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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강(蟾江)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17.07.17|(132호)
제20회 공무원문예대전에서 임청근 전 횡성군시설사업소장이 수필부문 동상을 수상했다. 올해 문예대전은 1484명의 전현직 공무원 2968편이 열띤 경합을 벌였다. 섬강을 주제로 한 임청근 전 소장의 동상 수상작을 소개한다.

 


섬강(蟾江)

가을 건들마가 산골짜기에서 내려온다. 숲이 흔들린다.
섬강둔치에 갈대밭이 술렁댄다. 석양이 산마루에서 팔부능선위로 붉게 빗금을 치고 있다. 물위에 닿을 듯 말 듯 날개를 펄럭이며 왜가리 한 마리가 노을빛 속으로 들어간다. 맞은 편 허공에서 하얀 수건을 나풀대듯 너른 날개를 편 흰 짝지가 날아온다. 두 마리가 선회하며 강 한가운데 바위에 앉는다. 생명의 보금자리가 한눈에 보이는 듯하다.
 섬강(蟾江) 이라는 이름은 강기슭에 큰 두꺼비바위가 새끼두꺼비를 업고 있는 형상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인지 강 가운데 기기묘묘한 크고 작은 바위군집이 수백 개의 집채를 이루며 흩어져있다. 사시사철 강기슭의 바위위에는 낚시꾼들이 부동의 자세로 앉아 있거나 서 있곤 한다.

  지난여름, 강가에 머리를 식히러 나오니 물이 불어 강 가운데 바위섬에는 못 오르고 강턱에서 줄지어 선 낚시꾼들을 보았다. 웅성웅성 모여 있는 모습에 호기심으로 다가서니 그곳에는 커다란 뱀장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주춤 뒷걸음치며 얼마나 놀랬는지 손을 맞잡았다. 이곳에는 ‘정말 없는 것이 없구나 생명의 보고이구나 싶어’ 가슴도 두근거렸다. 뚝지, 황쏘가리, 누치, 피라미, 잉어, 자라 등속이 물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뱀장어까지 진흙 속에서 버글거리고 있을 줄이야. 마치 골목길에서 뜻밖의 사람이 뛰어나온 것처럼 경이롭다.

  우리는, 강물은 생명의 젖줄이요. 모성의 모태와 같다고 말한다. 나는 벌떡거리는 장어를 보고 산짐승을 본 듯 불끈대는 가슴의 고동을 느꼈다. 강은 모든 것을 품고 흐르고 있다. 토사로 내려오는 흙더미도 풀어 내리고, 아래로는 바위덩어리도 누대를 걸쳐 균열이 생겨 자갈이 되어 흐르고 풀벌레도 갯가에서 평화로이 보금자리를 만든다. 누가 초대하지 않았어도 여름새 겨울새 번갈아 찾아들고 때 되면 떠난다. 지금도 때가되면 떠날 새들이 갯바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고, 풀숲에서는 작은 참새들이 포르륵 거린다.
  이토록 생명의 움직임을 보면 새로운 기운을 얻는다. 무한히 너른 강폭에 어눌한 마음이 펴진다. 저녁강의 물결은 하루의 시간을 갈무리하는 어머니의 손길처럼 둥글게 흐른다. 흡사, 수많은 군상들이 재잘대며 서로를 위로하고 아픈 하루를 부둥켜안고 흐르는 어울림의 모습으로 아늑함을 느끼게 한다.

  마치 하루 일을 마치고 머리 숙여 기도하는 만종의 그림이 펼쳐진 듯한. 그런 분위기가 해거름 공기 속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내 맘이 직장에서의 풍진을 씻고,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저녁 강을 휘돌아 걷기를 즐기는 것은, 저 강물이 맑은 심성으로 보이고, 인내로 근면함으로 유유히 흐르기 때문이다. 나는 깨끗한 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덕지덕지 먼지가 낀 마음이 정화됨을 느낀다.
  문명을 발달시킨 곳에는 강이 줄기차게 흐르고 있듯이. 일개 작고 초라한 개인 하나하나에게도 강은 지친 피로를 씻어줄 뿐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심어준다. 수 천 수억의 물방울이 둥근 물결을 지으며 도란도란 흐르는 맑은 모습은 폐부를 상쾌하게 만들어준다.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 몸의 팔십 프로가 물로 이루어 졌고 지구의 삼분의 이가 바다로 이루어 졌으니 물은 곧 우리의 생명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물이 감정에 반응한다는 얘기가 관심을 끌고 있다. 

어느 일본학자의 실험이 떠오른다. 두 개의 병에 맑은 물을 넣고, 한 쪽에는 사랑의 말과 희망의 말을 하고 한 쪽에는 악담과 낙담의 말을 들려주었더니,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결과로 드러난 모습이 밝음과 어둠이었다고 한다. 한쪽은 맑고 깨끗한데, 한쪽은 해초가 썩은 것이 들어간 양 칙칙하고 엉긴 것처럼 더러워보였다고 한다. 그 실험에 놀라워 호수를 두 곳을 선정하여 한 곳은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고 한쪽은 시끄럽고 어둡고 나쁜 악설을 계속해서 들려주니 분명한 결과를 보여주는데. 좋은 음악을 들은 곳은 아리랑 춤을 춘 듯이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물의 결정체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반대경우의 물 결정체는 분자가 파괴되고 부서진 색다른 모습을 보여줬다고 한다. 학자들은 이런 실험을 여러 곳에 다양한 음악으로 적응시켜보고는 발표를 했다.

