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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에서 살아온 토종씨앗이야기 (9) 낯선 이름만큼이나 귀한 돼지파와 왕가래팥
횡성여성농업인센터 토종씨앗지킴이 | 승인 2012.10.29|(0호)
▲ 정양철씨 부부(공근면 어둔리)

  관리를 못해서 씨앗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쉽고 비싸게 팔리는 새로운 종자에 밀리다보니, 계절보다 빠르게 토종 씨앗이 없어지고 있다. 그렇기에 어떤 씨앗을 30년 넘게 해마다 심어온 농사꾼이 있다면, 분명 그는 그 작물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을 것이다. 횡성군 공근면 어둔리 정양철(여, 57)씨는 낯선 이름만큼이나 귀한 돼지파와 왕가래팥을 심고 거두는 분이다.

 돼지파는 생김새가 쪽파처럼 가늘지만 잎이 땅에 내려오도록 길다. 모내기철이면 뿌리째 뽑아 데쳐서 돌돌 말아 초고추장에 찍어먹는다. 여름까지 뜯어먹다가 뿌리를 남겨 종자를 쓰는데, 잘 말렸다가 마늘 심는 10월 말쯤 심는다. 

 농사를 짓고 계신 주위 분들께 여쭤보니, 모두들 돼지파에 대해 얘기해주셨다. 쪽파보다 알뿌리가 통통해서 ‘머리파’라고도 하고, 맛이 진하고 달큰하고, 돌돌 말아먹어 ‘상투 틀어 먹는다’고 하는 분도 있었다. 마늘 심는 시기에 심고 마늘 캘 때까지 잎을 먹는다니, 돼지파와 마늘은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을 것도 같다. 

  붉은 팥에 밀려 사라지고 있는 잿빛의 왕가래팥은 정양철씨의 시어른들 때부터 심었던 것이다. 붉은 팥보다 맛이 더 좋아, 떡소와 고물을 하고, 밥에 놔서 먹는다. 떡소는 잘 말린 팥을 타개서 불린 후 문질러 껍질을 떨어내고, 파실파실하게 삶아 으깨어 만든다. 해마다 제사와 명절 때 쓰고 있다. 

 왕가래팥으로 떡소를 만드는 과정이 어렵고 힘든 것처럼, 정양철씨가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살아온 삶에는 어려움이 배어 있었다. 공근중학교를 가기 위해 마을 저수지까지 한 시간 정도 걸어 내려가 버스를 타야 했던 네 자녀들은 지금은 모두 직장을 잡고 결혼을 했다. 

 갑천면 포동리가 그의 고향이다. 예전에는 포동교가 없어서 얕은 쪽으로 개울을 건너 갑천초등학교를 다녔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개울이 불까봐 얼른 집에 가라고 학교에서 일찍 돌려보냈다고. 남편이 사는 공근면 어둔리로 시집와 40년이 넘도록 살고 있다. 깊은 산골에서 묵묵히 일하면서, 고단함은 땀으로 흘러내리며,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듯,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 듯, 그렇게 그녀는 살고 있었다.  
 

 

 

(사진 왼쪽 위부터) 하지 일주일 전에 심으면 알이 굵어진다는 왕가래 팥. 덩굴이 올라가고, 껍질째 볶아먹는 반찬콩. 마늘 심는 시기에 심고 마늘 캘 때까지 잎을 먹는 돼지파.


 “왕가래팥은 하지 일주일 전에 심으면 알이 굵어져요. 그 전에 심으면 잘게 나오고. 200평 심으면 한 가마 넘게 나와요. 잎이 노릇노릇해지면 10월 중순 넘어서 거두지요. 집에서 먹어봐야 한 말 정도밖에 안 먹어요. 밥에 섞어먹으라고 아이들에게 주기도 하죠.”

 80KG 넘게 나오는 왕가래팥 대부분은 한 말(8㎏)에 4만원 정도 받고 횡성 쌀가게 집에 팔고 있다. 너무 싼값에 파는 것 같아 장에 내다팔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장에서 파는 걸 못해. 일하러 다니는 게 더 나아. 하루 종일 앉아 있으면 힘들고 안 팔리면 어떡해.”

 정양철씨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평창으로 농사 날품을 다닌다. 집 농사 하고 집안 일 하다가 시간 나는 대로 가니 한 달에 열흘 꼴이다. 남편과 함께 논 20마지기와 밭 2천 평, 남의 밭 천 평을 더 부치며 부지런히 산다. 씨앗이 있고, 농사꾼이니 씨를 두기 위해서도 계속 토종을 심는다는 남편 말씀에 그 분들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돼지파를 심었던 자리에 토종 들깨가 여물어가고 밭 울타리엔 덩굴이 올라가고, 껍질째 볶아먹는 반찬콩이 보였다. 반찬콩 종자는 다 없어져서 보기 힘들다. 반가웠다. 올해 씨앗을 구해 처음 심었다고 한다. 씨앗하라며 돼지파와 반찬콩을 넉넉히 주셨다. 처음 보는 사람을 푸근하게 해주는 넉넉한 마음이 전해져왔다. 돼지파와 왕가래팥이 다시 농촌 곳곳에 퍼졌으면 좋겠다.

 

 

 

 

 

 

횡성여성농업인센터 토종씨앗지킴이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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