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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과 함께 수덕사 곤충채집 |
아파트는 나비, 잠자리 애벌레를 키워내는 곤충 실험실이었고 늘 무언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러한 정도의 작은 기쁨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한 것 같았고 그 마음의 갈피가 무엇인지 몰라 힘들고 혼란스러웠다... 그냥 이대로 편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불안해도 삶의 방식을 바꿔 아무도 가보지 않은, 진정 내가 원하는 ‘가지 않은 길’로 가 볼 것인가의 갈림길에 섰다.
딸 결혼식 때문에 잠시 삼천포로 빠졌네요.
다시 1996년으로 돌아와서. 동아일보 생태계 탐사 단장 7년차인 그 당시에는 새 뿐만 아니라 식물과 곤충에도 심취해 있었다. 아파트 베란다는 녹색의 온갖 야생화로 늘 푸르렀고 철마다 바뀌는 꽃으로 풍성했다. 아름다운 꽃뿐만 아니라 ‘잡초’라는 어정쩡한 이름으로 불리는, 애벌레가 먹는 식물로 곤충을 위한 최적의 서식지로도 활용되었다. 1년 중 여름 한 철에만 탐사가 가능한 곤충, 식물 공부는 턱없이 부족하고, 지속적이지 못해 집에다 아예 실험실을 꾸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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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줄왕잠자리 날개돋이 |
베란다 실험실을 통해 알에서 깨어나 5~6 번의 껍질을 벗고 털 많은 애벌레에서 멋지고 화려한 나비로 변신하는 곤충을 관찰하거나, 밤을 꼬박 새 생명 창조의 황홀한 장면을 촬영하면서 놀랍고 신비한 소우주를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또 베란다 실험실에는 온갖 식물들과 어우러져 크고 작은 수족관이 여럿 있었다. 수족관에서 물속에 사는 수서곤충을 키우면서 생태 관찰을 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물속의 왕자’ 잠자리는 특별히 연구 대상이었다. 주걱처럼 긴 턱을 쭉 내밀어 먹이인 물고기를 잡아먹거나 날개돋이를 한 후 훤히 비치는 영롱한 날개와 왕방울만한 눈이 매력적이었다. 그저 물을 바라보는 일 자체만으로도 침착해지고 마음이 편안해 오랜 기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여러 종류의 수서생물을 키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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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 동행한 북한산 식물탐사 |
강남성모병원 간호사 시절 입원했던 유명한 보살님께 아내가 내 사주를 주니 ‘화가 많아 물을 끼고 살면 편안하고 장수할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는데, 물을 좋아하고 물을 가까이 한 이유가 아마도 장수하기 위한 본능적 행동이었던 것 같다고 아내는 이야기 한다. 이후로도 멸종위기종 물장군이나 꼬마잠자리 같은 수서곤충을 늘 옆에 끼고 살고 있는 내 자신을 보면 영 틀리지는 않는 말 같다.
멀리 찾아가 맞이해야하는 철새를 보다가 실내에서 사육하며 그 신비한 마이크로 코스모스(Micro cosmos)를 경험하며 생태 사진을 찍고 자료를 만들어가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아파트는 나비, 잠자리 애벌레를 키워내는 곤충 실험실이었고 늘 무언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내 집을 방문한 친구나 이웃들이 여긴 꽃과 나비가 사는 천국 같다고 칭찬하면 우쭐해지는 기분으로 열심히 환경을 이야기하던, 주변 사람들에게는 만물박사로 통하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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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과 수서곤충 채집 |
곤충, 조류, 식물, 지질, 해양생물 등 자연 과학 중 생물학의 거의 모든 분야를 탐사하고 공부하면서 일로 배운 어색하기만 했던 생물, 환경 공부가 너무나 당연한 나의 주제가 되었다. 혼자만 희열을 느낀 것이 아니라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생명의 경외로움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열심히 전도했다. 모두 좋아해서 틈만 나면 온 가족이 동네 산을 오르고 숲길을 걸으며 풀과 나무, 새와 곤충을 관찰했다. 식물이나 새 혹은 벌레들까지 보이는 것 어느 정도는 이름을 알 수 있는 나름 꽤 괜찮은 경지에 도달했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모르는 사실을 꼭 알고 싶어 하는 지적 요구가 많아졌다.
'어느 날', '문득'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식상하지만, 그 '문득'의 순간이 소설처럼 불현듯 나에게도 찾아왔다. 평일의 일상이 늘 배우고 그래서 즐거움이 가득한 생활이었지만 이러한 정도의 작은 기쁨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한 것 같았고 그 마음의 갈피가 무엇인지 몰라 힘들고 혼란스러웠다. 현재 하는 일을 즐기고 연구하며 내 능력으로 환경에 관한 특별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자신감으로 충만했었다. 한 번 마음을 먹자 새로운 길로 가고 싶은 충동은 계속 됐고 진폭(振幅)은 그때부터 잦아들었다. 그냥 이대로 편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불안해도 삶의 방식을 바꿔 아무도 가보지 않은, 진정 내가 원하는 ‘가지 않은 길’로 가 볼 것인가의 갈림길에 섰다. 삶의 재탐색 시기에 들어섰고 ‘내 삶을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라는 묵직하며 벅찬 내 안의 소리가 심장에서 쉴 새 없이 소리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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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희망신문 hschamho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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