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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의 꿈"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20.04.28 15:50|(191호)

지난번은 ‘진정한 친구’라는 제목의 이야기였습니다. 단순히 자녀들만의 ‘친구’ 문제가 아니라 ‘진정한 친구’가 되어 주지 못하는 우리 부부, 가족 간의 관계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과연 내가 우리 아내, 남편, 자녀 등에게 ‘진정한 친구’, 즉 삶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과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인간은 본래 고독한 존재, 연약한 존재로 태어기에 끊임없이 공감과 위로와 돌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가족은 우리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중요한 행복 공동체, 생명 공동체이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내 아내, 내 남편, 내 아버지, 내 어머니, 내 형, 내 누나, 내 동생 등 가족 모두에게 더욱 소중한 동반자가 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서로에게 그러한 동반자가 되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우리는 이번 이야기, ‘조신의 꿈’ 이야기에서처럼 전혀 반갑지 않은 ‘이별’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행복하기 위해 만났지만, 녹록치 않은 삶 속에서 가족의 고통스러움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짐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의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물론 다 아시겠지만, ‘이별’의 사건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이 ‘조신의 꿈’ 이야기를 통해 부부의 만남과 헤어짐, 가족, 인생 등에 대해 다시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뿐입니다.

 

조신의 꿈
- 헤어짐도 만남도 모두 인연이다.

 

그림 / 송 영 주 서울여자대학교 서양화학과졸업sfineart@naver.com

옛날 신라 시대에 세규사라는 절이 있었습니다. 이 절에는 조신이라는 중이 있었습니다. 조신은 절에 딸린 한 농막(農幕)을 관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조신은 자주 이 농막에 머물며 농장을 살폈습니다.

그때도 농장에 머무른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이었습니다. 조신은 그날 태수의 딸을 봤습니다. 농막을 지나 절로 향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부처님께 정성을 드리려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조신은 순간 당혹스러웠습니다. 태수의 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아’

조신은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며, 탄성을 질렀습니다. 태수의 딸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조신은 한참 동안 뚫어져라 그곳만을 쳐다봤습니다. 태수의 딸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까지도 굳어버린 듯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한눈에 반해 버린 것입니다.

‘아’

이내 조신은 망설이지도 않고 절로 달려갔습니다. 농장 일은 이제 관심 밖의 일이었습니다. 오로지 딸에 대한 생각뿐이었습니다. 한달음에 올라간 조신은 태수의 딸을 금방 찾았습니다. 물론 태수의 딸을 찾기란 쉬웠습니다. 그 지역에서는 워낙 지체 높은 집안이기 때문입니다. 절에서는 절대 대접을 소홀히 할 수 없기에 주지 스님뿐만 아니라 모든 스님이 나와 있었습니다. 조신은 더 이상 가까이 갈 수는 없었습니다. 조신은 몹시 애가 달아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아’

그날부터 조신은 관음당 부처님 앞에 정성껏 불공을 드렸습니다. 태수의 딸과 혼인하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남몰래 빌고, 또 빌었습니다. 하지만 몇 해가 지나도 조신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태수의 딸은 결국 다른 사람과 혼인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러자 조신은 부처님을 원망했습니다. 자기의 소원 하나 들어주지 않는 부처가 미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부처님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조신은 그런 부처를 원망하며 날이 저물도록 슬프게 울었습니다. 어느덧 늦은 밤까지도 그렇게 울다가 지친 조신은 그만 잠이 들었습니다.

‘어어’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태수의 딸이 나타났습니다. 언제나 아름다운 얼굴, 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조신은 깜짝 놀라 어리둥절했습니다. 심하게 ‘두근두근’거리는 심장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굳어버린 듯 온몸을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조신이 멀뚱멀뚱 가만히 있자, 이윽고 태수의 딸이 다가왔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움직임도 없자 태수의 딸은 조신을 보고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제야 조신은 환하게 웃는 태수의 딸을 맞이했습니다.

“지난번 불공을 드리려 왔을 때,”
“…….”
“스님의 모습을 얼핏 보고 저도 모르게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
“제가 스님의 얼굴을 어렴풋이 보고만 말았지만,”
“…….”
“이제껏 마음만으로는 사모하여 잠시도 잊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
“그런데 갑자기 다른 사람과 혼인하라는 부모의 명을 거역할 수 없어서 부득이하게 혼인을 하게 되었습니다.”
“…….”
“하지만 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
“죽을 때 죽더라도 당신과 함께 묻힌다면, 여한이 없을 것만 같아 이렇게 죽음을 무릅쓰고 뛰쳐나왔습니다.”
“…….”
“부디 저를 기꺼이 받아 주십시오.”
“…….”

‘헉’, 조신은 순간 숨이 ‘탁’ 멎는 줄 알았습니다. 이게 꿈이어도 좋다고 생각하며, 제발 깨지 않기를 빌었습니다.

