형제구나 생각되었다. 그들의 터전에 올라가는 한옥의 한자락 모습 모습에 감동을 해가면서 눈시울을 적시던 그 들의 모습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다시 돌아온 내 생활의 영역 안에서 그 모습을 다시금 떠올려 본다. 내가 이 자리에서 우리 문화의 한 맥을 잇고 내 삶을 다해서 그 전통을 잇고 있지만 정말 귀한 일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우리의 문화에 대한 우리의 전통에 대한 생각을 얼마나 갖고 살아가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국만리 머나먼 저 땅에서도 저렇게 우리의 한옥에 대한 복받침이 있는데 우리의 지금은 어떠한가 하는 생각에 새삼 부끄럽다.
그러나 난 오늘도 나무를 깎는다. 18m가 되는 대들보를 깎으며 변함없이 이 자리에서 우리의 맥을 잇고 살아가며, 변함없이 내 혼을 다해서 살아갈 것이다. 또 나의 제자들은 이런 나의 정신과 혼을 받아 그 맥을 이을 것이고 그들의 제자와 자식들은 그 안에서 우리의 정신과 혼을 부흥시키리라 믿는다.
현재를 살아가는 지금의 아쉬운 모든 것들을 탓하기 전에 이 자리에서 한발자국씩 우리의 혼을 물려주리라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중국 연변 연길의 상량을 마치며 일상에 묻힌다.
※이광복선생은 창덕궁복원, 불광사복원, 학사재시공 등의 경력을 갖고 있으며 우리나라 최고의 명장으로 일컫는 도편수다.
이광복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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