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번역공부, 수영, 요리교실 등 횡성에 있는 많은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방통고를 졸업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진학을 계획하고 있다. 아내를 잘 이해하고 아껴주는 남편, 귀여운 아들 주성, 딸 주은이와 알콩달콩 살고 있다.
![]() |
| ▲ 육아의 어려움에도 반에서 5등 아래로 떨어진 적 없이 3학년2학기까지 다닌 방송통신고등학교에서의 한 장면 |
한국에 시집온 지 벌써 5년이 되고 있다. 처음에는 직장 자리에서 주부 자리로 옮겨 탄 신혼에 빠져 달콤하고 행복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싱크대 앞에만 서있는 내가 너무 무료해 미치려고 했다. 다행히 1년 뒤 아들을 가졌다. 태아를 위해 좋은 거만 먹고, 듣고, 보려고 바빴다. 그러나 또 하나의 걱정이 생겼다. 애기가 태어나면 내가 이 아이를 어떻게 양육해야 되냐는 거였다.
우리 부모님께서는 배우지 못하셔서 평생 힘든 일만 하셨다. 그럼에도 자식들에게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도록 영향을 주지 못하셨다. 나도 곧 누군가의 엄마가 될 텐데 이제 와서 부모를 원망하는 건 아니지만 그 부분은 한으로 남아 있다. 특히 한국에 와서 더욱더 심해졌다.
중국에서 30년을 살았다. 학교를 오래 다니지는 못했어도 여러 알바를 하면서 나름대로 교육도 많이 받았고, 수양 수준에서 지식 수준으로 까지 업그레이드도 했다. 그래서 나의 학력이 높지 않아도 경험과 성실하고 부지런함으로 어느 회사에 다녀도 인정을 받고 씩씩하게 살았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어디에 취직하려고 해도 학력부터 따진다. 게다가 말도 서투른 내가 한국에서 취직하려면 어림도 없는 일로 돼버렸다. 좋은 직장을 갖지 못하면 경제적으로도 어렵지만 자식한테도 좋지 않다. 어렸을 때 선생님들이 “엄마가 뭘 하세요.” 물었을 때 나는 다른 학생처럼 자신 있게 엄마가 다니는 직장을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두부 장사만 하셨다.) 나중에 우리 자식들도 나랑 똑같이 느낄까봐 걱정했다. 그래서 내 인생부터 자식의 교육과 자랑까지 고민하다가 드디어 배우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고등학교부터 다녀야 된다는 남편의 대답에 황당하고 혼란스러웠다. 아니 32살 아줌마가 고등학생하고 같이 학교 다니다니! 학교에서 날 받아주겠다고 해도 창피해서 못 다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남편이 나에게 어울리는 학교를 알아봐줬다. 방송통신고등학교이다. 여러 이유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한테 다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학교이다. 2010년 3월에 아들 백일도 안 되었을 때 고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첫날에 나는 뒤늦게 학교 다니는 것이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고 학교에 들어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개학식날 강당에 서있는 학생들은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거의 80%였다. 그리고 고 2·3학년 선배들을 보니 부끄러움이 하나도 없고 너무나도 당당하고 즐거운 표정이었다.
사람들은 바쁜 생활에 쫓기며 살다보니 나름대로 힘들고 지친다. 하지만 2주에 한 번씩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가 배움의 기쁨을 한껏 누리는 모습이, 그 시간을 너무 오래 기다린 듯 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나의 긴장감이 절반이나 풀렸고, 나도 선배님들처럼 열심히 다니고 많이 배워야 되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힘든 일이 많았다. 아직 모유를 먹고 있는 아들을 남편에게 맡기니 남편이 애를 보는 것이 서툴러서 힘들었고, 아들은 모유 대신 분유를 먹으니까 불편해서 자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나는 나대로 학교가면 3교시까지는 참을만한데 그 뒤 8교시까지는 젖이 많아서 유방이 터질 정도로 아팠다.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에 가서 젖을 짜는 것은 누구한테 말할 수도 없는 고통이었다.
그리고 수업은 생활용어가 아니라 과목마다 전문용어로 강의하기 때문에 못 알아듣고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학생들은 수업 끝나고 선생님께 여쭤보면 되는데 나는 질문조차 어려웠다. 그 전문용어 자체를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인터넷 강의 들을 때 거의 몇 번씩 듣고 자막까지 봐야한다. 자막을 보고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정지해서 메모해놓고 사전으로 찾고 이해한 다음 다시 듣기 때문에, 남들이 30분 만에 들을 수 있는 수업을 2시간씩 들어야 한다.
아들이 어릴 때는 낮에도 많이 자니까 아들이 자는 시간을 이용해 공부했다. 하지만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자 많이 자지도 않고 놀아달라고 매달렸다. 그때부터 밤늦게까지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내 나이를 고려해 둘째를 서둘러 가졌다. 아들은 여동생이 생긴 걸 알아서 그런지 더욱더 심하게 매달렸다. 게다가 입덧 때문에 힘들어서 밤에 아들을 재워놓고 나도 모르게 그냥 잠들어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러 어려움 속에서 틈틈이 공부했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반에서 5등 아래로 떨어진 적 없이 3학년 2학기에 들어왔다. 공부할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해서 엄마 품에서 자라야 되는 아들과 딸을 일찍부터 어린이집에 보냈다.
참 미안하다. 대신 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중국어 강사 혹은 한중 통번역사의 꿈을 향해 대학에 갈 거다. 얘들아! 나의 힘이 되라! 나는 너희들의 자랑스러운 엄마가 될 것이다!
횡성희망신문 yongy63@naver.com
<저작권자 © 횡성희망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외협력관, 6년 전 논란을 다시 꺼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