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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모니카 듣는 새 / 캔바스에 아크릴 10F |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나와 같은 반 친구 근세는 새로 부임한 미모의 처녀 선생을 사랑하게 되었다. 며칠을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쩔쩔매던 그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내게 자문을 구했다. 나는 여자는 돈에 약하니까 돈을 줘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순수하고 우직한 근세는 나의 제안을 앞 뒤 재지 않고 바로 수용 했다. “얼마를 주면 될까.” 그가 물었고 나는 100원 정도면 되지 않겠냐고 대답했다. 70년대 강원도 산골의 중학생에게 100원은 큰돈이었다. 1주일 용돈이었다. 근세는 영어로 ‘I love you‘ 라고 쓰고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드디어 그녀의 수업 시간이 돌아왔고 그는 100원을 동봉한 연애편지를 교탁 위에 올려놓았다.
근세에게 돌아온 것은 사랑이 아니라 매였다. 근세는 그 날의 실패 이유를 돈의 액수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했다. 그 날의 상처 때문이었는지 근세는 열심히 돈을 벌었다. 지금도 친구들이 모이면 거의 그가 술값을 낸다. 어쨌거나 강원도 산골의 까까머리 촌놈들이 여자가 돈에 약하다는 걸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물질 숭배를 조장했던 군부 독재의 세뇌 탓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의문이 아닐 수가 없다.
정현우/ 시인·화가
희망신문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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