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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수 <횡성도서관 관장> |
작은도서관을 위한 제언
이 글은 우리의 삶에서 도서관은 어떤 의미를 갖는 공간일까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했다.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도서관의 씁슬한 현실과 갖고 싶고 함께 만들어가야 할 도서관의 모습에 대해 2회에 걸쳐 고민해 본다. <편집자 주>
- 글 싣는 순서
① 우리나라 도서관의 씁쓸한 현실
②우리가 되찾고 싶은 도서관을 위해
존 테일러 개토는 <교실의 고백>에서 도서관과 학교의 차이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도서관에는 나이에 따라 격리된 아이들이 아니라 모든 연령층의 사람들이 함께 있다. 사서는 무엇을 읽어라, 어떤 순서로 읽어라 말하지 않고, 사람들의 독서에 점수를 매기지 않는다. 일정한 간격으로 종을 울려서 책읽기를 중단하라고 다그치지 않는다. 고전을 읽으면 더 행복해질 거라고 암시하지 않는다. 성적평가제도가 없고 우리들 가운데 누가 더 그 책을 읽을 자격이 있는지 결정하려 하지 않는다. 특혜를 베풀지 않으며 사회계층이나 재능이 있고 없음에 상관하지 않는다. 그리고 도서관은 학교용 교과서가 아니라 진짜 책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이론적으로 ‘아는’ 도서관의 모습이다. 그러나 내가 성장하는 동안 ‘만난’ 도서관은 달랐다. 입시와 경쟁위주의 교육에 시달리면서 우리는 생각의 우물을 깊게 해줄 책읽기나 마음을 풍요롭게 해줄 문화의 누림, 상상의 세계를 넓혀줄 정보의 기회로부터 멀어지기만 했다. 그런 것들을 도서관에서 만날 수 있어야 한다는 울분도 토해내지 않았다. 그저 성공만 하라는 경쟁에 몰렸고, 교과서와 참고서에 세상의 전부가 있다고 믿고 달달 외웠으며, 학교를 졸업하던 날, 교복을 벗고 책가방을 던지면서 그저 시험공부로 지긋지긋했던 도서관도 같이 날려 버렸다. 어른이 되고 보니 도서관은 우리에게 낯설고 먼, 회색의 건물일 뿐이다.
도서관, 그 정체성을 두고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있을 수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고 풀어야 할 숙제도 참 많은 것 같다. 지역사회 안에 도서관들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함께 지역의 책 문화 축제도 만들고, 찾아가는 도서관의 활동도 넓히면서 ‘도서관을 통한 마을 만들기’를 구상해야 하겠다.
‘도서관의 친구들’도 조직해 도서관의 뒷배를 든든히 해야겠다. 경제적으로나 정책적으로 도서관이 위기에 올 때 그들이 버텨줄 테니까. 지방자치단체의 단체장이 바뀐다고 도서관 정책이 이리저리 표류하지 않도록 제대로 된 조례도 만들어야 하고, 도서관이 지자체의 주요사업이 되도록 작은 도서관 지원센터도 있어야 되겠다. 그 뿐인가, 도서관은 그 지역의 주민, 학부모, 학생, 아이들, 모든 연령층이 이용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도서관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미치는 효과는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도서관에 투자한다는 것은 바로 미래의 지역인재에 투자하고, 정보에 투자하고,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단순하게 말하고 싶다. 이제 우리가 만드는 도서관은 본래의 도서관이자 한다고. 존 테일러 개토가 말하는 도서관이라면 아이들도 좋아할 것이다. 자꾸자꾸 오고 싶을 게다.
지금의 어른들이 그런 도서관을 인정하고, 그리고 적극적으로 만들어 준다면 도서관을 찾은 아이들의 몸집이 커가는 동안 정신의 세계, 마음의 세계, 상상의 세계는 같이 성장할 것이다. 그리고 행복해 할 것이다.
김영수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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