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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처가"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19.12.18|(182호)

<장만식 교수의 옛이야기 속 부부 심리>

지난번은 ‘거울을 모르는 사람들’ 이야기였습니다.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다가 아니라는 뜻을 지닌 이야기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오해와 의심으로 우리의 삶이 힘들고 아픈지에 대해 잠시나마 함께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 모든 것이 다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무관심’ 속에는 오해와 의심조차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자신도 모르게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었던 것입니다. 늘 사랑하면서도, 사랑받으면서도, 항상 사랑을 미친 듯이 갈구합니다. 사랑을 얼마나 간절히 바라는지, 목말라 하는지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을 지경입니다.

당연히 그만큼 우리의 일상 속 삶을, 사랑과 행복을 송두리째 빼앗아가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에도, 행복한 삶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니 부부에게 있어서는 부부의 삶, 사랑과 행복에 집중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진심을 담아, “오롯이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합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방심해서는 절대로 안될 일입니다.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아내가 행복해야 온 가족이 함께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배를 탄 하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애처가’라는 제목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이야기는 사실 남편의 아내 사랑의 이야기지만, 단지 남편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남편과 아내가 어떤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애처가

그림 송영주
서울여자대학교 서양회화과 졸업
sfineart@naver.com

옛날, 어느 나라에 한 장군이 있었습니다. 싸움에 임해서는 매우 엄하고 용감했습니다. 하지만 그 장군은 지독한 애처가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금슬이 좋았습니다.

하루는 ‘부하들은 어떨까?’ 하고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가운데 선을 긋고 오른쪽에는 붉은 깃발을 꽂아 놓고, 왼쪽에는 파란 깃발을 꽂아 놓게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혼인한 병사들을 모두 모아 놓고 명령했습니다.

“자, 자신이 애처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붉은 깃발 아래로 가고, 애처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파란 깃발 아래로 가라.”

그러자 한 사람을 제외하곤 모두 붉은 깃발 아래로 갔습니다.

“하하하.”

장군은 껄껄껄 웃으며 파란 깃발 아래에 있는 그 한 사람을 불러 말했습니다.

“자네는 정말 대단하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뭘 말씀하시는지요.”
“아니, 나는 우리 부인이 제일 두렵다네. 일단 집에 들어가면, 언제나 우리 아내에게 지고 마는 걸.”
“….”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대단하다는 걸세.”

그러자 그 병사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습니다.

“아, 예. 사실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요.”
“….”
“제가 여기 서게 된 것은 우리 마누라가 남자 셋 이상이 모이는 곳에는 ‘절대로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기 때문입니다요.”
“아니, 왜 그렇지?”

병사는 다시 뜸을 들이다가 멋쩍은 표정으로 이내 말했습니다.

“아, 예. 남자 세 사람이 모이면 반드시 여자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라고 하면서 ‘절대 가지 말라’고 말입니다요.”
“하하하, 하하하. 그렇지, 그렇고 말고.”

장군과 병사들은 그 말을 듣고 한바탕 크게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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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얼마쯤의 가치일까요? 아내는 가정에서 얼마쯤의 위치일까요? 아내는 가정의 삶에서 얼마쯤의 비중을 차지할까요? 다 똑같지는 않겠지만요. 과연 아내는 얼마쯤이나 소중할까요?

아마도 최소한 없어서는 안 될 만큼은 되지 않을까요? 물론 가족 중 어느 누구든 없어도 될 사람은 없겠지만, 아내가 없다는 것, 엄마가 없다는 것만큼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 같지 않나요? 그만큼 아내, 엄마는 우리 가정에서 매우 소중한 존재일 겁니다. 무엇을 해 주지 않아도, 무슨 일인가를 하지 않아도, 있는 것만으로도, 존재 자체만으로도 빛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집에는 아내가 있어야, 엄마가 있어야 편안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자에서도 ‘安’자는 ‘편안하다’나 ‘편안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입니다. 安자는 宀(집 면)자와 女(여자 여)자가 결합한 모습, 즉 여자가 집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편안하다’나 ‘안정적이다’라는 뜻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편안하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행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내가, 엄마가 행복해야 가정이 편안하고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남편이, 아버지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괴로워도 참을 수 있는 것은 아내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삶이 그렇게 어렵고 힘들고 괴로워도 이겨 낼 수 있는 것은 가족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이들이 있다고 하지만, 몸과 마음, 모든 것을 함께 나눌 아내가 있기 때문이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평생 옆자리를 지켜 줄 아내가 있기 때문이지 않겠습니까?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엄마가 있기 때문에, 열 달 배 속에서 한 몸이었던 엄마가 있기 때문에, 포근하고 든든한 가슴이 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가족을 사랑하는 남편은, 아버지는 모두 애처가가 됩니다. 가정의 행복과 평화로운 삶을 소망하는 남자는 모두 애처가가 됩니다. 아내가 있기에, 엄마가 있기에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이 있기에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세상에 바보 같은 말이라는 소리를 듣기에 알맞은 말입니다. 하지만 아내에게만은 지는 것이 상책입니다. 지는 것이 결국 이기는 것입니다. 만약 이기려는 목적이 가정의 행복과 평화를 위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물론 패비하는 쪽은 없습니다. 질 때, 함께 승리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아내가 편안해야 부부가 편안하고, 가정이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행복해야 부부가 행복하고, 부부가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해지고, 평화로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허물이겠습니까? 자존심의 문제겠습니까? 창피한 일이겠습니까? 질 때, 비로소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다면야 평화로운 가정을 이룰 수 있다면야 ‘지는 것’이 무슨 대수로운 일이겠습니까? 우리가 가족을 이뤄 사는 목적과 의미가 그것 때문이라면 말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아내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겠지만, 그중 꽤 좋은 방법 하나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요즘은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집안일에 등한시하는 남자들이 있습니다. 바깥일에 피곤해서 귀찮다는 핑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맞지 않는데도 그렇습니다. 많은 부분 가부장적인 사고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에게 주는 편안함, 유익함, 안락함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생각입니다.

하지만 집안일에 네 일 내 일이 따로 있겠습니까? 어느 하나 우리의 일이 아닌 것이 있겠습니까? 행복한 가정을 가꾸고, 지키는 것에 절대적인 구별이 있겠습니까? 남편만이 할 일 아내만이 할 일이 따로 구별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옛날에도 오늘날에도 사실은 없습니다. 다만 부부가 스스로 살피고 상의하여 각자가 잘할 수 있는 일을 그리고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서로 나누어 맡아 했던 것입니다. 다만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궂은 일을 서로에게 미루지 않고, 귀찮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남녀의 고유한 일이라는 것은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인간이 편의상 나눈 결과일 뿐인 것입니다. 어찌 보면 맞지 않은 독단이라는 옷에 굳이 몸을 맞춰 입은 과거의 한시적 영향일 뿐인 것입니다. 길게 보면, 특별한 시기에 특정한 신념과 가치관에 의해 강요된 측면이 고착된 인습으로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가정의 모든 일들이 모두 부부의 일입니다. 내 일 네 일이 없습니다. 가정의 행복을 위한 부부의 일인 것입니다. 모두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위한 행복한 노동인 것입니다. 가족을 위한 행복한 노동인 것입니다. 서로 나눠 하면 할수록 행복해지는 일인 것입니다.

횡성희망신문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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