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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기획특집 장교수의 옛이야기 속 부부 심리 컬럼
거울을 모르는 사람들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19.10.25 12:00|(181호)

지난번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이야기였습니다. 짧기도 했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아, 아마도 더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주제였을 겁니다. 사실 할 옛이야기가 많기도 많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땅을 딛지 않고서는 살 수 없듯, 시어머니도 아내도 모두 인간이라는 사실, 인간의 본능적 욕망을 갖고 있다는 사실, 그것을 나름대로 견디며 살고 있다는 사실 등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용서한다면, 우리 삶의 질곡과 그 갈등의 소용돌이를 영원히 멈추게 할 수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럴 때 비로소 가족이 사랑이 되고, 하나가 될 수 있음을 함께 고민해 본 기회였을 겁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번 주는 ‘거울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이야기입니다. 주로 남편과 아내의 관계, 특히나 믿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거울을 모르는 사람들

옛날 어느 마을에 한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농부는 어느 날 무슨 볼일이 있어서 서울로 가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내는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하늘을 가리키며, 간 김에 저 달 같은 것을 사 달라고 했습니다.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던 아내는 마침 그날 밤에 반달이 떴기에, 반달 같은 빗을 그렇게 말했던 것이었습니다.

다음 날 농부는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는 데만 며칠이 걸렸습니다. 농부는 서울에 올라간 김에 마음먹은 일도 보고, 구경도 하고, 장에 가서 물건도 사며 분주하게 보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또 며칠이 훌쩍 지났습니다. 농부가 헤아려 보니 집 떠난 지 벌써 보름 가까이나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벌써 보름 가까이 되었나?’

농부는 집을 너무 많이 비운 게 아닌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튿날부터 서둘러 일을 마무리하고, 마지막 날은 느지막하니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사러 장에 갔습니다. 그런데 다른 가족들의 선물은 다 샀는데, 아내가 사 달라고 한 것만은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뭐였지? ‘달 같은 거라 한 것 같은데…. 달 같은 게 뭐지?’

농부는 하늘을 쳐다봤습니다. 마침 달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보름달이었습니다.

‘아하. 둥근 것. 둥근 것을 말하는 거구만. 하하.’

농부는 속으로 ‘둥근 것’을 되뇌며, 시장을 돌아다녔습니다. 얼마쯤 돌아보니 마침 둥근 것이 딱 보였습니다. 거울이었습니다. 요리조리 농부는 거울을 살펴보았습니다.

“햐. 이거 신기하구만. 별걸 다 사달라고 하는구만.”

거울엔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기가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농부는 참 신기해하며 거울을 샀습니다. 아내의 선물도 모두 사고 나니 저녁이 다 되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그림 송영주

다음 날, 농부는 아침 일찍 챙겨둔 짐을 메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또 며칠이 걸려 집에 도착했습니다. 가족들은 모두 나와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농부는 짐을 풀고 방 안으로 들어가 가족들 모두에게 선물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아내에게는 제법 도톰한 보퉁이를 하나 척 내주었습니다. 아내는 그것을 받아들고서는 의아해했습니다.

‘아니, 이게 뭐야? 난 분명히 반달 같은 빗을 사달라고 했는데….

아내는 서운했습니다. 자기가 바라는 것이 아닌 듯했습니다. 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남편이 준 선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내는 기쁜 듯 웃으면서 고맙다고 말하며 풀어 봤습니다. 정성껏 싸여 있었습니다. 둥근 것이었습니다.

‘이게 뭘까?’

아내는 요리조리 살펴봤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화들짝 놀라며 통곡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고, 어머니.”
“…?”
“아이고, 어머니.”
“야야, 무슨 일이냐? 왜 우는 거니?”

며느리의 통곡 소리를 듣고 시어머니가 깜짝 놀라 달려왔습니다.

“아이고, 어머니. 이것 좀 보세요. 세상에….”
“….”
“아, 저 양반이 작은 마누라를 데리고 왔다니까요. 아이고! 서울 가더니…. 엉엉, 엉엉.”
“아니, 그게 무슨 말인고? 작은 마누라를 데리고 왔다니?”
“아이고, 어머니. 이것 좀 보세요. 여기 있잖아요.”

아내는 시어머니께 거울을 드렸습니다. 시어머니도 거울을 받아들고서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깜짝 놀라 말했습니다.

“야가, 누굴 놀리냐? 여기에는 늙은 할멈밖에 없구만.”
“….”
“아니, 그래도 그렇지. 할멈을 데리고 오면 어떡해? 젊은 색시도 아니고….”

시어머니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농부가 할멈을 데리고 왔다고 하며,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 시아버지가 나섰습니다.

“뭣이 어쩌고 어째? 아범이 할멈을 데리고 왔다고?”
“….”
“어디 보자. 어디 봐.”

시아버지가 깜짝 놀라 거울을 보니 웬 걸, 그게 아니었습니다.

