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만식 교수의 옛이야기 속 부부 심리>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오늘을 만들어 간다)’의 정신을 기치로 장만식 교수의 옛이야기 속 부부 심리 컬럼을 시작합니다.
<가족은 사랑이고, 하나입니다>
가족, 우리에게 가족은 무엇인가요? 늘 흔들림 없이 우리 곁을 지키고 있을 것만 같던 아버지, 어머니, 남편, 아내, 형제, 자매들이지만 어느새 멈춰 버린 추억의 한 장면에 서면, 우리는 외로움과 아쉬움에 몸서리칠 때가 많습니다. 회한과 회심의 순간에서야 가족만큼 위안이 되고, 힘이 되고, 행복이 되는 기억이 없었음을 깨닫습니다. 무너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울음을 삼킬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과거에 멈춰 멍하니, 우두커니 주저앉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우리의 삶은 지금 이곳, 현재에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곳, 현재 나의 삶으로부터 다시 끊임없이 시작됩니다. 계곡을 따라 바삐 흐르는 물처럼 쉴 새 없이 우리의 삶도 흘러가고 있습니다. 과거에 멈춰 멍하니, 우두커니 주저앉아 있기엔 삶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때가 바로 ‘삶이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에 응답할 때입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또 다른 출발점에 서서 달리 생각해 보면, 슬픔도, 괴로움도, 외로움도, 미움도 또 다른 소중한 삶의 의미로 다가오곤 합니다. 배움이 됩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이 됩니다. 사랑으로 행복으로 옵니다. 가족이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앞으로 드러날 이야기들은 현재 부부들에게 뿐만 아니라 곧 ‘부부가 될 청소년과 청년’들이 가족을 이뤄 살아가는 과정에서 겪게 될 심리적 갈등과 문제적 상황에 직면할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옛이야기를 새롭게 손보고, 저의 개인적인 삶의 경험과 사유, 배움과 깨달음을 바탕으로 해석하여 드리는 이야기를 덧붙일 것입니다. 현재의 가족이든 앞으로의 가족이든, 특히나 가족에서 중심이 되는 ‘부부’들이 가족을 사랑으로 이뤄 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드리는 글입니다.
물론 이 글들이 부족할 수도 있어 염려가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기쁨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행복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가족은 사랑이고, 하나입니다. 부부와 함께 가족 모두가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먼저, ‘부부의 만남은 인연이었고, 운명이었고, 그리고 필연이었습니다’를 표제로 관련된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제목은 ‘오누이의 혼인’입니다.
<오누이의 혼인>
그림 무아소 |
옛날 옛날, 어느 마을에 오누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오누이는 늘 붙어 다녔습니다. 일을 할 때도 놀이할 때도 늘 함께였습니다. 둘은 마음이 딱 맞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서로를 아끼고 좋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누이는 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에서는 이 세상에 큰비가 와서 물로 가득 찰 테니 마을 뒤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고 했습니다.
깜짝 놀라 깨어난 오누이는 일어나자마자 서로를 불러 찾았습니다. 오누이는 서로 꿈에 대해 말했습니다. 같은 꿈이었습니다. 밖에는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급했습니다. 오누이는 둘러볼 틈도 없이 서둘러 집을 나서 곧바로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때부터 비는 더욱 억수같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누이는 더욱 서둘렀습니다. 오누이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 손을 잡아끌어 주고 밀어 올려주며 산을 올랐습니다. 그렇게 오누이는 산꼭대기에 거의 다다랐습니다. 그러는 동안 날이 벌써 샜습니다. 비는 이제 잦아드는 듯했습니다.
‘휴….’
오누이도 한숨 돌렸습니다. 그러더니 어느새 비도 그쳤습니다. 오누이는 산꼭대기에 서서 주변을 돌아봤습니다. 그리고 깜짝 놀랐습니다. 깜깜할 땐 보지 못했는데, 날이 밝자 주변이 온통 물로 가득 차 있었던 겁니다. 세상이 모두 바다로 변해 버린 가운데 산꼭대기만 간신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곤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누이는 몇 날 며칠을 산꼭대기에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진맥진하여 잠이 들었던 겁니다. 둘이 꼭 껴안고 잠이 든 후, 물은 벌써 다 걷힌 후였습니다. 둘은 이제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했습니다.
오누이는 마음을 추스르고 산을 내려갔습니다. 마을로 내려와 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집도, 밭도, 논도 모두 큰물에 쓸려 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허탈한 오누이는 그래도 서로가 살아 있어서 매우 기뻤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오누이는 새로 집을 짓고, 밭을 일궈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오누이는 서로 질세라 열심히 일했고, 이내 다시 평온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넉넉하진 않았지만,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난 후, 다시 난처해졌습니다.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대로 살다가 죽는다면, 사람의 씨가 끊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오누이는 한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 서로 얼굴만 쳐다보곤 했습니다. 그러다 오누이는 말없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한참 후, 동생이 말했습니다.
“누이, 우리가 혼인하지 않으면 사람의 씨가 끊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오. 그런데 그것을 우리가 함부로 결정할 수 없으니 하느님께 여쭤보는 건 어떻소?”
누이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동생의 말에 동의했습니다.
“그래,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일단 맷돌을 산꼭대기에서 굴려 보는 게 어떻겠소?”
그래서 오누이는 산꼭대기에서 맷돌을 굴렸습니다. 동생은 수맷돌을 동쪽으로 굴리고, 누이는 암맷돌을 서쪽으로 굴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산을 내려와 확인해 보니 이상하게도 동쪽과 서쪽에서 굴렸던 맷돌이 포개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오누이는 ‘이것은 분명 혼인해도 좋다는 하늘의 뜻’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누이는 다시 한 번 시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연기를 피워 올리기로 했습니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봉우리로 올라가 청솔가지를 모아 놓고 불을 질렀습니다. 양쪽 산봉우리에서는 연기가 곧게 피어올랐습니다. 높이높이 피어올랐습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하늘하늘 높이 올라만 가던 연기가 점차 가까워지더니 결국 하나로 모이는 것이 아닙니까? 오누이는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이제 드디어 혼인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누이는 마지막으로 딱 한 번 더 하늘의 뜻을 확인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오누이는 마당에 있는 우물에 각자의 피를 세 방울씩 떨어뜨렸습니다. 피가 섞이면, 하늘이 허락하는 것이었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우물을 들여다본 오누이는 서로의 눈을 보며, 탄성을 질렀습니다. 역시나 피가 서로 합쳐지는 것이 아닙니까?
“이야!”
“신기하다.”
“으응. 하느님의 뜻이야!”
“그래!”
이젠 확신이 들었습니다. 오누이는 정말 기뻤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그날, 오누이는 드디어 하늘의 축복을 받으며 혼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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