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오누이의 혼인’은 여러 가지 의미로 읽힐 수 있는 여지가 풍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우리 부부의 만남에 대해서 매우 의미심장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부부의 만남과 연결지어 해석하고 그 의미를 이해합니다. 이 이야기의 상징과 은유, 그리고 주인공들의 심리적 자기장의 형태가 부부의 삶과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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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무아소 |
사실 모든 만남은 우연이 아닙니다. 어쩌다 마주쳤다고 생각될 뿐입니다. 한정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이기에 그럴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만남의 시간도 짧을 수밖에 없기에 더욱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억의 저편을 넘어 더듬고 또 더듬어 넘다 보면, 우리의 만남이 그리 만만치만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어쩌면 자로 잰 듯, 어떤 계기가 원인이 되어 마치 계획된 듯 짜 맞추어져 이뤄진 듯한 우리들의 만남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종종 갖기에 그렇습니다.
바람이 부는 것도, 바람 따라 흘러가던 구름이 그 바람 따라 흩어지는 데도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듯이 그렇습니다. 무수히 많은 잎을 피워 낸 나무가 그 바람에 나뭇잎 하나를 떨구더라도 말입니다. 내 삶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도, 구름에도, 돌멩이 하나에도 그 이유와 목적이 있듯이 그렇습니다. 우리의 만남에도 그 이유가 있습니다. 목적이 있습니다. 뜻이 있습니다.
사람을 통해서든, 다른 것을 통해서든 그렇습니다. 하늘의 뜻이, 소망과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하늘이 우리의 삶에 작용하여 내리는 선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곧 우리의 만남입니다. 그 속에 우리가 사는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고, 소망이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한 고리 같은 것이 또한 우리의 만남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만남은 모두 운명이고, 필연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모든 만남에 담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내린 운명 같은 인연이 모두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와 목적, 소망과 사랑이 모두 하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한순간 머물다 가기 때문입니다. 악연마저도 말입니다.
그런데 부부의 인연은 더욱 심오합니다. 지난 옛이야기 ‘오누이의 혼인’을 통해 알 수 있지만, 우연히 마주쳐 맺었든, 누구의 소개든, 부모의 언약이었든 모두 다 그렇습니다. 심지어 시작이 원치 않았든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서 부부의 만남은 너무나 ‘불가사의’한 사건이지 않나요? 그것이 어디 인간의 힘이나 노력에 의해서만 될 것인가요? 그것이 어디 한순간의 욕정에 의해서 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혹은 머리 좋은 인간의 치밀한 계산에 의해서 될 수 있는 일인가 말입니다. 하늘의 뜻과 섭리가 있지 않고서는 어디 인간의 힘과 노력, 계산만으로 이뤄질 수 있는 만남이겠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우리 부부로서의 만남은 그렇게 쉽게 이뤄질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생명이 바람과 햇빛과 비와 흙과 물과 온 우주의 꿈틀거림과 소망과 사랑으로 이뤄져 탄생한 것처럼 부부의 만남과 삶은 온 우주의 소망과 사랑이 깃들어 맺어진 것입니다. 그 생명의 탄생을 거부할 수 없듯이 부부의 만남과 삶도 숙명처럼 뿌리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소명으로 간직하며 살아가는 만남과 삶인 것입니다. 묵묵히 말입니다.
그러니 부부의 만남은 더욱 운명입니다. 필연입니다. 소명입니다. 만나지 않을 수 없는 숭고한 섭리입니다.
그렇게 만나 맺어진 부부는 오누이 같아집니다. 다른 뿌리에서 태어나 한 몸으로 붙어 각자의 삶을 사는 나무와 같아집니다.
하지만, 부부의 첫 만남은 낯선 이방인이었습니다. 다른 뿌리에서 자란 자신과 다른 존재이었습니다. 그러다 사랑을 하게 되면서 그립고 보고 싶어집니다. 함께 살고 싶어집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부부가 됩니다. 그러니 결혼식을 올렸다고 부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몸을 함께 나눴다고 부부가 되는 것도 절대 아닙니다. 그립고 보고 싶어질 때, 한시도 떨어져 살고 싶지 않을 때, 그럴 때 진실한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삶이 태풍처럼 몰아쳐 올지라도 함께 살고 싶은 부부가 됩니다.
이렇게 함께 살고 싶은 부부는 그제야 하나가 됩니다. 즐거움도, 힘겨운 삶도, 어려운 삶도 함께 겪으면서 하나가 됩니다. 벌거벗고 뒹굴며, 아무 거리낌 없이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는 서로를 남보다 잘 알게 됩니다. 너와 내가 같은 존재로 다르지 않는 사이가 됩니다. 티격태격하면서도 결코 갈라놓을 수도, 끊을 수도 없는 사이가 됩니다.
그렇게 한 몸으로 붙은 부부는 피붙이처럼, 오누이처럼 끊을 수 없는 사랑이 됩니다. 그렇게 부부는 오누이 같은 사랑이 됩니다. 남남으로 만나 오누이 같은 부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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