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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명리학자 / 한국역리학회 중앙학술위원 |
내가 어렸던 시절! 어머니께서는 밥을 지을 때 항상 여유있게 많이 해놓으셨다. 요즘의 세대들에겐 이해하기 힘든 시기이지만 그땐 그랬었다.
불시에 찿아 오는 손님도 있었지만 그 시절엔 동냥밥을 얻어 하루하루를 연명해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았던 시절이고 보니 언제 어느 때 보고픈 사람들이 찾아올지 몰라 항상 여유밥을 해놓고 살았었다.
물론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없을 때는 남아있던 찬밥은 오로지 어머니의 몫이었고 그렇게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며 살다 가셨다. 아마도 그 시절엔 우리집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그러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항상 배가 고프던 시절. 밖에서 정신없이 놀다가 집에 돌아와 솥뚜껑을 열어보면 언제나 밥 두 그릇이 놓여있었다.이렇듯 쌀 한톨 아까웠던 시절이었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위해 밥 한 두 그릇을 항상 준비해놓고 살다 가신 우리들의 수많은 어머니들 누나들에게 끝없는 존경과 경의를 표해본다.
며칠 전 먼 친척되는 분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접했다. 나한테는 형수뻘이 되시는 분이었는데 그동안 왕래도 뜸했었고 지금의 코로나 사태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한참을 고심했었다. 더군다나 장지가 부산이고 보면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를 여행해야 하는 부담도 있어서 한참을 고민하다 참석하기로 결심하고 서둘러 출발했다.
이미 시간이 늦은지라 곧바로 장지로 먼저 가서 기다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버스가 도착하여 상주들이 내리는데 딸랑 세 명? 고인의 아들과 딸내외 뿐이었다.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의외의 장면에 당황해 물었다. 나한테는 조카뻘인 고인의 아들이 평생을 서울에서 살다보니 대부분의 지인들이 서울 인근의 사람들이라 부담을 줄까봐 연락조차 안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집안 일가친척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무도 안보인다는 데 놀랐다. 정말 나라도 참석했길 잘했다 싶어 조카 남매들에 위로와 함께 고인에 대한 명복을 한층 더 간절히 빌었다. 비록 산자들의 배웅은 열악했지만 먼저 가신 분들의 환대는 열렬할 것이라고!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공감하며 살다 가신 분들의 환대가 있을 것이니 먼 길 편안히 가시길…라며!
돌아오는 길에 화도 나고 서운하기도 하여 친지들에게 전화를 했다. 하나같이 코로나 사태에 어딜 가냐고 반문이다. 그렇잖아도 점점 소외되어가는 이 땅의 수많은 선배제현님들 이신데 코로나로 인해 더욱더 고립되어 가는 것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다.
산업화시절 열악한 근로환경에서도 경제개발의 역군이 되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잔업은 물론 철야근무도 마다하지 않은 선배님들 덕분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이루어졌음을 우리 모두가 가슴깊이 새기면서 얼마 남지 않은 여생 외롭지 않게 편안히 살다 가시길 빌어본다.
횡성희망신문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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