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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에서 살아온 토종씨앗이야기 (14) 속노란 검정콩·토종 찰옥수수 그리고 사라진 토종씨앗 보리감자와 메강냉이사부작 사부작 흘러가는 세월 속에, 고단함과 정성 담은
횡성여성농업인센터 토종씨앗지킴이 | 승인 2013.05.20|(0호)

횡성여성농업인센터 토종씨앗지킴이


  

▲ 김성옥 할머니(우천면 하궁리. 80세)


 김성옥(80세) 할머니 집은 고즈넉하고 정갈했다. 우천면 하궁 1리, 바로 뒤는 산이라 산 아래 집이다. 집으로 올라가는 밭둑 오른편에 많이 심어둔 딸기에 꽃이 하얗게 피었다. “여름에 따 잡수러 오시라”고 하신다. 마당에는 나무 그늘 아래 조그만 염소우리가 있다. 아직 물을 대지 않은 자그마한 논이 있어 여쭤보니, 힘이 들어 올해는 논을 부치지 않고 남을 줬다고. 사랑채를 돌아가니 밖에 양은 솥단지를 걸어놓은 게 보였다. 여기서 물도 끓이고 콩도 삶으실 게다. 바로 옆 텃밭에 감자 이랑 몇 골과 수북이 올라온 상추들이 보인다. 

 집으로 들어서니 할아버지가 점심을 드시고 방에 누워 쉬고 계셨다. 마루에 씨앗과 곡식들이 여기저기 바구니와 자루에 놓여있다. 30년 된 빨강 울타리콩은 벌써 심어서 씨앗을 볼 수 없었다. 대신 속노란 검정콩을 보여주셨다. 서리태보다 알이 탱글탱글하고 윤기가 돈다.

“이것도 20년이 넘었어. 속 파란 서리태가 약콩이라고 하는데 먹는 데는 이게 좋아. 속 파란 거는 담그면 물이 안 우러나잖아. 이건 물에 진하게 우러나. 볼그레한 게 우러나지. 통통한 게 예뻐. 속이 노랗잖아.”

 한 알 깨물어보니 속이 노란 게 맛나 보였다. 모두들 서리태를 심느라 속노란 검정콩은 이제 잘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 말씀마냥 맛이 더 좋고 자주빛 물이 우러난다니 특별한 성분이 있을 것 같다. 

 토종찰옥수수를 능거서 갈아놓은 강냉이쌀을 보여주셨다. 씨앗은 자식들이 와서 지난주에 다 심었다 한다. 나는 작년에 할머니가 주셨던 그 씨앗을 갖고 가 보여드렸다. 

 “지금은 뭐 슈퍼 옥수수가 나왔다고, 그게 맛있다고 모두 그것만 사서 심는다고 그러더라고. 나는 이걸로 강냉이쌀을 이렇게 해가지고 먹잖아. 이거는 심으면 자루가 아주 크지. 옥수수가 잘 되면 사람 키 한 질이 넘어. 소 먹일 옥수수대도 많이 나오지. ”

 토종 찰옥수수는 한 대에 커다란 게 한 자루 달리고, 잘 되면 두 개 달린다. 원대는 크고 나중 거는 조금 작다고 알려주셨다.  

 할머니는 오래도록 심어왔지만 그만 없어져버린 아쉬운 씨앗 얘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보리감자와 토종메강냉이도 그 하나다. 보리 감자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분홍색인데 “옛날에 ‘베 짜는 꼬리’처럼 길죽하멘 눈까리가 아주 다문다문 붙었다”고 한다. “잘 되면 굵은 게 기다매코 매끈매끈한게 맛도 좋고 연한데” 지난해 심지를 못해서 씨앗이 지워졌단다.

“남들은 뭘 그런 감자를 허느냐고 했지.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널리 알려가지고 좋은 감자 맹글어내면 좋겠다 해서 여기저기 얘기도 했는데, 그런 거 우습게 모두 생각하니.” 

  6.25 전부터 심어먹었던 종자인데, 할아버지가 심지 말라 야단을 해도 할머니는 몇 십 년을 넘게 심어왔다. 2년 전에만 할머니를 만났어도 종자가 남겨질 수 있었는데 정말 아쉬웠다.
 
  ‘토종 메강냉이’는 읍내 옥수수 튀기는 집에서 씨앗을 얻어 10년 넘게 심어왔었는데 작년에 다 익어 따먹을 때쯤, 산에서 멧돼지와 고라니가 내려와 씨앗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버렸다고.
“토종강냉이는 할아버지가 올챙이국수를 좋아해서 심었지. 강냉이 풋것 적에 따서 해먹으면 아주 배~치한 게 맛있어. 따서 생 걸 갈지. 맷돌에다 사뭇 갈아서 해먹었지. 달라붙으면 물을 주맨 보드랗게 갈아가지고 걸러. 체로 걸러가지고 국물로 하고 .”

 그 물을 걸죽해지게 오래 끓여서 뜸을 잘 들이고 올챙이국수 틀에 넣고 눌러 뽑아져 나온 국수를 찬물에 담가 건져 올리기만 하면 된다.

 예전 한창 해먹을 때는 얼마나 잘 되었는지 들고 일어서도 끊어지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메옥수수를 갈아 만든 올챙이국수는 고소하고 달근해서 일 년에 두 세 번씩은 꼭 해먹었다고. 시장에서 파는 올챙이 국수와는 맛이 사뭇 다르다고 하니 한번은 꼭 먹어보고 싶어졌다. 고향 둔내 장날에 가면 옛날식으로 만든 올챙이국수를 맛볼 수 있다고 알려주셨다. 

  할머니가 배웅해주시는데, 마당 한 귀퉁이에 토종대파가 꽃을 피운 게 꽃밭처럼 보였다. 아직 연하니 좋다며 대파를 뽑아 흙을 깨끗하게 털고 한웅큼 가득 주셨다. 할머니께 얻은 속노란 검정콩과 토종찰옥수수를 꼭 심어서 씨앗을 이어야겠다. 다음에 다시 오겠다고 인사드리고 나오는데, 시간이 잠시 멈춰버린 듯한 고즈넉한 풍경에 오래도록 가슴이 먹먹했다.

 

 

▲ 토종대파가 꽃을 피워 꽃밭같다

 

 

▲ 김성옥 할머니의 30년 된 토종찰옥수수
▲ 올챙이국수 틀. 지금도 일년에 한두번은 할아버지께 만들어 드린다.

 

 

 

 

 

횡성여성농업인센터 토종씨앗지킴이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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