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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에서 살아온 토종씨앗이야기 (13) 겨울을 이겨내는 토종파처럼 당당하고 강인한 박은자 할머니암만 춥고 눈이 와도 안 얼어 죽어, 토종이니까
횡성여성농업인센터 토종씨앗지킴이 | 승인 2013.04.22|(0호)

횡성여성농업인센터 토종씨앗지킴이


 

 

 

▲ 겨울을 나고 봄에 돋아나는 토종 대파


 기후변화로 요즘 한반도의 겨울은 엄청 춥고 눈이 많이 오는 ‘엄동설한’이 되어버렸다. 작년 겨울 횡성도 영하 15도는 보통이었고 한 번 내린 눈은 좀처럼 녹지 않아 주민들에게 큰 불편을 주었다. 사람들도 적응하기 어려운 겨울을 토종 씨앗은 어떻게 넘겼을까. 

 

 

▲ 공근면 오산리 박은자 님

 공근면 오산리 박은자(65·여)님은 도시 소비자와 연결해서 제철 채소를 생산하는 ‘텃밭꾸러미 오산공동체’ 회원이다. 노지밭 한 이랑에는 검정비닐을 이불삼아 땅 속에서 겨울을 난 토종 대파가 한 뼘 길이로 실하게 자라고 있었다. 

 박은자님은 토종 대파 씨앗을 여성 농민회에서 얻어와 작년에 처음으로 심어보았다.

“8월에 포토를 넣었다가 모종을 9월 초에 하우스 한 이랑에 심고, 냉기지(남은 것)는 여기다 심었지. 한 달 되면 뽑아먹고선 냉기지. 둬두면 겨울 나고선 오월 유월에 꽃 동아리가 서가지고 까만 씨를 뜯어놨다가 심는 거야.”

 겨울을 난 시금치나 월동추, 대파들은 이렇게 봄에 씨앗을 받아두고 가을에 다시 뿌리게 된다. 하우스에 심은 토종 대파는 겨울에 얼지 않아 ‘텃밭 꾸러미’에도 넣었다고 한다. 노지보다 잎이 연하고 부드럽다. 벌써 꽃대가 서기 시작한 것도 있다. 예전에는 농가에서도 파가 귀해서 몇 뿌리 심어놓고 잎만 먹었다고 한다. 이제는 파무침이나 파김치를 해먹고, 모든 음식에 양념으로 쓰이는 대파. 과연 토종은 어떤 맛일까. 

 “이 파가 시장 대파보다 덜 매운 거 같애. 그거는 조금만 까도 눈이 시렵고 그러는데 이건 안 그렇고 맛도 나은 거 같애. 이 토종 파는 아무리 눈이 오고 추워도 살아. 이게 꽃이 이렇게 나오잖아. 요 대만 잘라주면 옆에서 또 움이 이렇게 나와. ”

 토종 파는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다. 개량 파는 꽃대를 잘라주면 움이 나오지도 않지만,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봄에 새로 심어야 먹을 수 있다. 기후변화를 이겨내고 살아남는 게 토종씨앗임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박은자 할머니의 토종 쪽파는 할머니의 농사 경력과 같으니 40년은 되었다. 쪽파도 9월 초부터 10일 경까지 알뿌리를 심어 자라면 김장 때 쓰고, 놔두었던 것은 봄에 뽑아먹고, 대파처럼 똑같이 봄 되면 종자를 거둔다. 대파는 씨를 받지만 쪽파는 뽑아서 잎이 말라버리면 통통한 뿌리를 종자로 쓴다. 고라니도 뜯어 먹는다는 토종 쪽파는 개량 쪽파보다 키가 작지만 맛나게 보였다. 

 할머니는 논 23마지기, 밭 2000평을 마련하기까지 남편과 함께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하셨다. 땅이 없어 종중의 시제를 지내주는 조건으로 우토답을 부치다가, 아이들 돌반지와 당신 패물을 팔아서 35년 전에 암소 한 마리를 샀다. 그 암소가 새끼를 나면 암소는 키우고, 황소는 팔아 사료값을 댔다. 한우를 칠팔년 키우다 한우를 다 팔아서 젖소 세 마리를 샀다. 젖소 세 마리가 마흔 여덟 마리가 되는 20년 동안, 논과 밭을 사고 아이들 공부를 시켰다. 

 마을 위로 고속도로가 지나가면서 젖소를 키울 수 없게 되자, 그 뒤로 6년은 담배 농사를 했다. 담배가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막내아들이 함께 농사를 짓기 시작했지만 담배잎이 색이 잘 나와야 하고 크기도 적당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않았다.

 지금은 논농사와 흰콩,옥수수,완두콩,들깨,고추,고구마, 감자 등의 밭농사를 하고 있다. 할머니는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시골에 사는 게 마음 편하지. 우리가 젖소를 키울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돈이 나왔어. 돈 구애를 안 받고, 애들 가르치는 데도 좋더라고. 근데 젖소를 안 하니까 돈이 통장에 없으면 안 되겠더라고. 그러니까 항상 계산을 하는 거야. 완두콩을 심으면 6월초에 따잖아. 6월까지 쓸 돈이 있으면 되는 거야. 그 다음은 8월에 고추가 나오잖아. 그렇게 또 생각하고.”

 3월이면 영농자금이라도 빌려 통장에 넣고 가을에 영농자금을 갚으며 빚은 지지 않고 살았다. 할머니가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

“ 지금 젊은 사람들은 힘든 일 안할려고 그래. 우리는 예전에 하도 없이 살으니까 남한테 업신여겨 사는 게 싫어서 일도 진짜 열심히 했어. 영농자금 받으면 우리는 가을에 다 가렸는데, 젊은 사람들은 빚 가리려고 생각을 안 해. 지금 한창 일할 땐데, 빚은 갚고 살아야 할 텐데...그러다 보니 이자도 못 가리니까 빚은 자꾸만 늘어나고.”

 새삼스레 어르신의 삶이 너무나 당당하고 높게 다가왔다. 세상의 변화도 기후변화만큼 빠르고 혹독하다. 한 번 추위에 얼어 죽어버리는 개량 씨앗처럼 젊은 세대는 유약하고 생명력이 짧다. 토종 파와 쪽파처럼 강하고 질긴 어르신의 삶의 방식을 배우고 싶다.

 

 

횡성여성농업인센터 토종씨앗지킴이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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