“하이고, 참. 깜짝 놀랐네. 할멈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구만.”

시아버지는 거울을 보면서 연거푸 인사를 하고는 반갑게 웃으며, 거울 속에 비친 사람과 대화를 했습니다. 두 무릎을 가지런히 꿇고서 말씨도 공손했습니다.

“아버지, 무슨 일이 있으시기에 이렇게 나타나셨습니까?”
“….”
“별고 없으시지요? 헤헤.”

다들 어리둥절해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다시 소란스러워졌습니다. 며느리는 분명히 젊은 여자를 봤는데 무슨 소리시냐며 다시 한 번 보자고 하고, 시어머니는 아니 무슨 소리냐며 분명히 할멈이라고 하며, 다시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시아버지는 보여 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오랜만에 아버지를 봤는데 그냥 줄 순 없었습니다. 결국 그렇게 한참을 서로 보겠다고 하면서 옥신각신, 엎치락뒤치락하더니 그만 시아버지는 거울을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거울은 바닥에 떨어져 산산이 깨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급기야 소란한 소리를 듣고 온 농부는 거울이 결국 깨진 것을 알고선 아내를 타박했습니다.

“내가 무슨 작은 마누라를 데리고 왔다고 이 수선을 떨어? 엉.”
“…?”
“자기가 달 같은 거 사다 달라고 해서 사 왔는데 말이지. 원.”
“….”
“그래 잘됐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그래. 이제 당신 같은 여자와는 살고 싶지도 않구만.”
“….”
“이쁘기를 해. 싹싹하기를 해. 애교가 있기를 해. 음식을 잘해. 엉? 당장 나가.”

그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조용히 다가와 속삭였습니다.

“하이고, 저놈이 또 저러네. 어디서 뭘 얻어먹고 살려고 말이야.”
“….”
“아가. 너 시집올 때 입고 온 옷 꺼내 입고, ‘가겠다’고 해 봐라. 철렁할 거다. ‘이렇게 이쁜 색시를’ 하며 잡을 거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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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가 더 큰 오해를 낳고, 의심이 또 더 큰 의심을 낳습니다. 들리는 것이 다가 아닌데,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데, 더군다나 부부에게 있어서는 더 그렇습니다. 특히나 난처한 상황이나 어려움에 처한 부부에게는 역시나 남편이나 아내밖에 없습니다. 갑작스런 상황에 봉착한 부부는 ‘남편만은 아내만은’ 편들어 주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자신의 잘못이었더라도 ‘남편만은 아내만은’ 내 편이기를 바랍니다. 분명히 자신 때문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편에서 ‘남편만은 아내만은’ 위로해 주기를 바랍니다. 어찌됐든 잘잘못을 떠나 그렇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그런 기대와는 딴판일 때가 있습니다. 그냥 농담처럼 내뱉은 한마디 사소한 말과 행동이 서운하게 하고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서글프고, 눈물나게도 합니다. 더군다나 딴에는 위로랍시고 한 말과 행동이 오히려 상처를 건드려 더 큰 상처를 만들기도 합니다.

아마도 가장 배려받고 싶은 상대이기 때문일 겁니다. 가장 사랑 받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일 겁니다. 자신이 아닌 사람 중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일 겁니다. 누구보다 자신을 이해하고, 믿어 주기를 바라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즐거움도, 힘겨운 삶도, 어려운 삶도 함께 겪으면서 하나가 되어, 서로를 남보다 더 잘 알게 되어, 한 몸처럼 끊을 수 없는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괜한 말 한마디, 괜한 짓에 더 큰 오해를 합니다. 괜한 말 한마디, 괜한 짓에 더 큰 의심을 하곤 합니다. 아직도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당해야 하는지 지나온 세월이 억울해 마음이 몹시 상해 버립니다. 그렇게 토라진 마음은 이내 서러움으로 변합니다. 더 나아가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합니다. 마주 앉아 있는 것조차, 함께 앉아 있는 것조차, 한 공간에서 함께 숨 쉬고 있는 것조차 힘들어지기도 합니다. 점점 더 오해가 꼬리를 물고 더 큰 오해를 낳고, 의심이 또 더 큰 의심을 낳습니다. 잃고 싶지 않기에 들리는 것이 다가 아닌데,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데 하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서운함이고, 서러움 때문입니다.

사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당한 배신이 가장 클 것입니다. 가장 큰 무시 또한 그럴 것입니다. 내 편에게서 마저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끔찍할 겁니다. 유일한 사람 그 사람에게서 마저 자신이 배신당했다고 생각하면 그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면 그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아마도 말로는 글로는 표현할 수조차 없는 막막함과 공허뿐일 겁니다. 그래서 어느 경우에는 한순간일망정 스스로 무너지고 말 때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니 온 우주에서 가장 사랑하고 믿고 의지했던 품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감싸 주었던 포근하게 품도, 따사로웠던 손길도, 아껴 주던 속삭임도 다 믿기지 않게 되고, 거짓이 되고, 원망이 되고, 역겨움 마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부터 부부는 자신들의 마음 둘 곳을 잃어버린 후, 자신마저도 잃고, 춥고, 캄캄한 밤을 따로 지새우게 됩니다. 그러다 점점 생각도 마음도 영혼도 홀로 먼 곳을 헤매게 됩니다. 우주 공간에 버려진 채로 외로이 떠돌게 됩니다.