“…….”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이내 조신은 벌떡 일어나 태수의 딸의 손을 맞잡더니 힘껏 안았습니다. 조신은 너무도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서로 부둥켜안고 쿵쾅거리며 뛰었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그리고 빌고 또 빌었던 그 소원이 드디어 이뤄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처님께 감사했습니다.

얼마 후, 정신을 차린 조신은 당장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날이 밝기 전에 서둘러야 했습니다. 다행히 태수의 딸은 짐도 미리 챙겨왔습니다. 그래서 조신도 간단히 챙겼습니다. 조신은 마침내 사모하는 태수의 딸과 함께 떠난다는 생각에 마냥 신났습니다.

아침이 밝아 오자, 역시나 태수의 집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편지 한 장 남겨 놓고 사라져 버린 딸의 행동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태수는 딸이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라며 하인들에게 당장 찾아 데리고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조신과 태수의 딸은 이미 멀리 떠난 뒤였습니다.

태수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았습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찾게 되면 그 즉시 죽여 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인들에게 끝까지 쫓아가 반드시 잡아 오라고 다그쳤습니다. 잡지 못하면 절대 돌아오지도 말라고도 했습니다. 태수는 그렇게 말하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조신의 사지를 갈가리 찢어 버리겠다며 날뛰었습니다.

이렇게 조신 내외는 어쩔 수 없이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고향 마을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려던 조신 내외는 얼마 못 가 고향 마을을 떠나야 했습니다. 두려운 마음에 이제는 마음 편히 머물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마을로 가더라도 얼마 못 가 또 그곳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추격꾼들을 피해 이 마을 저 마을로 떠돌아 다녀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조신 내외는 그럭저럭 삶을 꾸려나갔습니다. 처음에는 집에서 가져온 약간의 패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덕에 넉넉하지는 않지만, 서로가 있기에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사십여 년 동안 떠돌며 다섯 명의 자식도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쫓겨 다니며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쫓기는 삶은 더욱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조신 내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불쌍한 처지가 되었음에도 사방으로 떠돌아다니며 가족을 먹여 살렸습니다. 안 다닌 곳 없이 떠돌며,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쳤습니다. 그렇지만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점점 더 힘들고 어렵게 되었습니다. 어느새 빈털터리가 되고, 다 해진 누더기 옷은 몸을 가리지 못할 정도로 낡았습니다. 변변찮은 끼니거리도 제대로 먹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굶기를 밥 먹듯 하기까지에 이르렀고, 급기야 그들의 집마저도 이제는 겨우 네 벽밖에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조신 내외는 참담했습니다.

‘아’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그날도 끼니거리를 찾아 고개를 힘겹게 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결국 열다섯 살 난 큰아이가 굶어 죽었던 것이었습니다. 조신 내외는 울면서 길가에 묻었습니다. 소리 없는 울음으로 보내야만 했습니다. 게다가 그러고 나서도 길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나머지 네 아이들을 데리고 살아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조신 내외는 우곡현이라는 곳에 이르러 자그마한 오막살이를 짓고 살았습니다. 물론 그곳에서도 겨우겨우 힘겹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어느덧 또 세월이 덧없이 흘렀습니다. 이젠 부부도 늙고 병들었습니다. 게다가 하도 굶주려서 일어나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열 살 난 딸이 여기저기서 동냥을 하여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마저 동냥하러 갔다가 동네 개에게 물려 죽고 말았습니다. 기가 막힌 부부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한참을 울던 부인이 갑자기 눈물을 거두고 말했습니다. 그 모습이 사뭇 진지하고 엄숙해 조신은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는 나이도 젊었었지요.”
“…….”
“그땐 마냥 행복할 것만 같았고, 당신과의 사랑은 한없이 이뤄질 거라 생각했어요.”
“…….”
“하지만 젊은 시절의 살뜰한 기쁨과 행복도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처럼 사라졌네요.”
“…….”
“이젠 아이들의 추위와 굶주림도 면할 방도가 없으니 어느 겨를에 부부간의 기쁨이 있겠어요. 늘 당신은 저 때문에 걱정을 하고 미안해하고, 저는 당신 때문에 또 걱정을 하고 미안해하고 말이에요.”

조신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부인은 잠시 흐느끼다 계속 말을 이었습니다.

“옛날의 즐거움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바로 그것이 우환의 시작이었어요. 당신과 제가 어찌하여 이 지경이 됐는지요. 모두가 함께 굶주리느니 차라리 짝 없는 새가 되어 거울을 보고 짝을 그리워하는 것만 못할 거예요.”
“…….”
“역경을 당하면 버리고 행운을 만나면 따른다는 것은 인정상 차마 못할 일이나, 가고 멈추는 것이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
“헤어짐과 만남에도 인연이 있는 것이니 이제는 우리 그만 헤어져요.”

