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회가 만난 사람] 최상환 생활공감정책모니터 횡성군대표
“경로당 가기 싫어서, 늙는다는 게 싫어서 열심히 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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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근무 인연으로 횡성으로 귀촌
은퇴후 사회봉사 열심히 하고 건강하게 젊게 살자 결심
88서울올림픽, 평창동계올림픽, 패럴림픽 자원봉사
자신감은 절반의 성공
나는 할 수 있다는 긍정적 생각으로 건강유지
타인을 위해 기여할 수 있다는 건 커다란 행복
그의 고향은 충남 논산이다. 최상환씨(73세)는 대우중공업 상무이사를 지냈고 은퇴 후 우천면으로 귀촌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6년 전이다. 손녀의 성장과정을 담은 책을 만들어 준 열정적인 할아버지였다. 세월이 흘러 손녀는 중학생이 됐고 그는 손녀에게 두 번째 책을 만들어줬다. 그는 현역시절의 경험을 살린 자원봉사활동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아왔다. 횡성군우수자원봉사자, 평창동계올림픽 통역 봉사 등 왕성한 활동으로 노년시대를 열어가는 최상환씨를 만났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내 나이가 경로당 다닐 나이인데 난 그게 싫어.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맨 먼저 하는 일이 나 자신을 향해 ‘I can do it’ 나는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요. 그리고 나서 책을 봐요. 하루에 한 권, 시간이 나면 두 권도 봐요. 인터넷으로 보니까.”
-어떻게 횡성으로 오시게 되었나요?
“대우중공업에서 한 30년 근무 했어요. 60세에 은퇴했어요. 정년퇴임 1년 앞두고 회사에서 재택 근무를 하래요. 공무원으로 말하면 공로연수와 같은 거죠. 그 기간에 은퇴 후 노년을 어디에서 정착하면 좋을까 생각하며 안 가본 곳이 없어요. 고향인 논산도 가보고... 여기저기를 다녀봤어요. 현직에 있을 때 대우중공업 원주지점장을 했던 적이 있어요. 영서지역에 굴삭기, 지게차 등 중장비를 판매하는 총 대장이었죠. 그 인연으로 우천 하대리에 땅 사고 집을 짓고 다 정리하고 내려왔어요. 그게 벌써 10년이 넘어요. ”
-공로연수기간 은퇴 후 뭘 할까 고민이 많았다고 하셨는데 그때 내린 결론은?
“결론은 사회봉사활동 열심히 하고 건강하게 젊게 살자. 그러기 위해선 사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 일이 무슨 일이든 내 능력껏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난 상관하지 않는다. 이렇게 결론을 내고 횡성에 정착하게 된 거죠. 귀농이 아니라 귀촌인 거죠.”
-6년 전 취재할 때 봤던 손녀는 많이 컸겠네요.
“그 뒤로 책 한 권을 더 만들어 줬지. 올해 중학생이 됐어요. 우천초등학교에 다닐 때 2년 간 미국 유학을 보냈어요. 지금은 나보다 영어를 더 잘해.”
손녀 얘기를 할 때면 더없이 행복한 할아버지였다. 그는 평창올림픽 자원봉사자 발대식에서 자원봉사자 대표로 선서를 했다. 88서울올림픽과 평창동계올림픽에 모두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이력과 영어와 독일어를 구사하는 실력, 70대의 나이는 신문과 방송의 주목을 끌며 각종 매체를 통해 소개됐다.
-그동안 해오신 자원봉사활동을 소개해주세요
“대표적인 게 평창동계올림픽이죠. 패럴림픽까지 포함해서. 전에 대우에서 홍보과장 할 때 ‘우리도 자원봉사활동을 하자’ 해서 88서울올림픽 때 자원봉사활동을 했는데 격세지감을 느껴요. 지금은 물이 필요하면 페트병을 주면 되지만 그때는 일일이 컵에다 줘야 했어요. 그때 한 10명이 팀을 꾸려 교대로 자원봉사활동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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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동계올림픽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최상환씨가 올해 1월 20일 평창동계올림픽 외신기자단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왼쪽 세 번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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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 자원봉사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점이 있다면
“정말 추웠어요. 하도 추워서 입이 얼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지경이었으니까요. 중요한 얘기 하나 할께요.
동계올림픽이 시작되기 전인 금년 1월, 남북아이스하키 단일팀 논의가 시작되니까 외신기자들이 취재하러 많이 왔어요. 그때 평창 국제방송센터에서 기자간담회가 열렸는데 제가 하게 됐어요.
