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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태진 전 군수가 재직당시 횡성한우를 홍보하는 모습 |
횡성한우는 누가 뭐래도 횡성의 지역경제를 이끌어가는 대표상품이다. 지난해에도 대한민국소비자 신뢰 대표브랜드 대상을 받았다. 5년 연속수상이다.
횡성군은 횡성한우명품화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고 보고 횡성한우의 세계화전략을 본격추진할 계획이다.
명실공히 대한민국 한우의 선두주자로 공인받고 지역민들의 자부심도 크지만 한편에선 안심할 수만은 없다는 지적이다. 밀려오는 수입쇠고기와 부상하는 국내 브랜드도 상대해야 하는데 ‘진짜 횡성한우‘ 논쟁을 둘러싼 지역내 갈등과 유통시스템의 정비, 정체된 횡성한우축제까지 해결해야할 내부의 과제도 결코 만만치 않다.
횡성희망신문은 ‘횡성한우명품화전략’을 통해 오늘의 ‘횡성한우’를 있게 한 조태진 전 군수를 만났다. 횡성한우의 소비와 유통, 홍보의 기반을 마련한 조 전군수로부터 횡성한우의 태동과 성장과정을 돌아본다. 횡성 그리고 횡성한우의 과제들을 점검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실마리가 되기를 희망한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날이 추워 요즘엔 아침 7시경에 일어나서 오전에 한두시간 운동하고 점심 먹고 오후엔 사람들 만나고 책읽고 뭐 그렇지. 별다른 일이야 있나.
-1995년부터 2006년까지 횡성군수로 재직하며 ‘횡성한우’를 지역의 대표상품으로 키웠다고 평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뭐 나 혼자한 일인가. 축협이랑 지역민들이랑 공무원들이 모두 같이 했지.
-군수취임 초기인 1995년부터 ‘횡성한우명품화사업’을 시작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사업인데요. 사실 전국에 쌀농사 안짓고 소 안 키우는 농촌 없는데 한우를 지역의 대표상품으로 키우겠다는 결정을 하기가 쉽지는 않았을거 같습니다. ‘횡성한우명품화사업’은 왜, 어떤 이유로 시작하신 겁니까.
▶사실 그래. 다들 소키우지. 횡성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왜 한우냐...사실 내가 농촌에서 태어나 자랐어. 고등학교 밖에 못나왔어. 농촌에서 자라면서 집안도 어려웠지. 우리 부모님들도 학교도 못다닐 만큼 어려운 형편이었지. 우리 부모님은 농사라고해야 남의 농사를 짓는 거였고 마차에 짐을 실어나르면서 품값을 받고 그랬지. 옛날에는 둔내에서 횡성까지 말이 끄는 마차가 있었거든. 차근차근 돈을모아 언젠가 집을 지으셨는데 그때 마차를 팔아 집을 지었던 기억이 나. 또 농토가 없으니까 암송아지 한 마리 구해서 키워서 송아지 낳으면 팔고 또 키워서 팔고 그러면서 조금씩 땅도 사고 그랬지. 어릴적 부모님의 그런 모습을 본 것이 머릿속에 강하게 남게됐어.
사실 농촌에서 애들 학비를 낸다거나 땅을 사거나 뭐 그런 몫돈을 만들 수 있는 거는 소를 먹여서 파는 거밖에 없는 셈이야. 제일 큰 재산목록이지. 그러니 나도 학교 갔다오면 꼴을 베고 겨울이면 콩깍지 쑤어 소를 먹이고 그랬어. 아버지가 소나 돼지를 팔고 살때면 나도 아버지따라 우시장을 같이 다녔거든. 그때 전국의 소가 횡성우시장에 몰려와 매매가 될 정도였으니까 정말 컸어.
그래서 95년 군수가 되고 나서 맨처음 생각한게 ‘소’야. 소를 잘 키우면 괜찮겠다 생각했지.
‘횡성한우명품화사업’은 그렇게 시작하게 된 거야.
-횡성한우명품화사업을 축협과 함께 시작했지요.
▶우리(횡성군)가 모든 것을 축협에 지원할 테니 축협에서 한우에 대해서 잘 연구해 횡성에서 키우는 소를 명품으로 키워보자 한거지. 횡성군이 예산을 지원하고 축협이 기술과 현장을 맡아 농가와 함께 명품화사업을 시작하게 됐어.
-명품화사업의 핵심이 거세한우였는데요 농가의 반응은 어땠나요.
▶다 좋아하진 않았지. 보통은 30개월 정도면 내다 팔 수 있는데 거세를 하면 대략 6개월 정도 더 키워야 돼. 성장이 좀 늦어지거든. 대신 육질이 고급화돼. 소위 말하는 투플러스 등급을 얻을 수 있어. 하지만 소를 6개월이나 더 키워야 팔 수 있으니 생산비는 많이 들고 회전은 빨리 안되니 농가에서 다 좋다고 하지는 않았어. 못마땅해 하면서 거세한우를 안하려는 농가도 많았어.
별달리 가진 것 없는 농촌에서 몫돈을 만들 수 있는 ‘소‘에 주목하고 차별화정책을 시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관행적으로 해온 방식을 버리고 눈앞의 경제적인 이익을 양보하면서 새로운 기술과 방식을 도입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거부감은 비단 축산농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횡성군이 1995년부터 추진해온 ’횡성한우명품화사업‘의 출발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다음호에는 축산농가의 무관심과 반대를 해결하고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 일련의 과정을 들어본다.이용희 기자
이용희 기자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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