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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담리 노을길최보정 작가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20.08.31|(206호)

<가담리 노을길>

친구와 산책하는 몇 길 중에 불현듯이 정겹게 다가온 길이 있다. 그 길은 가담리 노을길이다. 입추 지난 어느 날, 아직 가을이라는 실감이 찍히지는 않는, 여전히 뜨거운 무더운 날, 난데없이 여우비 오더니 쌍무지개 뜨는 저녁 답이었다. 아버님 차사고로 돌아가신지 몇 개월이 지났건마는, 풀리지 않는 마음의 원망을 자연에서 위안을 얻고 싶어선지, 혹은 또 다른 상처가 덧날까봐 미리 염려가 되어선지, 장마철에도 무더위에도 무작정 이 길 저 길 걸었다.

그냥 마구 골목길, 고샅길, 호젓한 길, 허락되면 어느 길이나 걸어 다녔다. 오늘은 우산하나 챙겨들고 혼자 더덜없이 가담리 삼거리에 들어섰다.

어디에서보아도 무엇보다도 섬강의 노을은 유난히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섬강 주변의 호젓한 소롯길을 나만의 올레길로 삼고 싶다. 올레길은 네이버 검색에 의하자면, 제주도 말로는 작은 길, 골목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또는 좋은 길이라는 뜻이라 한다. 또한 완벽한 길이라 한다. 아마도 현무암으로 구멍이 난 돌담길을 바다도 실컷 보며 유채꽃도 실컷 보며 걸어서 집으로 들어가는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인상적인 길이 제주의 올레 길 같다. 아직 못 걸어본 그 곳의 그 길을 상상 속에 그리며 나는 그 먼 곳을 향해 이 노을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생각만해도 늘 가고프던 그 먼 곳이, 먼 곳을 향해 그리워하는 맘이 내 정서에 맞닿아 그토록 만족하며 이 길을 올레길처럼 여기고 걷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먼 곳을 쭉 그리워하다가 훗날, 그림으로만 보던 그 길에 가게 되면 이 길이 지워질까도 걸으며 생각해본다. 글쎄, 하면서도 힘차게 머리를 저어보며 혼자 맥없이 미소 짓는다.

이 내 고장의 내 가슴의 올레길을 걷는다.

그리움을 동반하며 걸어 다닐 때 슬프면서도 행복한 심정이 되게 해주는 것은 자연경관이 평화롭고 온새미로 생긴 그대로가 내게 익숙하여 평온하게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지역마다 8경, 10경이 매겨져있건만 그 어디에도 안 들어간 길이지만, 참으로 아름다워 낱낱이 살펴본다. 만날 건망증이 늘어나는 나를 위해 내 기억 속에 저장하고파 본대로만이라도 적어놓고 싶다.

나는, 가담리노을길로 들어가려면 우선 차를 축협주차장에 세워놓는다. 얼른 축협을 가로질러 골짝을 빠져나가듯 나가서는 전천교(앞내다리)다리를 건너면서 물길을 본다.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것을 느끼게 된다. 책에서는 가로로 흐른다고 한다. )일단 다리를 건너자마자 강따라 둑길이 이어지고 풀이 우거진 좁은 둑길 초입에 큰 표지판이 있다. 가담리노을길, 아름다운 섬강 둘레길, 전천교부터 합수머리까지 1키로미터, 합수머리부터 부엉바위 까지 2.2키로미터 라고 쓰여있다 . 합수머리라니 어느 강 어느 강이 합쳐지는 것일까. 양수리 두물머리처럼 거대한 강은 아니지만 ,그래서 그런지 강 물줄기가 어찌 흐르는지 훤히 보인다. 앞내개울과 뒷내개울물이 합쳐져서 가로로 흐른다.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물길이 보인다. 둑길을 걸으면서 내려다보면 정말 물길이 가로로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횡성군지에 보면 물이 거꾸로 흘러서 횡천이름이 횡성으로 변했다고 한다. 인근에 홍천이 있어서 횡성으로 명명 되었다고 한다. 중앙고속도로 다리 아래로 흐르는 섬강과 홍천강 줄기의 흐름은 서로 다르다. 그것은 그렇더라도 섬강이 흘러서 남한강과 합류하여 한강으로 들어가는 한강상류로서 청정한 상수원지로 횡성 원주의 물 공급처이다.

이 노을길 둑길에는 달맞이꽃이 4시만 되어도 지천으로피고 이상스레 정결스레 보인다. 쑥부쟁이 사이로는, 낚시금지, 수영금지 경고표지판이 있다. 고래적부터 물 반 고기반이라는 풍성한 강물이다. 그 말을 대변이라도 해주듯이 이번 장마에 이 물줄기가 합수되어 흐르다가 여인의 허리마냥 에스자형으로 물굽이가 변하여 인근 반곡리저수지로 흐른다. 물막이 보를 타넘어 물고기떼가 튀어 오르고 눈꽃처럼 붕어떼가 하늘에서 떨어지듯이 떨어져서 그물만 펼치고 그냥 손으로 주워 담아도 큰 양동이에 그득히 담았다고 하며 신나서 인증샷을 보여주었다. 나도 그 사진을 보고 그 붕어들을 꼭 만져보고 싶었다. 낚시 한번 한 적이 없는 나는, 부러워서 소름이 다 돋았고, 손바닥이 옴씰대는 게 눈꽃붕어 한 마리 있는 거 같았다. 그 여인에게 내년에는 꼭 그런 일 생길 때 전화해달라고 신신당부하였고. 내스스로라도 명년 장마철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붕어만 염두에 둘 것이다. 그 사진을 내 클라우드에 갈무리해두었고 나는 한동안 이 노을길 주변을 설렁설렁거렸던 것이었다.

