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유평 사는 정호찬 형님이 청일족구회 회장을 맡고 계실 때다. 인터넷으로 송어낚시 검색을 하다가 어느 블로그에서 송어를 수십마리 낚아서 작은 물웅덩이에 가둬 놓은 사진을 보았는데 일행들이 200여마리를 잡았다는 내용이었다. 낚시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심각한 상태인 내가 전후 살피지 않고 족구회에 가서 이야기한 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당시 회장은 호찬형님, 낚시를 매우 좋아하신다.
당시 총무 김병관씨, 낚시를 매우 좋아한다.
은성이 아빠, 낚시 좋아한다.
나머지 회원들, 낚시를 좋아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매운탕에 소주라면 자다가도 개울로 나오는 사람들이다.
어느 날 자정이 넘은 시간, 야간족구를 하고 난 뒤 족구회 고문님네 맥주집 ‘영치킨’에서 나는 블로그의 내용을 혀가 반쯤 꼬부라져서 주절거렸고 회장인 호찬형님의 “야, 그럼 내 차로 다 같이 낚시를 가자!”라는 한 마디에 그만 작당이 이루어지고 말았다.
낚시를 모의한 그 시기는 오이 수확이 한창인 말 그대로의 농번기였다. 당시 오이를 수확해야 하는 회원들은 전 회장님 원복형님, 당시 회장님 호찬형님, 은성이 아빠 이병하씨, 이렇게 세 가구였다. 오이값도 괜찮았고 모두들 정신없이 바쁜 때였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의 무리들은 비밀리에 모여 하나씩 회원들을 포섭하여 인원을 확보하고 술 안먹는 최창은씨까지 협박 반 회유 반으로 끌어들여 ‘정선 아우라지배 전국족구대회에 참가한다!’는 거짓말로 입을 맞추고 심지어는 낚시 안 가는 회원들에게조차 철저히 진상을 은폐하였다.
마침내 어느 새벽 어스름에 오이수확일은 형수님들과 은성엄마에게 맡긴 채 블로그에서 본 정선 가수리로 회장님의 12인승 봉고는 회원들을 가득 채운 채 떠나고야 말았다.
아우라지배라는 족구대회는 없다.
회장님의 머리에서 급조된, 날조된, 유령대회일 뿐이다.
웃고 떠들며 두시간 넘게 달려서 정선 가수리에 도착은 했는데...어이쿠야! 아무리 봐도 송어가 있을 것 같지 않다. 블로그 사진으로는 강여울이었는데 도착해보니 저수지같은 곳이다. 블로그에서는 강가에 온통 숲이었는데 포장도로와 펜션들로 포위되어 있었다. 송어 포인트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왔으니 낚시를 하는데 역시나 꺽지뿐. 스핀너에도 웜에도 플라이에도. 송어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아! 회원들의 구박이 시작되는데...
만나는 사람들마다 묻고 물어서 자리를 옮겨 보지만 “송어축제”의 흔적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 와중에 당시 막내이던 형제슈퍼 김경남회원이 부인과 딸을 대동하고 김밥까지 준비해서는 뭘 응원할 지는 모르겠지만 형들 응원한다고 그 먼 길을 찾아왔다.
초행인 곳에서 계속 이동하느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을 게 뻔한데 잘 찾아 온 것을 보면 참 똑똑하구나 싶으면서도 얼마나 힘들게 헤매면서 찾아왔을까 싶다. (형들이 지은 죄가 참으로 크다.)
집안일 팽개치고 후배들까지 속여 가며 몰래 도망 나온 벌을 받아서인지 꺽지만 잡고 송어는 한 마리도 못 잡고 헤매다 지친 우리의 회장님 호찬형님은 결단을 내리셨다.
“야! 낚시 관두고 아까 저 쪽 양어장 있던데, 가서 송어 댓마리 사 와라!”
지금 회장을 맡고 있는 최창은 형님은 속실리에서 송어횟집을 운영하신다. 술을 아니 마신다는 죄로 바쁜 와중에 운전병으로 강제 징집되어서 왔는데, 정선까지 가서 잘 들지도 않는 싸구려 식칼을 들고 개울가에 쭈그려 앉아 송어회를 떠야 할 처지가 되었다. 최창은 형님은 아직도 아우라지 얘기만 나오면 목소리가 높아진다. 물론 나는 항상 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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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낚시를 매우 좋아하시는 호찬형님, 당시 총무 김병관씨 은성이 아빠와 낚시를 좋아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매운탕에 소주라면 자다가도 개울로 나올 다른 회원들은 있지도 않은 족구대회를 핑계로 한창 서둘러야 할 오이 수확도 내팽개치고 송어낚시를 갔다. 결과는 인터넷 낚시에 걸려든 꼴이었지만 지금도 매운탕에 소주는 단골 메뉴로 일상 속에 자리잡고 있다. |
그래도 송어회에 소주, 김밥을 차려 놓고 모여 앉으니 참 좋았다. (이런 게 소풍인가 보다.) 불쌍한 최창은 형님은 사이다만 마시면서 지루해하지만 다들 낚시는 꽝을 치고도 즐겁다.
돌아오는 길에 드라마 찍는 곳을 지나치며 천사같고 꽃 같은 여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다들 감격해 하기도 했다. 호찬형님을 비롯한 회원들이 차를 촬영장 쪽으로 돌리라고 아우성을 쳤지만 술을 먹지 않아 제정신인 기사는 직진뿐이었다.
며칠 후, 카리스마 넘치고 패기 넘치는 우리의 회장님. 그토록 비밀유지를 강조하시던 그 회장님이 형수님에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자진 실토하고 마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그 후, 오이를 팽개치고 도망갔던 당시의 전· 현직 회장님과 은성아빠는 한동안 족구장에서 볼 수 없었고 나는 아우라지배 사건의 원흉이 되어 아직도 도마에 오른다.
요즘 청일팀은 쏘가리낚시 모의를 하고 있다. 소양호, 인제, 영월이 후보지인데 이번에는 가족동반으로 갈 것이다. 드디어 개과천선한 바 청일족구회는 더욱 즐거운 모임이 될 것이다.
<후기>
있지도 않은 정선 아우라지배 전국 족구대회에 참가했던 청일족구회원들이 이번에는 정말로 정선에 1박2일 족구대회를 갔다 왔다. 9월 22일, 23일 이틀간 정선에서 개최된 강원도 생활체육족구대회에 횡성대표로 참가한 것이다. 죄 지은 놈은 범죄현장을 다시 간다던데 우리가 그 꼴인 것 같기도 하지만 우리는 즐겁게 온 힘을 다하여 우리랑 비슷한 다른 우리들이랑 실력을 겨루고 왔다. 오건택 전문기자
오건택 전문기자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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