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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만회(횡성희망신문대표) |
개인의 이익을 우선하는 오만한 정치인은 진보도 보수도 아닌 오만한 정치인일 뿐이다. 진정한 보수와 진보는 헌신적이고 겸손하며 공동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
횡성의 정치인들과 기득권 세력들이 잘하는 것이 있다. 바로 ‘편싸움 정치’다. 주민들의 걱정과 비판에도 아랑곳 않고 끊임없이 내 편 네 편, 편을 가르고 줄서기를 요구한다.
총선이 끝나자 벌써부터 2년 후에 치러질 지방선거의 군수 후보로 몇몇 사람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이에 따른 줄 세우기와 편 가르기에 이런저런 뒷소문 이 이어지고 있다. 행사포스터의 디자인까지 이번 총선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편싸움 정치’가 한층 더 품격 떨어진 모습으로 기승을 부릴 모양이다.
민주 정치는 동일한 이념과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 정당을 만들고 유권자들의 신임을 얻어 권력을 획득하는 합리적 편싸움이다. 횡성은 외형적으로 보수와 진보의 이념을 표방한 정당을 간판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진정한 보수와 진보 정치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공천을 받기위한 현실적이고 이기적인 이유로 소속 정당을 선택한 정치인이 진보일 수 없다. 공천만 받으면 이긴다는 판단아래 소속을 옮기지 않는 이를 소신있는 정치인이라 말하기도 어렵다. 어찌되었건 공천부터 받고 볼일이라며 이 곳 저 곳을 기웃거린 이는 내세울 보수도 진보간판도 갖고 있지 않다.
보수주의는 인간을 불완전한 존재로 보기에 진정한 보수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보완하기 위해 겸손한 자세로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들로부터 지혜를 배우고자 한다. 그리고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임을 알기에 타인의 다름과 실수, 일탈에 대해서도 너그럽게 포용하고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횡성의 자칭 보수를 내세우는 정치인들에게서는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성찰을 찾아볼 수 없다.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기에 자신의 결정이 갖는 오류, 부족함에 대한 개선도 개혁도 없다. 개선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이익만 추구할 뿐이다. 다른 이들과의 소통을 통해 지혜를 구하는 겸손함도, 실수를 용납하고 ‘다름’을 포용하는 관용의 자세도 찾기 어렵다.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는 오만함과 이 그늘을 방패로 이익을 추구하는 차가운 보수의 모습만 있을 뿐이다.
진보주의는 사회의 불완전성과 모순을 타파하고 보다 나은 인간 중심의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의 변혁을 위해 용기를 낸다. 기득권 세력들의 잘못을 비판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횡성에서 진보라 자임하는 사람에게서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가?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신념과 그 신념을 구현하고자 하는 실천성을 상실하고 ‘진보’를 ‘자신’을 알리는 수단, 과거의 영광을 오늘의 부끄러운 모습을 가리는 방패로 내세우는 행태를 만날 수 있을 뿐이다.
민주 정치에서 권력 획득의 목적은 자신들이 지향하는 이념과 가치관을 사회 속에 구현하여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데 있다. 진정한 보수와 진보는 이를 위한 정치를 한다. 그들의 편싸움은 합리적이고 공정하고 사익보다 공익이 우선이다. 하지만 가짜 보수와 가짜 진보의 목소리가 큰 횡성에서 권력 획득은 이권 배분의 주도권을 장악헤 개인의 욕망을 실현하는데 있다. 지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지역 발전이라는 공익추구를 이들에게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횡성의 편싸움 정치가 ‘나만 살기’식의 품격떨어지는 저급한 패싸움 정치가 되는 이유다. 지역민은 안중에도 없는 오만한 정치가 바로잡히지 않으면서
‘정치가 지역 발전의 발목을 잡는다’는 한탄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지만 오만하고 자기 성찰과 반성의 노력없는 지역 정치인들에게는 지역민의 우려와 한탄의 소리가 들릴 리 없다. 횡성의 미래가 걱정이다.
횡성희망신문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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