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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별일 없이 산다[기고]
아무개 | 승인 2012.11.26|(0호)
지난 11월 8일 201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졌다. 짧게 보면 1년간, 길게 보면 10여 년간 대학진학을 향해 달려온 수험생들에게 이제 큰 고비 하나가 지나갔다. 이 글은 수능시험을 보고 난 횡성고 3학년 학생의 이야기다. 아직 스스로에게 부끄럽다고 생각해서인지, 본인의 실명공개를 무척 창피해했다. 이 학생의 뜻을 존중해, 가명 원고로 내보내는 것에 대해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편집자주>

▲ 아무개(횡성고3)

12년동안 나의 목표였던 수능이 끝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루했던 시간들을 나도 모르게 지내 왔던 것이다. 수능을 위해 공부를 하면서 수능이 끝난 뒤로 미루어 왔던 많은 일들. 밤새 게임하고 영화보고 못해본 연애도 해보는 그런 꿈같은 일들을 이제 시도 할 수 있게 됐다. 

 수능을 보기 전까지는 난 모의고사를 망쳐도 수능 때 대박 날 것이라고 믿었고. 공부를 별로 안한 부분에서 나오면 내가 아는 얕은 지식만 가지고도 풀 수 있을 것이라고, 한마디로 말하면 실력도 실력이지만 나에겐 운이 따를 것이라고 그리고 대박이 나면 내가 꿈꾸어 왔던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내 생각과 달랐다. 시간을 상대적으로 적게 투자한 부분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내가 정말 공들인 부분에서도 굉장히 실망스러운 점수를 받았다. 난 며칠간 우울한 상태로 있었다. 정말 많이 울었다.

친구들과 내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나를 비웃고 있을 것 같았다. 내 친구들의 미래와 내 미래를 비교하면 할수록 나는 점점 더 비참해져 갔다. 내 인생은 실패작이라고 여겨졌다. 부모님을 뵈는게 매우 죄스러웠다. 잠시라도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자꾸 점수들이 떠올랐다. 

 내가 꿈꿔 왔던 대학들은 정말 꿈이 되었다. 내 진로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고려해봐야 했다. 혹시나 내 마음에 변화를 줄 수 있을까 해서 읽어본 자기계발서들은 나와는 동떨어진 이야기 같아서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대학에 이미 합격했거나 수능을 괜찮게 봐서 안심을 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정말 미칠 듯이 부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좀 지나서 인지 아니면 수능 성적표가 아직 안 나와서 인지 가끔씩 수능이나 대학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때를 제외하곤 우울하지는 않다. 

 며칠동안 혼자 고민해봤는데 내가 아무리 나를 비참하게 만들고 내게 욕하고 내가 수능을 위해 준비했던 과정들을 후회해 봐도 아무것도 해결되는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조금씩 해내가고 있다. 영화도 몇 번 보고 친구들이랑 게임도 실컷 했다. 또 내 힘으로 돈도 벌고 싶어 친구와 아르바이트자리를 구하고 있다. 데이트를 하는 것은... 없다.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요즘은 순간을 즐기고 있다. 인생에서 지금만큼 마음껏 놀 수 있을 때가 또 어디 있을까. 남들의 시선에서는 내가 보내는 시간들이 낭비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상관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아무개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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