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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바퀴 긴 부부 (2)[장만식 교수의 옛이야기 속 부부 심리 컬럼](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19.04.09 17:29|(172호)

사랑이 있기에 부부는 가난한 중에도 행복합니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마음만큼은 가난하지 않습니다. 그저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넉넉해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혼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함께해 주는 지원자이기에 더욱 뿌듯한 마음뿐입니다. 더군다나 남들처럼 많은 것을 해 주지 못해 서로 미안해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잘못인 양 미안해합니다. 더 해 주고 싶어도 해 줄 수 없는 마음에 서로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더욱 애틋해집니다. 기회만 생기면 서로 사랑을 주고받으며 나누고 싶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서로 어긋날 때가 있습니다. 실수도 있습니다. 눈치 없이 서로의 마음을 몰라줄 때도 있습니다. 아니 그런 일들이 많습니다. 전혀 의도하지 않게,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서 발생합니다. 그럴 땐, 무척 서운하고, 섭섭하고, 심지어 실망스럽기도 합니다. 믿었던 무언가에 크게 한 대 얻어맞은 듯 주변이 온통 캄캄해지기도 합니다. 애써 모른 척, 허허허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도 해 보지만, 어쩔 수 없는 가슴 속 한켠은 벌써 싸하게 차가워집니다. 그렇지 않아도 안갯속 같은 삶의 벌판에서 답답한 마음, 조마조마한 마음, 외로운 마음 둘 곳 없는데, 철석같이 믿었던 상대마저 그렇게 나오니 철렁 내려앉고 맙니다. 결국은 이내 한없이 외로워집니다. 캄캄한 골방에 혼자 갇힌 듯 외롭습니다. 온 우주에 오직 홀로 남겨진 듯 괴롭기도 합니다.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전의 행복한 삶도,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삶도 서글퍼집니다. 하소연할 데도 없어 눈물이 납니다.

그림 송영주

부부 마음이 모두 이렇습니다. 남편이든 아내든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지만, 서로의 마음을 자신의 방식대로 이해하고 해석하기에 내 맘같이 헤아려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상대가 얄미운 때도 있습니다. 웬수같은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닙니다. 사랑하지만, 저도 모르게 튀어나올 때가 더 많습니다. 대부분은 각자의 삶의 터전이 달랐기에 그렇습니다. 각자 살아온 세월만큼 삶의 방식도, 사랑의 방식도 다를 수 있고, 생각도 다르고 마음 씀씀이도, 같은 상황에서의 말도 행동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20여년, 30여년을 서로 다른 시공간 속에서 살면서 같은 상황일지라도 누구에게는 별로 유쾌하지 못한 경험이었을 수도 있고, 더군다나 상처가 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이렇게 저마다의 삶 속 아픈 기억과 상처를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아픈 기억과 상처를 간직한 채로 만난 것입니다. 그것이 서로에게는 자칫 모자람으로, 날카로움으로, 아쉬움으로, 섭섭하고 서운한 마음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는 서로에게 위로를 받고 싶습니다. 사랑한 만큼, 의지한 만큼, 바라는 만큼, 믿는 만큼 상대에서만은 언제나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듣고 싶습니다. 오로지 부드러운 손길로 끊임없이 어루만져주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잘못을 할지라도, 실수를 할 지라도, 예기치 않게 상처를 안겨 주었더라도 말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에게서만은, 당신의 알뜰한 위로만을 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살뜰한 아낌과 보살핌만을 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기에 오직 당신에게서만은 받고 싶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알콩한 사랑을, 달콩한 사랑만을 받고 싶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부모이고 자식일지라도, 피를 나눈 형제자매일지라도, 부부만한 살붙이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뜻으로만 이뤄진 부부이기 때문입니다. 그 하늘의 뜻과 축복으로 아무도 없는 외로운 우주 공간에서, 막막하고 어두운 삶의 현실 속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온 우주를 통틀어 가장 가까이 함께할 수 있는 살붙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부간에도 당연히 알력이 있습니다. 경쟁자이기도 합니다. 알게 모르게 서로가 서로에게 시샘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긴장이 흐릅니다. 서로 밀치기도 하고 당기기도 하면서 티격태격하기도 합니다. 지기만 하면, 당장 죽을 것처럼 팽팽히 맞서기도 합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인간의 못된 습성과 욕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고 싶지 않는 마음을 넘어 보다 유력한 위치에 서서 군림하고자 하는 마음과 욕망도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인간이기에 그렇습니다. 누구도 인간의 본능적 욕망을 벗어날 순 없기 때문입니다. 즉 우위에 서서 자신의 의도대로, 바라는 대로 상대를 요리할 수 있을 것 같은 요상한 쾌감, 우월감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랑하지만, 연약하고 선한 심성을 뚫고 나온 약육강식의 동물적 욕망이 바로 그것입니다. 부부간의 그러한 알력들 속에 숨어 있는 모두가 인간이기에 가지는 본능적 쾌감이 바로 그것입니다.

물론 보통 부부간의 갈등이 당연시되기도 합니다. 티격태격하면서 어느 정도의 긴장이 부부관계를 더 좋게 한다고도 말합니다. 밀고 당기고를 잘해야 금슬이 좋아진다고도 합니다. ‘칼로 물 베기’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당장은 비록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어떤 경우일지라도 무엇인가 그 의미가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의 안개가 걷힌 뒤에나 알게 되는 비밀스런 보물이 감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약간의 알력과 약간의 경쟁과 약간의 시샘은 서로의 생각을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맞춰 나가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서 가지는 약간의 긴장, 약간의 밀고 당기기, 티격태격하기 등도 사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더 성장시키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어느 정도’에 대한 기준이 제각기 다르다는 것에 있습니다. 자신의 기준으로 볼 때의 ‘어느 정도’가 절대로 아니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생각과 마음, 처지와 입장이 ‘어떠하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생각과 마음속에 알지 못했던 연약한 개구리나 소심한 고슴도치가 숨어 있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상처입고, 피 흘리며 죽어갈지도 모르는 상대의 여리고 약한 생각과 마음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부부는 한 생명입니다. 몸은 하나고 머리가 둘 달린 새가 다른 머리가 보기 싫다고 독약을 먹자, 결국 머리 둘 달린 새가 죽은 이야기처럼 부부는 한 생명입니다. 어느 하나가 다치든 죽든 부부 모두가 다치거나 죽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느 하나가 불행하면 모두가 불행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 선을 넘어서는 안됩니다. 그 이상은 절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상대의 기준으로 볼 때입니다. 오로지 상대의 기준만이 절대적이라는 말입니다. 상대의 기준으로 불 때, 그 이상은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상대의 눈과 머리, 마음과 생각 등에 의해 마련된 기준선을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상대의 기준선을 넘는 알력과 경쟁, 시기와 질투, 미움 등은 모두 유익할 수 없습니다. 서로에게 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괜한 낭비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맞춰 나가야만 합니다. 부부이기에, 하나이기에, 한 생명체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니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시간이 있다면 더 사랑해야 합니다. 상대의 생각과 마음이 되어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용서도, 화해도 필요합니다. 더욱 내가 먼저 채워 주고 위로해 주고 치유해 주며 감당해야 나가야 합니다. 부부이기에 하나이기에 그렇습니다. 부부이기에 하나이기에 혼자서는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든 당신의 행복을 위해서든 서로를 채워 주고, 아껴 주고, 위로해 줘야 합니다. 책임져야 합니다. 그럴수록 사랑스러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럴수록 행복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럴수록 멋있는 부부, 아름다운 사랑이 되어 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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