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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옥순(도곡리.68세) 할머니 |
강원도에서 손꼽는 작물로 옥수수와 감자가 있다. 다른 지역보다 더 맛있기도 하고 지역에서 오랫동안 식량구실을 톡톡히 해왔던 까닭이리라. 하지만 산이 많은 강원도에서 잡곡을 빼놓고 농사를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척박하고 가물은 땅에서도 잘 자라 어르신 세대에는 끼니로, 젊은 세대는 건강식으로 찾는 ‘좁쌀’을 찾아보았다. 스무 살에 시집와 50년 가까이 좁쌀을 심어온 안옥순(68세)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공근면 도새울 마을 안옥순 할머니 댁은 집 안팎이 무척 정갈했다. 가을볕 좋은 마당에는 붉은 고추와 땅콩, 옥수수알을 말리고 있었다. 농사일을 하면서 하나씩 늘어났을 창고며 외양간들도 제 몫을 할 수 있도록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오래된 흙벽의 창고에는 농기구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고, 갈무리한 굵은 마늘들은 처마 아래서 햇볕을 쐬고 있었다. 어느 한 곳 어질러지거나 잡동사니가 모여 있는 곳이 없다. 한눈에 어르신들이 부지런하고 검소한 줄 알겠다.
안옥순 할머니는 늘 웃는 얼굴이신데 피부도 고왔다. 처음에 꺼내시는 말씀이 한 동네에 살았던 시어머니가 삼 년 전에 돌아가시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시어머니를 모시던 큰 동서마저 돌아가시니, 많이 외롭고 허전하다고 하셨다. 시어머니와 큰동서와는 한 번도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살았다 하니, 시댁과 의가 좋았나 보다.
할머니가 농사짓는 것은 옥수수와 고추 말고는 거의 다 토종씨앗이라고 한다. 할아버지가 잡곡밥을 좋아해서 차조와 메조를 꼭 심는다. 노란 메조와 노란 차조를 수확하면 열 말이 넘는다. 밥에 놔먹기는 거친 느낌이 있지만 메조가 더 구수해서 좋다고 하셨다. 예전에는 쌀 대신 밥을 해먹었던 좁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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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볕에 익어가는 노란 차조 |
“우리 클 때만 해도 감자하고 좁쌀허구 먹었지. 감자가 끓어가지고 조금 익었다 했을 때, 좁쌀을 일어가지고 그 꼭대기에다 둘러. 그리고 뜸을 들이면 그게 익잖아. (조)밥 풀 때 감자 탁탁 깨가지고 (좁쌀이랑) 섞어가지고 먹잖아. 맛이 있거나 없거나 그땐 그렇게 먹었지.”
요즘에는 참새 떼들이 극성이라 수확이 많이 어려워졌다. 할아버지가 참새 떼를 한참씩 쫓아가면서 좁쌀 농사를 짓는다. 올해는 처음으로 모판에 5월 말쯤 씨앗을 부었다가, 6월 11일 경에 심었다. 그냥 씨로 뿌리면 자랄 때 곁순이 많고, 키가 크게 자라 잘 쓰러진다고 한다. 모판에 키워 심은 모종은 곁순도 적고 키도 덜 자라서 좋다고.
“거두기는 요새 비지(베어내지). 메조는 지금 비고, 차조는 추석 지나서 조금 있어야지. 전부 집에 실어다 이삭을 잘라서 막대기로 떨어서 바짝 마르면 잘 벗겨져. 집에서 벼 찧는 걸로 쪄. 벼 찧는 기계에 뭔 부속품을 갈면 된대. 우리가 먹는 거는 싸래기를 까불은 거여. 그래, 농사짓는 사람이 그런 거 먹는 거여. 좋은 거는 다 팔고.”
할머니는 농사를 지으며 딸 다섯을 잘 키웠다. 딸들은 도새울 마을에서 어른 걸음으로 40분 떨어진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걸어 다녔고, 읍내의 여고를 다닐 때는 막차를 타고 내려서 한참을 걸어서 들어왔다. 그때는 야간자율학습 때 먹을 밥까지 아이들 도시락을 일곱 개씩 쌌다고 하셨다. 지금은 모두 결혼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단다.
할머니는 일흔다섯 할아버지와 같이 아직까지 건강하니, 힘이 닿는 데까지 밭 2000평· 논 15마지기· 소 열네 마리 정도인 지금 농사를 계속 하고 싶어 한다. 밭에는 거의 한아가리콩·좁쌀·호박고구마·수수·들깨·참깨·마늘처럼 토종씨앗으로 심는 농사다. 기장은 심어보고 싶지만 횡성에 찧는 데를 몰라서 안 심는다고 하셨다.
“즐겁게 사는 게, 그저 우리네 사는 게 즐거운 거지. 답답하고 심심할 새가 없어요. 요거 하면 덜하겠지 하면, 고 옆에 일거리가 계속 나오잖아요. 심어가지고 잘 나오고, 짐승이 해 안치면 재미있지.”
할머니는 행복해 보였다. 옛날에 먹었다는 감자조밥을 한번쯤 해먹어보고 싶다. 조금은 거칠지만 구수한 좁쌀을 쌀에 넣을 때면, 할머니의 환한 웃음과 정갈한 집이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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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확중인 노란 메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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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머니의 정갈한 집과 마당 |
횡성여성농업인센터 토종씨앗지킴이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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