  나는 그 실험결과의 숱한 사진을 보았다. 시끄러운 음악을 들은 물은 물분자가 파괴되었고, 좋은 음악과 다정한 말을 들은 물은, 치솟고 휘감기고 예쁜 물무늬를 만들어 낸 사진을 보고 무척이나 놀랬다. 또한 놀란 가슴은 문득 내 소년시절이 떠올랐다. 착하고 인내심이 많다고 칭찬받던 그 시절 나는 얼마나 기특한 효도의 마음으로 부지런했던가. 또한, 청년시절 직업 없이 떠돌 때는 그 누구도 내게 정다운 말을 건네주지 않을 때 나는 얼마나 과격했던가. 이제 퇴직시절인 나는 분자가 파괴된 듯이 어느 한쪽이 부서진 마음으로 살고 있다.
  여기 이 깨끗한 강가에서, 바윗등에서, 물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 평온을 얻고 조용히 알음알이가 생기게 된다. 우리 곁의 사람들이 자살, 우울증 그런 것을 극복하려면 강가를 자주 걷는 그런 여유를 만들어주어야 될 것 같다. 우리 강이 이토록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우리가 강을 모두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곳의 생명을 바라보며 믿고, 내일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강을 대하니 강도 역시 우리에게 깨끗한 살점을 터주고 반짝거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강은 고요히 흐르며, 구름은 물론, 고층아파트건물도 온몸으로 비춰주고 있다. 속절없이 들여다보는 모든 것을 포용한 채, 그대로 투영되게 하는 포근한 모성의 섬강이다. 바닥도 수면도 깨끗한 강이다. 강을 바라보기만 해도 정화되는 듯싶다.

  저만치 강 건너편 산 아래를 바라본다. 버드나무 숲이 우거지고 그 뒤로는 아름드리 상수리나무들이 늘어선 강기슭을 본다. 낚시꾼 한 명이 솟은 나무인양 너럭바위위에 서 있다.
그쪽으로 건너간다. 강심이 낮아 징검다리를 무사히 건넌다. 물막이 보위에 놓은 돌다리여서 사이사이에는 보 앞에서 여울지든 물살이 빠져 나가느라 거센 물살이 세차게 소리치고 있다. 징검다리주변에는 실치를 비롯하여 작은 고기들이 바글바글 댄다. 바글대다가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하나같이 거슬러 올라가면서 성장해가는 물고기들, 우리 어린 시절과 똑같은 모습이 아니런가. 우리도 매사에 거슬러 가고 싶어 도전하는 게임을 수도 없이 자행하지 않았던가. 철이 들어서야 순리대로 따르는 하심을 배우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물고기길도 그와 같으리라.
 
이 강의 발원지는 청일면 신대리에 있는, 해발 1022미터의 봉복산(鳳福山)의 ‘돼지샘’이라는 작은 옹달샘에서 발원하여 250여리 밖에서 남한강과 합수되어 한강으로 흐른다. ‘봉황이 배를 하늘로 하고 누워있는 산의 형상’에서 시작하여 깊은 산들이 포개진 골짜기를, 안개 속을 헤치며 흘러 내려와 이토록 유유히 흐르고 있다. 밤이면 은하수가 흐르는 섬강의 너비는 1,303㎢ 으로 수량이 풍부하고 경관이 빼어났다. 한강을 흘러 먼 바다로 가는, 물길이 닿는 곳마다 비경이요 바위를 휘감고 나가는 절묘의 소리를 내는, 섬강줄기 73.02킬로미터의 한 정점에서 나는 나의 반려자를 만났다. 처음 내 고장을 찾아온 그녀에게 제일 먼저 보여준 곳이 바로 안개 낀 섬강이었다. 우리는 섬강의 텃새처럼 은빛모래 바위성채를 보금자리로 그려보고 있었다. 서로의 고집을 버리고 유유히 먼 길을 은하수처럼 펼쳐나가리라. 두 마음을 하나로 합쳐 흐르기로 강가에서 맹세하였다. 지금도 우리는 섬강처럼 바위를 감싸고 벌판을 휘돌아, 역경을 이기며 먼 바다로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다.

  낚시꾼은 이제는 바위 귀에 앉아있다. 서서히 어둠의 홑이불이 쌓여지는 강물을 자세히 보려는 듯 꼼짝없이 내려다보고 있다. 나도 말없이 바윗등, 그 옆에 앉는다. 고무통에 뚝지 한 마리 들어있다.
  음력 8월 중순경, 건들마가 휙 불어온다. ‘후드득’ 도토리가 강물로 떨어
진다. 작은 풀벌레도 떨어졌으리라. 작은 동그라미들이 숱한 흔적을 남기다가, 이내 반짝이는 윤슬로 본래 모습을 찾는다. 우리네 인생도 숱한 난관을 넘고 넘어서야, 시간이 강물같이 흐른 뒤에야 평화를 맛보지 않는가. 번뇌가 별처럼 많아도, 강물을 바라보며 나를 하심으로 흐르게 하고자 이곳을 자주 찾는다. 시시각각 변하는 섬강의 모습에 조응하며, 번뇌를 강물에 띄우면, 베토벤이 귀가 안 들리는 역경 속에서도 작곡한 전원교향곡이 물속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내 고향에 이토록 신비한 강물이 있어 나는 어려운 현실을 이겨내는 힘을 암암리에 얻고 있는지도 모른다. 
  강물은 오랜 세월동안 내게 말한다. ‘마음을 정화시키고 나를 보라. 그리하면 내가 두려움 없이 사랑을 발휘하리라.’ 
 풀기 없는 홑이불처럼 어둠이 부드럽게 강물을 덮었다. 우리는 일어섰다. 낚시꾼은 뚝지를 강물에 던지고, 나는 말없이 미소를 강물에 던졌다. 강물은 잃어버린 사랑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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