말을 마치자마자 부인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조신도 함께 부인을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하지만 조신도 역시 그 길밖에 없다고 여겼습니다. 조신은 부인과 아이들이 떠나는 것을 가만히 지켜봤습니다. 이제 안심이 되었는지 입가엔 미소마저 띠었습니다. 부인은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간다고 말했습니다. 떠나는 부인과 아이들이 보이지 않자, 조신도 뒤돌아 뛰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조신은 꿈에서 깨어나 벌떡 일어났습니다. 두리번거리니, 타다 남은 등잔불이 가물거리고 있었습니다. 여명이 밝아 오고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고 보니, 수염과 머리털이 전부 하얗게 변해 있었습니다. 조신은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관음상만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관음상을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습니다. 관음상을 대하기가 부끄러웠습니다.

조신은 조용히 일어나 꿈에 아이를 묻은 곳으로 갔습니다. 뉘우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땅을 파 보았습니다. 돌미륵이었습니다. 조신은 그것을 잘 씻어 법당에 잘 모셨습니다.

그 후, 조신은 농장 일을 그만두고 전 재산을 모두 바쳐 정토사를 세우고 열심히 불도를 닦았다고 합니다. 그가 어떻게 생애를 마쳤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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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첫 만남은 설렙니다. 궁금합니다. 마냥 좋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합니다. 처음 그렇게 만나 좋아합니다. 또 보고 싶습니다. 그립습니다. 함께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함께 살기로 합니다. 신의 선물 같은 서로에게 감사하고, 사랑하면서 살기를 다짐하며 함께 살기로 합니다. 게다가 하늘과 땅과 별들도, 그리고 많은 사람들도 축복해 주리라 믿고 바라면서 함께 살기로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부부도 있습니다. 도망치듯 둘만의 외로운 길을 가는 부부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부부는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습니다. 두렵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 애틋합니다. 서로만을 바라보고, 믿고 의지하고 사랑합니다. 그 사랑으로, 믿음으로 간절한 소망으로 참고, 견디어 냅니다.

하지만 삶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말처럼,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마음대로, 뜻하는 대로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힘들고, 어렵습니다. 괴롭습니다.

그래도 부부가 고달픈 건 견딜 만합니다. 더 힘들고 어렵고 괴롭게 하는 것은 새끼들입니다. 자식 키우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다 그렇듯이 제 새끼가 배고프고 상처입고 병들어 괴롭거나 죽는다면, 더 견디기 어려울 겁니다. 그때는 부부의 사랑도, 믿음도, 희망도 약해집니다. 증오로, 배신으로, 절망으로 바뀌어 갑니다.

그럴 때 부부는 더욱 힘듭니다. 괴롭습니다. 화가 납니다. 하지만 그래도 부부는 다시 한번 이겨 보려 노력합니다. 자신들의 사랑으로, 믿음으로, 소망으로 선택한 이 길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이렇게 헤쳐 온 세월이 안쓰러워서라도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후회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가족들에게도 미안하고 창피하기도 합니다. 가족들의 자신에 대한 사랑도, 믿음도, 소망도 매몰차게 뿌리치고 선택한 길이었기에 그렇습니다. 가족들의 우려도, 두려움도, 불안함도 과감히 뿌리치고 선택한 길이었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없었지만, 어떻게든 성공하리라 굳게 다짐하면서 선택한 길이었기에 그렇습니다. 이를 악물고 기필코 행복한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부부의 뜻대로 되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아니, 많습니다. 그때부터 서로에겐 한동안 불편한 침묵이 흐릅니다. 아무도 말을 걸지 못합니다. 사랑한다는 말도, 위로하는 말도, 격려하는 말도 없이 그저 서로 숨죽입니다. 이젠 가고 멈추는 것이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헤어짐과 만남에도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멀어 져버린 마음에 놀랍니다. 그런 마음이 갑작스럽게 다가옵니다. 멀어진 마음을 확인합니다. 그 모든 것이 눈 깜짝할 새도 없이 코앞에 들이닥쳐 오고 맙니다.

그러고 나서 한순간 모든 상황이 변하고 맙니다. 첫 만남의 설렘도, 사랑했던 시절의 살뜰한 기쁨과 행복도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처럼 사라져 버립니다. 그렇게 이제는 그만 헤어질 때가 다가옵니다. 이별만이 유일한 희망인 것처럼…. 망설임도 잠시, 결국 살기 위해서 헤어집니다. 어쩔 수 없는 냉정함으로 둘러싸여…. 그 길만이 최선이라 되뇝니다.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갑니다. 이별이 숙명인 듯이….

