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앗(종자)은 땅, 물, 공기 다음으로 생물다양성을 유지·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다. 종자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종자주권의 거대한 담론을 따라가지 않더라도 씨앗이 없으면 사실 인류뿐만 아니라 지구 생태계 전체가 먹고 사는 문제가 어려워진다. 요즘처럼 기상변화로 유전자조작 사료곡물의 가격까지 폭등하는 현실에는 종다양성을 유지 발전시키면서 농경문화를 발전시켜온 선조들이 “죽을지언정 씨앗은 베고 죽는다” 라고 대대로 전해주신 삶의 지혜가 더욱 가슴속 깊이 다가온다.
우리나라는 세계유전자원 부국에 속한다. 그런데 한국의 농촌현실을 들여다 보면 부국이라는게 실감이 나질 않는다. 경제작물을 심느라 작물 이외의 풀들은 모두 제초제로, 벌과 나비 등 살아있는 곤충은 살충제로 모두 없애버리다 보니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종다양성은 점점 더 사라지는 현실 속에 있기 때문이다. 잘 살아보자고 다수확품종으로 개량하고 하우스 짓고, 관계시설 설치하고 여기저기 돈을 끌어다가 농사를 지어 농민들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빚은 빚대로 지고 평생지어 온 땅을 잃어버린 농민들이 평생 농사지어 농협이랑 기업만 살게 해주는 건 아니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올 정도로 남는 게 없다. 선조들은 다음해 심을 씨앗을 목숨처럼 지키라 했는데, 씨앗조차 팔아버리고 다음해는 종묘사에서 사다 심는 실정을 돌이킬 수 없을까.
어떤 씨앗으로 농사짓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수수나 기장의 예를 들면 옛날부터 내려오던 우리씨앗들은 가물어도 농사를 지을 수 있지만 기업이 판 씨앗들은 물과 비료가 없으면 수확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과 비료를 주고 키우니 병충해도 많아 농약을 치지 않으면 안 되는 씨앗들이라 생산비가 많이 든다. 농민들이 돈으로 농사짓고 석유로 농사짓는다는 말이 틀리지 않은 이유이다. 돈이 없으면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런데 돈이 있으면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종묘사에 가면 항상 농민이 농사지을 씨앗들을 살 수 있을까. 의문을 품어본다. 올해는 식물신품종 등록에 관한 국제조약이 발효되는 해다. 개인이나 기업, 국가가 육종한 품종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한 조약이다. 육종가의 권리를 보호해서 더욱 좋은 육종환경을 만든다는 취지지만 옛날부터 내려온 씨앗을 가지고 연구해서 만든 씨앗을 신품종이라고 등록하면 같은 씨앗을 대대로 받아서 농사짓는 농민들의 권리는 인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온 세계 소농조직을 중심으로 GMO종자반대, 토종씨앗지키기 운동을 하며 농민의 권리를 보장 받을 수 있는 대안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 ▲ 토종씨앗을 지켜온 횡성의 어머니. |
세계6위의 유전자원 부국의 영예를 간직하고 있는 국립유전자원센터에 냉동보관되어 있는 지역의 씨앗을 분양받아 변화된 기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심고 가꾸는 일은 국가가 나서서 농민들과 함께 해야 할 일이다. 여러 지자체에서 토종유전자원 지원조례를 만들어 농민들과 함께 토종씨앗을 지켜나가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는 것도 희망이다. 또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대대로 씨앗을 지켜왔던 여성농민들이 토종씨앗지키기 사업을 전국적으로 펼치면서 지역의 씨앗을 찾고 현장에서 복원하는 일은 자부심을 갖고 하는 일이 되었다. 이 모든 일들이 수천년 농경문화를 유지발전시켜오면서 지켜온 유전자가 농민들과 국민들에게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된다.
| ▲ 토종연구가 안완식 박사(오른쪽 첫번째)가 2009년 횡성군 갑천면에서 토종씨앗실태조사를 하고 있다. |
횡성군여성농민회와 횡성여성농업인센터에서는 그동안 횡성지역 재래종보유현황조사를 하고 조사과정에서 찾아진 토종씨앗을 나누며 지켜왔다. 그러나 우리들에 앞서 그동안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꿋꿋이 토종을 지키고 이웃에게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계신 농민들이 있다. 이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토종씨앗으로 농사지을 수 있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횡성에서 살아온 토종씨앗이야기의 연재를 시작한다.
횡성희망신문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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