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잃어 애가 끊어지는 사람들에게 이제 그만 슬퍼하라는 건 우리가 할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게는 16학번 새내기 아들이 있습니다. 처음엔 이 녀석이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한등급 차이로 떨어져서 울고 불고 난리더니 지금은 그래도 지방의 어느 국립대에 원하는 과에 들어가 재밌고 신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건설일용직 목수입니다. 이곳 횡성에는 일거리가 없어 지방 여기저기를 다니더니만 몇 년전에는 급기야 제주도까지 내려가 일을 하였습니다. 다른 지방에서 일 할때는 일주일에 한번씩은 오더니만 제주도에서는 그러지를 못합니다. 집안 행사가 있을때나 명절때만 오더니만 제주도에서 눌러 살 작정인지 1년을 넘게 그러고 있었습니다. 겨울방학을 맞아 아들녀석이 아버지가 있는 제주도로 갔습니다. 두 달을 아버지와 살다 설을 앞두고 아빠와 함께 살림살이며 자동차며 다 챙겨서 횡성으로 왔습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사건은 실시간 뉴스로 생중계가 되었고 그 뉴스를 보고 있던 아들이 제게 한마디 합니다.
“ 엄마, 내가 횡성 올 때 저 배 타고 왔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습니다. 그 이후 세월호 사건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이 사건이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부실과, 사람보다 돈을 더 중요시하는 천민자본주의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였습니다.
일본에선 폐선될 배를 싼값에 사다가 안전장치도 소홀한 채 화물 과적, 선박의 무리한 증축 등 부실한 선박운영행태, 직업윤리를 찾아볼 수 없었던 선원들 그러한 모든 것들을 용인하고 감독 태만한 정부가 함께 만든 참사였습니다. 세월호사건은 하필이면 4월16일 우연히도 그날 일어났지만 사건이 일어난 건 필연이었습니다. 내 아들도 내 남편도 어쩌면 ‘가족과 함께 살기위해 짐을 싣고 오던 그날 잃었을 수도 있겠구나’ 깨닫습니다.
23년 전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사고가 날 무렵 결혼식을 올린 친구가 외국으로 신혼여행을 갔다가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CNN으로 방송이 되자 외국인들 보기 창피했다고 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창피하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502명 사망) 씨랜드 사건(1999년, 23명 사망) 대구 지하철 참사(2003년,192명 사망) 등을 거치며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월26일과 3월6일. 횡성에서는 두차례에 걸쳐 세월호 다큐멘터리 <나쁜 나라> 상영회가 열렸습니다. 진도 앞바다에서 생중계된 세월호 침몰사건은 304명의 희생자가 속해 있는 가족들에게 평생 지고 가야 할 상처를 안겨줬습니다. 그 중에서도 단원고 학생들의 유가족들은 자식 잃은 슬픔을 가눌 틈도 없이 국회에서, 광화문에서,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 앞에서 노숙 투쟁을 해야만 했습니다. 김진열감독의 <나쁜 나라>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얼마나 힘들게 진상규명 활동을 해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투쟁 1년의 기록물입니다.
상영회날 다큐멘터리 감독 김진열 감독과 유가족인 어머님들도 참석하셨습니다. 그날 단원고 3반의 한 어머님께서 그러시더군요. “옛날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을 때 남의 일이 아니라 내일이라고 생각하고 나섰다면 아마 세월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거라고 ..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데 너무 아파서 너무 아파서 가슴에 묻어지지 않는다던 아버지, 배안에 물이 차오르고 죽음이 엄습해 오던 무서운 순간에 내 아이가 마지막으로 애타게 불렀을 그 이름, 엄마 ,,,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못해줬다고 말하는 어머니 ,,
옛날엔 키우던 송아지를 팔고 나면 어미 소가 몇날 며칠을 애가 끊어지듯이 울었다고 합니다. 그 소가 그리 우는 것에 , 그 마을 사람 누구도 불평하거나 그만 울라고 하지도 않고, 소주인도 여물을 정성스럽게 끓여주었다고 합니다. 자식을 잃어 애가 끊어지는 사람들에게 이제 그만 슬퍼하라는 건 우리가 할 이야기가 아닙니다. 슬퍼하고 싶은 만큼 슬퍼하고 울고 싶은 만큼 울어야 합니다.
그 아이들이 살아있었다면 올해 16학번 새내기로 신나고 재밌게 살고 있었을 겁니다. 멋진 남자친구 만나 영화관에도 놀러가고, 예쁜 옷 입고 멋도 내고, 아니 대학교에 떨어졌다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을 수도 있고, 징그럽게 부모님 속을 썩이고 있을 수도 있겠죠.
추가열의 ‘행복해요’라는 노래가 생각이 납니다. “숨쉴 수 있어서, 바라볼 수 있어서, 만질 수가 있어서, 정말 행복해요. 말할 수도 있어서, 들을 수도 있어서, 사랑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요. 이 중에서 하나라도 내게 있다면 살아있다는 사실이죠. 행복한거죠. 살아있어 행복해 살아있어 행복해 니가 있어 행복해 정말로 행복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잊지 않는 것입니다.
김병선 기자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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