미국, 일본 기자 할 것 없이 많이 왔어요. 근데 이란에서 온 여기자가 이상한 질문을 하는 거에요. “당신들은 남한이 북한을 점령하는 통일만 생각하는데 북한이 남한을 점령하는 통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거죠. 그런 정치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내가 답변할 사항이 아닌 것 같다 하니까 그럼 개인적인 견해를 말해달라는 거야. 참 곤란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껄껄 웃으며 대답했지. 아 그거 하나도 걱정할 것 없다. 지금 우리나라 5O대 이하는 최저 학력이 고졸 이상이다. 일제시대에는 못 배웠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했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다. 지금 우리는 자유를 만끽하고 살았기 때문에 만약 우리나라의 정치인이나 군인들이 잘못해 북한이 우리나라를 점령한다 해도 김정은의 억압과 통제, 그 통치스타일을 받아 줄 대한민국 국민은 하나도 없다. 그런 식으로 한다면 우리는 촛불을 들 것이고 그래도 물러나지 않는다면 횃불을 들 것이다. 그래서 3일 천하로 끝날 거다. 이렇게 내가 얘기 했어. 그랬더니 거기 온 외신기자들이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는 거야.”
그는 외신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그의 답변을 김부겸 행안부 장관에게도 보고했고 올해 4월 26일 정부종합청사에서 김부겸장관과 만났을 때 많은 칭찬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밀알들이 모여 큰 밥그릇을 채우듯 자신의 활동이 비록 작지만 최근의 남북평화무드 조성에 기여했다는 보람과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현재 하고 있는 자원봉사활동은?
“생활공감정책 모니터 횡성군 대표를 하고 있고 강원행복추진단 활동도 하고 있어요. 지난 겨울 생활공감정책 모니터들이 거리에서 주차관리하는 분들에게 방한화를 한 켤레씩 드리기도 했고요. 매월 500명의 회원들에게 전달되는 월남전 참전자 횡성군지회 소식지 만드는 일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그는 은퇴 후에도 현역시절 홍보실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살려 다양한 소식지를 만들어 왔다. 우천농공단지 소장으로 근무하며 우천농공단지소식지를 발행했고 현재는 월남전참전자횡성군지회 회원들의 경조사와 횡성군 주요소식, 참전자회 소식 등을 담은 소식지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3일부터 4일까지 전북 군산새만금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생활공감모니터단 중앙연찬회에 강원도대표로 참석해 정책건의사항을 발표하고 다음날인 5일에는 도내18개 시군행정민원처리 우수사례 평가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나이를 잊게 하는 왕성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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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행복추진단과 행정안전부 제6기 생활공감정책모니터 횡성군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최상환씨는 지난해 말 활동성과를 인정받아 강원도지사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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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천농공단지 소장으로 근무하며 만들었던 우천농공단지소식지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만들고 있는 월남참전자회소식지. |
-건강은 어떻게 관리하시나요
“ 텃밭가꾸어 내가 3분의 1먹고 친환경농사지어 자연으로 3분의 1 돌려주고, 다른 이들과 3분의 1 나누어 먹고...건강을 위해 운동이나 뭐 그런 특별한 것은 하지 않아.”
-자원봉사활동을 왜 열심히 하세요?
“경로당 가기 싫어서. 늙는다는 게 싫어. 그래서 열심히 사는 거지. 요즘 집에서 놀으니까 좀 심심해요. 어디 일자리 있으면 소개시켜줘요. (웃음)청소 일이라도 좋아요. 난 직위 이런 거 가리지 않으니까.”
-같은 연배의 노년세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 자신이 경로당에서 자원봉사를 받아야할 나이지만 자원봉사를 하고 있어요. 자신감은 절반의 성공입니다. ‘나는 할 수 있다’라는 긍정적 생각을 하게 되면 건강도 유지되고 자신이 살아 있는 한 타인을 위해 기여할 수 있다는 건 커다란 행복입니다. 자원봉사라는 게 나로 인해서 남이 행복해지는 거고 그것은 곧 내가 행복해지는 거다.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는 거다. 그러니 늙었다고 자원봉사를 받으려만 하지 말고 움직일 수만 있다면 해야 한다. 건강한 노인이 불편한 노인을 돌보는 노노케어가 한 예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생활하면 인생이 즐겁다. 그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향후 계획이 있다면
“2020년 7월 24일부터 8월 9일까지 열리는 도쿄올림픽에 가려고 해. 합격만 시켜준다면. 그리고 나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나에게 주어진 일이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생각이에요. 여건만 된다면 내 체력과 머리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할 생각이에요.”
최상환씨와 인터뷰를 하는 내내 “I can do it 나는 할 수 있다”라는 긍정의 마인드와 자신감이 행복의 비결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오늘도 “I can do it” 을 외치며 서울에서 도쿄까지 행복한 자원봉사의 여정을 계속할 것이다.
조만회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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