하지만 부부 모두에게는 고통스런 선택입니다. 자녀에게도 고통스런 선택입니다. 모두 한동안 그 고통 속에서 밤잠을 설칩니다.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립니다. 흘러 베갯잇을 적시고 또 흐릅니다. 마음도 무너집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각자의 슬픔에 젖어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게다가 그런 우울한 나날에 무기력함이 더해집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젖은 빨래처럼 그냥 축 처져 있을 뿐입니다. 컴컴한 굴속에 갇힌 듯도 합니다. 갈 길을 잃고 헤매는 듯 혼란스럽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암울하고 암담하고 캄캄합니다.

모두 그렇습니다. 모두 다 아픕니다.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서로 다른 공간 속에서 모두가 아파합니다. 모두가 하나의 상처를 품고 삽니다. 그렇게 부부는, 가족은 영원히 이 상처 속에서 함께합니다. 상처가 다행히 아물어 흉터가 남더라도 그렇습니다. 흉터도 그 흔적이 미미해져 기억 속에 아련히 묻히더라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가족은 영원히 가슴 속에 묻혀 기억됩니다. 그러다 어느 땐 불쑥불쑥 그 아픔이 아려 옵니다. 그 상처가 기억을 통해 희미하게 전해져 옵니다. 그렇게 지금도 그 아픔이 가족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 기억과 함께 영원히 살아갑니다.

하지만 삶이 어렵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삶이 아프지 않은 사람도 없습니다. 가난한 이도 부유한 이도 갓난아기에서 머리 흰 어르신들까지도 마음이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먼저 아팠던 사람이 현재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것이고, 현재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위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아픔을 이겨 내며 함께 이겨 내기 위해 손을 내밀어 어루만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네 삶입니다. 인생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우리들의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삶, 아픔으로 가득한 우리들의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러한 삶에서 무엇을 얻기 위해 기어이 살아가는 걸까요? 우리들의 삶과 마음을 괴롭힌 고단하고 고통스러운 삶의 순간들은 왜 우리에게 오는 것일까요?

그 질문에 대한 궁금함을 한 번에 모두 해소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늘 그 아픔 속에서 성숙해진다는 것입니다. 그 아픔이 있기에 철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 고통스러운 삶의 과정이 있기에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더욱 성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삶의 모든 아픔 속에는 반드시 소중한 삶의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고통의 긴 굴을 지나면서, 자신의 아픈 삶을 되돌아보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진솔한 모습과 마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실의에 차 절망 속에서 그 아픔을 되새김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서 후회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가슴을 치고, 머리를 쥐어뜯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 아픔을 잊기 위해 더 아픈 상처를 내며 괴롭히고 혹사시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그런 캄캄한 굴속에서 아픔을 잊기 위한 더 큰 고통을 자아내며 허우적거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고통의 시간에 고독한 자신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홀로 황량한 벌판을 미친 듯이 발버둥치고 난 뒤, 지친 자신의 고독과 만나기 때문입니다. 고독이 된 자신과 만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한참 동안 침묵이 또 흐릅니다. 눈물도 흐릅니다. 그렇게 그 아픔과 함께 고통의 굴을 지나고 나면, 어느새 빛이 보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 같은 빛이 보입니다. 너무 길어 도저히 끝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절망의 캄캄한 굴도 어느새 뒤로 물러납니다. 그것이 인생이었습니다. 지독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래도 이젠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아팠던 상처에 새살도 돋습니다. 그렇게 슬픈 기억도 아련해져 옵니다. 이젠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시련을 품고 피어나야 합니다.

그렇게 다시 살아야 할 이유를 간직합니다. 찬찬히 다시 봅니다. 나를, 세상을…. 그러고 나서 일어섭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짐합니다. 그렇게 또다시 걷습니다.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살아야 할 자신의 삶을 걷습니다. 그렇게 다시 피어납니다. 슬프게 피어납니다. 절망을 이기고 홀로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꽃봉오리처럼….

우리의 삶은
그렇다.
만날 사람을 만나게 하고
만날 때를 가려 만나게 하고
만났던 사람을 또 만나게 하고
만나야만 할 사람을 만나게 한다.
어떤 만남도 이유가 없지 않아,
만나고 싶다고 만나지는 것이 아니다.
만나야할 사람은 꼭 만나고야 만다

그러고 보니
다른 것들과도,
이별도, 두려움도, 아픔도,
모두.

그래서 하늘은 우리에게 딱 감당할 만큼의 시련만을 준다고 합니다. 하늘은 누구도 버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공평하다고 합니다. 깨달음을 위한 사랑의 선물이라고도 합니다. 그 아픔이, 그 고통이 우리들의 성장을 위해 예비한 은혜로운 선물이라고도 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 아픔 속에서, 그 절망 속에서 그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인지를 묻는다면,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이유인지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덜 아프지 않았을까요? 덜 절망스럽지 않았을까요? 더 슬기롭게 대처하지 않았을까요? 더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 아픔과 절망의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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