오늘도 이 노을길을 걸으면서 물만 바라보니 웬 사나이가 물속에 서있었다. 공중으로 드러난 낚싯대는 없는데, 물에서 꼼짝도 없이 혼자 서있다. 그 옆에 너럭바위위에는 황새 한 마리 서있다. 이 지역에서 학처럼 혼자 태공 노릇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 속으로 생각했다. 낚시 대의 휘어짐도 아니 보이고 고기담는 통도 안보이고, 빈 낚싯대 드리우고 앉아 있었다는 진짜 강태공을 닮았다 생각하고 싶었다.

올 때도 이 길로 다시 돌아와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오래있지 않길 바라며 흘끔흘끔 보며 계속해서 걸었다. 물이 명치까지 차오르고 있는데, 뭘 하는데 저리 부동자세일까. 합수머리지점엔 고기가 많을까 궁금했다. 문득 코끝을 해감내와 비릿한 내음새가 훅 끼쳤다. 며칠 전 폭염경보내린 날, 친구와 밤나들이에 합수머리 지나 가담리노을 둑길로 오르기 전에 징검다리 끝에 앉아있었다.

상현달빛타고 버덩위로 푸른 달빛 넘실대고 물빛도 푸른 칼날같이 시원하고 깨끗하고 그래서 신들린 듯 발을 텀벙 담그고 종아리로 물장구치다가 세수를 했다. 그때 물이끼냄새와 비릿한 냄새가 훅 끼쳤다. 친구보고 ‘왜이리 비릿한 냄새가 심할 까 하니’ “고기 반 물 반이라잖아” 했다. 물고기가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며, 친구와 나는 자꾸 세수를 하고 앉아있는데, 웬 남자분이 둑길에서 내려오더니 “친구들과 원족 왔는데 물이 맑아 목욕하려고요”했다. 우린 벌떡 일어나서 가담리 농로길로 피해줬다.

농로지만 차가 다닐 면적이고 포장도 잘되어 있다. ‘한강대’ 표지 있는 곳으로 가니, 춘원간 고속도로 다리아래 소풍 온 여럿분이 한뎃잠을 자려는지 텐트치고 즐거이 휴식하고 있었다.

이 가담리노을길은 섬강줄기를 따라 걷는 섬강둘레길이다. 이 강줄기는 지금 현위치에서 49키로 더 가면 남한강과 합류한다. 또 남한강과 합류하여 한강으로 흘러간다.

나의 우울한 현실도 이 길을 걷다보면, 나만의 올레길이 되어 작고 좋은 길이 되어 어느새 무거움이 사라지고 가벼운 구름처럼 붕 뜨고 변해있다. 그건 그냥 그런 거다.다 지나가리라 하며 자연스러워진다.

허공에 뜬 달과 싱그런 달밤 , 적막한 들판 농로 길엔 달맞이와 쑥부쟁이, 메꽃 아주 일부러 심은 듯이 어우러져있다. 둑길 아래로 강물소리 청아하고 기암괴석은 기기묘묘하고 집터만큼 듬직해 보인다. 왠지 믿음이가는 너른 바위다. 흰색바위를 스치는 물소리 들으며 걷다보면 나의 어둔 마음이 맑아진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길, 그 길이 좋은걸 어떡하랴. 누구에게나 걸어보라고 하고 싶다 그래야 편해진다고.

그냥 자연이 저토록 해 맑은 모습이구나 싶어 그냥 자꾸 걷는다. 시를 큰소리로 외워도 상쾌한 바람이 들어주니 더욱 좋다.

나만의 올레길은 ‘가담리노을길’이 으뜸이 된다. 시간이 허락되면 언제나 걷고 싶다. 차도 없어 더덜없이 바람도 자유를 느끼게 한다. 둥덩실 허공에 보름달 뜨면 또 친구를 불러내야지. 친구도 분명 이 길을 같이 가자고 할 테지.

돌아가는 길에는 개울 속 강태공도 사라졌고 너럭바위 위, 외로운 백로 한 마리도 저의 갈 길로 날아가 버렸다.

어느덧 노을 길 풍광이 내 맘의 서글픔을 빼앗아갔는지 온 마음이 가벼워진다.

최보정 작가현/ 횡성시낭송협회 회장, 시낭송 및 창작지도 강사강원도 양구 출생.<월간 문학><문예운동><수필과 비평> 신인상 시, 수필 등단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문협낭송발전위원회 위원, 강원문인협회 회원, 문학세계 회원저서/ 시집 “숲은 물소리만 스쳐도 흔들린다” 수필집 “달에 집짓기” 외 공저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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