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월 내 나이 마흔에 둘째 선혜를 낳았다. 계획 밖이었고 어려운 생활형편을 고려해 주위에서 낳지 말라고 충고를 했지만 나는 내가 알아서 키울 거라고 고집을 피워 낳아버렸다. 워낙 뱃속에서도 유별났지만 태어나는 날 얼마나 쩌렁쩌렁하게 울어대는지 또 딸을 낳았냐고 타박하시던 친정엄마마저 피식 웃어버렸다.
큰애는 워낙 조용하고 아기자기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우리는 애 키우는 재미를 못 느끼고 키웠다. 그리고 둘 다 경험이 없던 터라 데리고 놀 줄도 모르고 맨날 돈 벌러 다니느라고 애한테 소홀하게 해서 애가 더 내성적이었던 것 같다.
둘째가 태어나면서부터 우리 집은 대변동이 일어났다. 새벽에 동이 트기 바쁘게 잠에서 깨어 “앙. 앙” 울어대서 온 집식구를 깨워버리는 바람에 우리 집 일과는 늘 다른 집보다 일찍 시작했다. 그게 돌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침 5시면 벌써 꼼지락거리고 일어나서 “엄마 엄마!”하면서 온 방안을 헤집고 다닌다. 달그락 달그락 서랍을 뒤지고 놀이감을 갖고 놀고 하다가 싫증이 나면 같이 놀아달라고 “엄마, 엄마!” 하면서 온 얼굴에 침을 발라 놓는다. 내가 일부러 화난척하고 “빨리 더 자!”하고 소리 지르면 찰싹 그 자리에 얼굴을 대고 누워서 눈을 감고 자는 척한다. 그러고는 2초도 못 참고 또 벌떡 일어나서 돌아다닌다. 싫증날 때 쯤 되면 저쪽 방에서 자고 있던 큰 딸이 문을 벌컥 하고 열고 들어온다. 큰애까지 깨고 나면 어쩔 수없이 나도 일어나서 아침 일과를 시작한다. 덕분에 늘 늦잠 자는 마누라를 안 깨우려고 조용조용 새벽출근을 하던 신랑은 온 집식구들의 “빠이 빠이!” 인사를 받으며 즐겁게 문을 나선다. 아침에 잠깐 쉬러 들어왔다가도 애들 재롱을 보느라고 나갈 생각을 안 한다.
선혜가 태어나고 우리 집은 웃음 끊길 날이 없고 그에 따라 복도 들어오는 것 같다. 우리 신랑은 몇 년 전에 밀렸던 월급도 이번에 받았다. 옛날 어르신들이 애들은 다 자기가 먹을 걸 쥐고 태어난다고 하시더니만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눈에 확 띄게 좋아진 건 아니지만 생활형편이 차츰 좋아지는 걸 느끼고 있다. 물론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다고 혼나던 나와 장맛비가 쏟아져도 뒷짐 지고 걸어가는 신랑이랑 만나서 안 맞는 것 투성이고 다툴 거리가 한두 가지 아니었다. 하지만 토끼 같은 두 아이 때문에 묻혀지고 참고 가고 하면서 살아왔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분명 그 많은 선택 중에서 나는 탁월한 선택을 했고 나는 행복하다. 앞으로도 계속 이 행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우리 가족, 화이팅! 사랑한다! 지혜, 선혜야! 앞으로도 계속 행복하게 살자!
고금화(청일면, 41).
이 글은 지난 5월 평생학습축제 문해백일장 결혼이민자 분야에서 2등상을 받은 글이다. 두 아이를 키우느라 늘 시간이 부족하지만 3월부터 다림촌에서 제과제빵 수업을 받고 있다.

▲ 두 딸들의 웃음 속에 우리가족의 행복도 커간다. 토끼같은 두 아이와 남편과 함께 이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고금화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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