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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호 (더 이음 공동대표) |
1. 질적 민주주의의 핵심, 거버넌스(협치)
오래 전부터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말이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어가고 있다.
이는 첫째, 대의제 민주주의가 점점 고착화되면서 주권재민(主權在民)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민들은 선거에서 출마한 후보자들 중 한 명을 선택하는 것으로 그 권리가 제한됐다. 그 외에는 아무런 결정권한도 갖지 못한 채, 의사결정의 방관자 또는 관객일 수밖에 없었다.
둘째, 과거 산업화 시대의 사회발전 패러다임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산업화 시대에는 정치지도자의 고독한(?) 결정에 시민들이 성실히 따르는 것을 가장 유용한 사회발전 패러다임으로 여겼다. 그래도 경제는 성장했고, 시민들의 삶의 질이 나아진다는 것이 확인됐다. 그러나 산업화 시대가 끝나고 후기 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면서 삶의 질이 지속적으로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후퇴하는 현상을 체험하고 있다.
이렇듯 기존의 대의제 민주주의와 산업화 시대의 사회발전 패러다임이 한계를 드러냈다는 것에 세계의 많은 정치지도자들과 학자, 시민들이 동의하고, 새로운 지속가능한 사회발전 동력에 합의한 결론 중 가장 유력하게 인정받는 대안은 ‘거버넌스’로 표현되는 새로운 사회발전 패러다임이다. 이는 시민참여와 참여한 시민들에게 보다 많은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지속가능하고 질적인 사회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합의인 것이다.
세계적으로 거버넌스에 대한 공감대 확산은 주민투표 등 직접 참여제도를 활용해 시민들에게 직접 결정권을 부여한 사례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정치적 의사결정이 일부 정치 엘리트들에게 집중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이는 최근 ‘참여민주주의’라는 용어로 표현되기도 한다.
거버넌스는 민과 관의 협력적 관계에 그치는 개념이 아니다. 민관협력과 달리 거버넌스는 민과 관 간 ‘권한의 배분’을 전제로 한 협력 관계를 강조한다. 거버넌스를 협치(協治)라 번역하는 데에서 잘 알 수 있다. 즉, 거버넌스는 민과 관이 공동의 통치자 또는 운영자로서 협력적 권한을 나눠 갖는 형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행정에서 어떤 결정을 하기 전에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정도를 거버넌스라 칭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이러한 권한의 배분은 시민들의 참여를 전제로 한다. 참여하지 않는 시민들에게 권한을 배분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참여를 전제로 작동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버넌스는 시민들이 동원의 대상이 아닌 주체적 참여 활성화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참여 시민들에게 적절한 권한을 분배하는 과정을 통해 실현된다.
2. 주민참여예산제의 의의
참여예산은 UN이나 월드 뱅크(World Bank) 등으로부터 예산 및 행정의 투명성을 보장하는 가장 혁신적 방법의 하나라는 극찬을 받을 만큼, 이제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시민참여 정책 중 하나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이 참여예산이 처음 시작된 곳은 브라질의 남부에 있는 항구도시 뽀르뚜 알레그리다.
1989년부터 브라질의 조그만 도시 뽀르뚜 알레그리에서 시작된 참여예산이 급속히 전 세계의 도시들로 확산되었는데, 이는 시민들을 사회운영 즉 정치적 의사결정의 파트너로 참여시킬 수 있는 주민참여 프로그램에 대한 갈망이 컸기 때문이다. 특히, 예산이라는 것은 행정의 제반 행위 또는 권한의 거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예산의 쓰임새에 참여한다는 것은 행정 행위에 권한을 가지고 참여하는 주민참여제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 참여예산이 활성화되었다고 평가받는 도시들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3. 주민참여예산제의 의의를 충족시키는 몇 가지 조건들
1) 참여에 따른 권한 부여
주민참여예산제는 예산편성 과정에 대한 주민참여이고, 주민참여에 일정한 결정 권한을 부여할 수 있어야 ‘동원’과 다른 참여의 의의를 충족시킬 수 있다. 따라서 참여예산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가 하는 데에 대한 우선적 판단 근거는 주민들이 실질적인 의사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주민들이 참여하고 일정한 결정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예산 범위는 각 지역의 민원성 사업제안이 아닌 정책사업에 대한 참여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청소년을 위한 사업, 여성을 위한 사업, 저소득층을 위한 사업, 환경 관련 사업 등 주제별 또는 정책별 사업에 대한 주민제안 수렴과 이의 결정 등으로 주민참여예산 범위가 확대될 필요가 있다. 이는 예산편성 과정에 대한 주민참여를 실질화 하는 것이기도 하다.
2) 결정의 대표성 확보
그런데, 이런 권한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그 권한을 누가 행사하느냐에 대해 먼저 고려해야 한다. 행정이 일방적으로 선정한 이들에게 이러한 권한을 위임하는 것은 주민들의 대표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적인 의사결정 권한을 주민들에게 부여하기 위해서는 그 권한을 행사할 주체들이 최소한의 주민 대표성을 지닐 필요가 있다.
여기서 대표성을 부여한다는 것은 모든 주민들이 인정하는 대표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적으로 대표성을 부여하는 절차인 선거를 통해 대표성을 부여하자는 것도 아니다. 대표성은 참여한 주민들에 의해 확보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일부 자치단체의 주민참여예산위원회 구성방식인 공개모집-공개추첨은 대표성을 부여하는 좋은 방안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최근 더 많은 자치단체에서 채택하는, 동별 주민총회를 통해 동에 할당된 예산의 쓰임새를 결정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대표성은 참여의 개방성 정도에 따라 그 합리성이 확보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제도가 실질적인 합리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홍보와 시민사회의 노력이 함께 더해져야 한다. 즉, 이러한 선정 과정이 모든 주민들에게 고지될 수 있도록 홍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모으고 실제 참여를 일으킬 수 있는 시민사회의 노력이 함께 더해져야 한다.
3) 주민자치 활성화와 연계
세 번째 중요한 쟁점은 주민참여예산이 단순히 예산편성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넘어 주민들의 자치를 강화시키는 도구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즉, 주민들의 민원을 예산에 포함시키는 것을 넘어, 주민들의 자치를 위한 제반 기획과 활동에 권한을 부여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권한이라 함은 자신들이 수립한 지역사회 계획(마을계획)에 대한 기획과 집행의 권한을 예산을 통해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민참여예산은 주민들의 자치에 대해 예산결정권이라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과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주민참여예산이 단순히 행정의 예산편성 일부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아닌, 주민들의 자치를 강화하는 도구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주민참여예산의 중요한 목적으로 설정될 필요가 있다.
횡성희망신문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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