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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대 씨가 명태를 널고 있는 모습(지난해) |
용대리 부럽지 않은 자연조건
넓은 눈밭 위로 나무기둥마다 줄줄이 명태가 널려있는 모습은 겨울철에만 감상할 수 있는 장관이다. 이렇게 명태를 널어 3개월 정도 추운겨울바람 속에서 얼리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해 황태로 만들어내는 장소를 ‘덕장’이라 부르는데, ‘덕장’하면 떠오르는 곳은 인제군 용대리다.
그래서인지 횡성에서도 덕장이 운영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강림면 월현리 선계마을의 해발 430m 지대에 자리한 덕장은, 주천강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해발 500m에 이르는 산자락의 한쪽에 위치하고 있어 용대리 못지않은 자연조건을 누리고 있다. 강림면의 찬 겨울뿐 아니라, 덕장이 갖추어야 할 필수요소인 ‘골바람’이 산과 강의 조화 속에 맘껏 불어주는데다, 그늘이 전혀 없어 햇볕을 받기에도 모자람이 없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500평 규모의 덕장을 운영하는 이들은 손윤경(36) 씨와 그의 아버지 손광윤(67) 씨, 그리고 윤경 씨의 남편 박용대 씨다. 손윤경 씨는 “여기는 오히려 용대리보다 조건이 좋다. 국도변에 위치한 용대리의 덕장보다도 깨끗한 환경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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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윤경, 손광윤 부녀. 윤경 씨의 남편 박용대 씨는 횡성군농특산물직거래센터가 주관하는 공군부대 직거래장터에 나가고 없었다. |
우울했던 귀농 첫해
윤경 씨의 가족은 속초에 거주하다 3년 전 강림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농사를 짓기 위해 횡성에 왔으니 ‘귀농’한 셈이다. 하지만, 1년간 농사를 짓고 보니 남는 게 없었고, 게다가 사고로 동생이 세상을 떠나는 아픔까지 겪게 되면서, 횡성을 떠날까 고민을 하기도 했다.
윤경 씨는 “아빠랑 둘이서 콩농사 1000평을 지었는데 100만원이 나왔다. 정말 많이 울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손 씨 가족에겐 소중한 자산이 있었다. 횡성까지 찾아와 풀을 매주며 격려를 해주었던, 귀농카페를 통해 만난 친구들, 용대리에서 몇 년간 ‘하주’일을 해봤던 경험이 그것이다. ‘하주’란 명태 소유주로, 덕장을 운영하는 ‘덕주’에게 덕장사용료를 지급하면서 황태를 만들어 판매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윤경 씨는 말했다. “처음에는 코다리(명태를 반건조시킨 것)를 좀 팔아보려고 명태를 널어봤는데, 개울도 있고 바람도 있어서 황태가 아주 잘 나오는 거에요. 용대리에서 일하는 제 친구가 고기(명태)도 대주고 도와준 덕에 1년간 준비를 해서 지난해 겨울 처음으로 제대로 황태를 만들었어요.”
윤경 씨 가족은 집터 아래에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윤경 씨는 "황태는 여름철에 벌레가 끼기 쉽다는 취약점이 있어 황태를 잘 보관하기 위해 저온냉장 시설을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실험실 기계만지던 남편과 인터넷 직거래 활용한 홍보·판매로 매출 올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황태 판매를 시작한 손 씨 가족의 주고객은 인터넷 카페의 회원들이다. 윤경 씨는 여러 인터넷 카페의 회원이자 운영자이기도 한데, 각 카페의 회원수를 모두 합하면 15만명에 달한다고 하며, 회원들이 구매해주는 양이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지난해 결혼한 윤경 씨가 신랑을 만난 것도 카페회원들의 모임을 통해서였다. 서울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신랑은 하던 일을 다 정리하고 아내를 따라왔고, 실험기계 대신 황태를 만지는 사람으로 변모했다. 더불어 올 한해 서울에서 열렸던 횡성직거래장터 등 각종 직거래장터를 찾아다니며 홍보와 판매에 열을 다하고 있다.
윤경 씨 가족은 올해도 밭농사만으로는 이득을 못 봤지만, 황태 생산을 통해 몇 천만 원의 소득을 올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횡성의 다른 지역에서도 덕장에 도전해보는 것은 가능할까. 손광윤 씨와 윤경 씨는 “해볼 만하다”고 말한다. 먼저 적은 양의 명태로 시도를 해보고, 품질이 괜찮으면 본격적으로 운영해볼 수 있을 거란 이야기다. 바람과 볕이 잘 들고, 추우면서 일교차가 심한 곳이라는 조건은 필수! 윤경 씨는 “어떻게 하든 대관령이나 용대리를 이길 수는 없어요. 그래서 황태, 코다리, 반건조 우럭 등 특화시킬 수 있는 품목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손 씨 가족이 갖는 바람 중 하나는 자신들을 ‘농업인’으로 인정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손광윤 씨는 “인제나 원통에 가면 덕장운영자들을 ‘황태농민’으로 부르고, 농업인 대우를 해줍니다.
안동에서 간고등어 하는 사람들도 농업인으로 분류합니다. 하지만 횡성에서는 우리를 농업인으로 인정 안 해요. 우리가 수산업자도 아니고, 농사만으로 먹고 살기 힘들어서 땅을 활용해 부가가치를 올리려는 것인데, 농업인으로 인정을 안 해주니까 서운합니다.”
윤경 씨는 “횡성에 온 첫해엔 동생도 떠나고 너무나 우울했는데, 지금은 우울할 시간이 없다. 그때 생각하면 지금은 천국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윤경 씨 부부는 기자와의 인터뷰 약속을 잡았던 그 주에도, 며칠간 간성에서 ‘할복’(명태의 배를 따 명란을 꺼내는 작업)에 매달리느라 쉴 겨를이 없었다.
12월 넷째주가 되면 월현리에 다시 덕장이 세워진다. 강림에서 주천강을 따라 영월로 넘어갈 일이 있다면, 잠시 오른쪽 산중턱을 올려다보자. 내친 김에 덕장을 방문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겨울에만 즐길 수 있는 볼거리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20% 싼값으로 황태를 구매할 수 있는 덤까지 얻을 수도 있다.
이창조 기자 redfrog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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