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 있는 사람과 한을 품고 죽은 자의 영혼, 토박이와 이주민간의 대화합이 세계화시대 횡성의 지속 가능한 발전의 초석임을 알아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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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송 (불영사주지) |
특히 정보통신혁명으로 야기된 세계화는 지구촌 이웃인 인류 모두 소통과 공존을 통한 상생 곧 사회통합이 불가피함을 일깨우며 ‘시절인연이 지리적 장점만 못하고, 지리적 장점보다 구성원간의 화합이 더 중요하다(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는 전래의 교훈을 돌이켜 보게 한다.
세계화는 1)분열과 대립 그리고 투쟁으로 점철된 국제화시대의 유물인 국경·이념·종교·문화·사상·종족·국적 등의 장벽이 무너져 내리고 2)인류가 지구촌의 한 가족으로 이웃을 서로 한얼님처럼 섬기(事人如天)는 삶을, 널리 이웃을 이롭게(弘益人間) 하는 삶을 실천해야만 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음을 뜻한다. 어쩌면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영혼과의 상생적 소통과 공존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 상황인지도 모른다.
출범을 앞두고 있는 ‘박근혜정부’가 대통합을 노래하고 있는 것도 세계화의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고자하는 일련의 노력으로 보인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 사회가 영호남 간 지역 갈등, 진보와 보수 간 이념 갈등, 세대 간·빈부 간 계층 갈등이 만연한 상극(相剋)의 시대에 아직도 살고 있지 않는지 돌이켜 보게 한다.
시대착오적인 삶을 조속히 정리하고 세계화시대에 부응하여 동체대비의 홍익인간하는 상생의 삶을 순조롭게 영위하려면 우선 대립과 전쟁으로 점철된 상극시대에 한(恨)을 품고 죽어간 이들의 영혼부터 위로해야함을 알아야 한다.
‘박근혜정부’가 진정 ‘사회대통합’을 바란다면 아쉬운 대로 ‘동학혁명, 독립운동, 6.25전쟁을 위시한 각종 정치적 사회적 이념적 갈등으로 한(恨)을 지닌 채 타계한 수많은 영령들을 위한 천도재’를 국가 차원에서 정중하게 거행하길 바란다.
한(恨)을 지닌 수많은 영령들을 외면한 채 아무리 그럴싸한 사회통합 정책들을 구현해도 모두 무위로 끝날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 이는 윤회와 환생과 빙의(憑依)가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자의 영혼이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일깨우듯이, 오늘날 사회적 갈등 또한 한(恨)을 지닌 채 죽어간 이들의 영혼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아가 국민으로 하여금 동체대비의 홍익인간 하는 삶을 영위하도록 격조 높은 대통합을 일구어 내려면 뭐니 뭐니 해도 모든 인간은 신성불가침의 존엄성을 지닌 초월적 존재임(一切衆生 悉有佛性)을 널리 일깨우는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온전히 일깨우는 교육개혁 없이 진정한 대통합은 불가하다.
인간의 존엄성을 온전히 일깨우는 교육개혁은 온전한 종교개혁을 전제로 한다. 사회대통합은 교육개혁과 종교개혁을 함께 해야 하는 참으로 어렵고 어려운 일이다.
이 벅찬 공약을 실천하고자하는 원대한 꿈을 지닌 ‘박근혜정부’는 실로 가상하기 이를 데 없으나 다소간 안쓰럽다. 꿈은 원대하나 인재와 방편은 궁해보이기에!
같은 맥락에서 눈 밝은 사람이라면 횡성 경제의 40%를 받쳐주는 한우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천도재도 매년 잊지 말고 거행하는 것이 횡성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첫 걸음임을 알아야 한다. 아울러 토박이와 이주민간의 대화합이 세계화시대의 지구촌의 이웃다운 삶이자, 횡성의 지속 가능한 발전의 초석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횡성에는 세계 제일이 셋이나 있다. 이 사실을 알아 자긍심을 갖고 제4, 제5의 세계 제일을 일구어 나간다면 일류화를 지향하는 세계화 시대를 선도한다 할 것이다. ‘세계 제일 횡성’이 꿈이 아니라 현실임을 토박이도 이주민도 함께 기꺼워했으면 한다.
학송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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