더군다나 상대에게 있어서 다른 사랑이 있을 것 같다는 오해나 의심은 더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합니다. 추억이었든, 아픔이었든, 스치듯 지나간 것이었든, 첫사랑이든 둘째이든 셋째이든 상관없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건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말하는 것 자체가, 생각하고 마음 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분 나쁘고 화가 납니다. 그때부턴 말끝마다 오해가 붙습니다. 의심이 붙습니다. 어깃장이 놓입니다. 그 어깃장에 화가 난 나머지 말이 헛나갑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이 불쑥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함께 튀어 나가고 맙니다. 그런데 그 헛나간 말에 다시 상대의 비수가 꽂혀 돌아옵니다. 가시 돋친 말이 쏟아져 화살처럼 깊숙이 박히고 맙니다. 결국 서로의 마음엔 혐오의 불길이 타오르고, 언제 그칠 줄 모르는 불안한 싸움은 시작됩니다. 가족의 불행과 함께 시작됩니다.

그날부터 말도 안 합니다. 눈도 안 마주칩니다. 밥도 안 먹습니다. 잠도 따로 잡니다. 살도 안 붙입니다. 어떻게 되든 죽어도 물러서지 않겠다고 이를 부득부득 갑니다. ‘혹시 그 사람?’, ‘벌써?’, ‘나도 모르게?’, ‘미친’, ‘지가 뭐 잘난 게 있다고?’, ‘내가 얼마나 잘해 주었는데.’, ‘나 때문에 이 정도 사는 거 아냐?’ 하지만, 그러면서도 모든 신경은 서로를 향해 곤두서 있습니다. ‘진짜 진심일까? 아닐까? 아닐지도 몰라.’, ‘다정한 사람이었는데.’, ‘내가 뭘 잘못해 준 게 있나?’, ‘나에게 뭔 문제가 있나?’ 두렵기도 합니다. 불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물러설 순 없습니다.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면전도 불사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온 집안이 전쟁터입니다. 싸늘합니다. 바늘방석입니다. 겉으론 태연한 척하지만, 속은 타들어 가고, 두려움 속에 안절부절못합니다. 사랑했다면 사랑한 만큼 믿었다면 믿었던 만큼 더더욱 그 실망감과 절망감, 배신감, 외로움은 클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부부 모두가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에 늘 곁에서 볼 수 있지만, 보고 있어도 그리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대가 오로지 자신만 바라봐 주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자신만이 그 사랑을 홀로 독차지하고 싶어서일 겁니다. 자신만을 연인으로, 친구로, 부부로 사랑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일 겁니다. 다른 사람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만으로 그 마음이 꽉 채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만이 오직 당신에게서 유일한 사랑을 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오직 당신의 온전한 사랑을 나 홀로만 가득 차게 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과 사이좋게 나누고 싶은 부부는 절대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예 다른 사람에 대한 생각이나 마음은 빈말로라도 꺼내지 말아야 합니다. 내 아내는 혹은 내 남편은 마음이 넓어 이해할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오히려 그것이 상대에 대한 책임이고 사랑입니다. 다만 서로에게 솔직해야 합니다. 진실한 마음, 사랑하는 마음으로 상대가 원한다면 진실을 나눠야 합니다. 그럴 때 진정으로 하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마음이 넓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오해와 의심조차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든 그렇지 않든지 제일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의 사랑이, 부부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 부부가 사랑하는 건 아내이며, 남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부부의 삶, 사랑과 행복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그 순간뿐만 아니라 언제나 이 순간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사랑하기만 하면 됩니다. 오로지 당신만을 사랑하고, 사랑한다는 마음을 서로에게 전하기만 하면 될 뿐입니다. 진심을 담아, “오롯이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합니다.”라고 말입니다. 물론 말없이도 마음과 마음은 뜻이 통합니다. 좋은 마음은 반드시 좋은 마음으로 서로 통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저것도 서로를 위해, 가족을 위해 할 수만 있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마음으로 말로 행동으로 더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있다면, 못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남편이 아내가 행복해야 온 가족이 함께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배를 탄 하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이야기에서 한 말처럼, “길고 짧은 것은 한 생각에 달렸고, 넓고 좁은 것은 마음에 달렸다. 따라서 마음이 한가하면, 하루가 천년보다 길고, 마음이 너그러우면, 좁은 방이 천지 사이보다 넓다.”라는 채근담의 글처럼 우리의 생각과 마음만 살짝 뒤척이면 언제나 사랑과 행복이 밤하늘의 별처럼 쏟아져 내려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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