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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잃어버린 동심(童心)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15.11.25 17:38|(93호)
1953년 3월 횡성초등학교 졸업사진. 뒤에 보이는 건물이 새로 지은 횡성초등학교. 김동수씨는 “새 교실 들어가자마자 졸업이었다”고 했다.

-겨울전쟁이 끝나고 학교도 다시 문을 열었다. 아이들은 배고픔과 전염병, 낯선 미군들과 마주하며 어른 아닌 어른이 되어갔다-

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다. 폭격으로 타버린 횡성읍은 예전에 식당과 여관, 물류창고, 숱한 가게로 번화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북천리의 얼음창고와 공회당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학교 건물을 대신했다. 고학년들은 야외에 만들어진 천막교실에서 수업을 받았다.

한뒷내 경로당. 북천1리 마을회관 겸 경로당으로 쓰고 있다. 이 일대를 한뒷내라 불렀다. 어린 학생들은 마을회관 안에서, 고학년들은 밖에 천막을 치고 수업을 받았다.

4학년 때 전쟁으로 학업이 중단됐던 김동수씨도 1년 뒤 다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교실엔 책상도 의자도 없었다. 아이들은 개울을 뒤져서 앉기 좋게 반반하고 납작한 돌을 가져와서 의자로 썼다.

“한참을 앉아 있으면 엉덩이가 아파. 차갑기도 하고. 의자가 낮아 쪼그리고 앉아 선생님을 올려다 봐야하니 고개도 아프고...비행장에서 미군 포탄케이스를 가져와 의자로 쓰게 됐을때 얼마나 좋던지...”

한동안 돌의자에 앉아 공부하던 아이들은 횡성비행장에서 미군이 버리는 포탄 보관함을 가져다 의자로 사용했다. 미군입장에서는 버리는 물건이지만 아이들 의자로 쓸만해 당시 횡성성당의 외국인(아일랜드) 신부님이 미군의 허락을 받아줬다. 쇠로 만들어져 있어 아이들이 옮기기엔 제법 무거운 포탄보관함을 모평리 횡성비행장에서 읍내 학교까지 머리에 이고 날랐다.

“애들마다 (포탄보관함을)머리에 이고 읍내까지 걸어오는데 힘든 줄도 몰랐어. 신났지. 의자가 생기잖아. ”

김동수씨는 횡성비행장에서 가져온 포탄보관함을 의자로 쓸 수 있게 됐을 때 “행복했다”고 했다.

한국전쟁 때 초등학교 교과서. 출처/ 교과서박물관

교과서는 웅크라(국제연합한국재건단)가 지원했다. 뒷장에는 미국원조로 만들었다고 인쇄 되어있었다. 외국에서 만들어진 탓인지 맞춤법이 종종 틀린 교과서였다. 미군시체를 본 아이가 있는지 학교로 미군이 찾아오곤 했다. 방과 후에 미군시체가 있는 곳으로 미군을 안내하면, 미군은 초코렛 등 먹을 것을 줬다.

학생들의 수는 갈수록 늘어났다. 남쪽으로 피난을 갔다 돌아온 아이들이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지만 학교수업을 끝까지 들을 수 있는 아이들은 많지 않았다. 아이들은 수업을 듣다가도 집안 농삿일을 거들기 위해, 미군부대에 하우스보이(※잔심부름꾼)로 일하러 가기 위해 조퇴했다. 아이들은 학교에 다닐 수만 있으면 열심히 공부를 했고, 집에 돌아오면 농사일이건 가게일이건 집안일을 많이 도왔다. 제법 큰 아이들은 생업에 나선 부모를 대신해 직접 집을 짓기도 했다.

초등학교 5학년인 김동수씨도 중학생이던 형과 함께 집을 지었다. 밭에 가서 서까래로 쓸 나무를 잘라다 짚을 섞은 흙벽돌을 만들어 집에 방 한 칸을 이어 붙였다. 온돌도 만들었다. 장판이 없으니 찰흙을 가라앉혀 미군 구호물자인 쌀자루를 풀은 것에 섞어 흙 장판을 발랐다. 갈라지면 자꾸 흙풀을 붙이고 콩기름을 칠했다.

김동수씨는 미군군복을 빨래해주고 품삯을 받는 어머니도 도왔다고 한다. 김동수씨가 북천리 집에서 군복을 지게에 지고 오리나무 숲이던 산길을 지나 섬강 개울 용바위까지 가야 했다. 불을 피워 양철그릇에 삶고 비누칠을 해서 나무뿌리로 만든 솔로 빡빡 문지르며 바위에다 놓고 빨았다. 미군과 빨래삯을 계산하는 일도 김동수씨 몫이었다. 미군은 빨래해주는 값으로 달러도 주고 초콜릿과 담배도 줬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연필이 ‘엄청 귀하던 시절’에 형제 많은 집에 가져다 준 미제 연필이었다.

김동수씨 어머니가 미군빨래를 했던 섬강변. 강변에 솥을 걸고 빨래를 삶았다

김동수씨 어머니가 미군의 빨래를 하게 된 것은 집에서 쫒겨난 김동수씨가 미군을 만나면서 시작됐다. 김동수씨네 아버지와 형, 누나, 여동생까지 장티푸스에 걸려 앓아눕자 김동수씨 어머니는 젖먹이 어린 두 동생을 데리고 아픈 가족을 돌보는 한편 성한 자식 셋을 집밖으로 내쫓으며 ‘알아서 살라’고 했다. 어머니에게 쫓겨난 김동수씨가 해가 비치는 처마 밑에 앉아 옷에 붙은 이를 잡고 있었는데

“한 흑인병사가 더플백(※군인들이 사용하는 커다란 가방)을 하나 들고 와 커다란 빨래비누를 보여주며 몸짓으로 옷을 빨아달라고 해. 보니까 젖은 빨래야. 알고 봤더니 건너 동네에 줬더니 쇠단추를 방망이로 두드려 다 우그러뜨린 거야. 우리 엄마가 먹을 쌀도 없는데 찬밥으로 풀을 해서 다리미로 싹 대려줬어요. 차곡차곡 접어서 보냈거든. 그런데 돈도 안주고 그냥 가버리는 거야. 그래서 미국놈들도 사기꾼이 있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조금 있으니 쓰리쿼터(※미군용차량)에 빨래를 여러 뭉치 갖고 다시 와”

이렇게 시작된 미군 군복을 빨아주고 받은 품삯으로 가족들은 생계를 이어갔다. 김동수씨는 빨랫값으로 받은 초코렛을 장에 내다 팔았다. 폭격으로 타버린 집의 함석지붕을 가져다 나무작대기를 세워 받치면 비가 들이치지 않아 그럴듯한 가게가 됐다. 중학교에 다니던 형과 함께 학교가 끝나면 달려와 장사를 했다.

어린이들에게 초코렛을 나눠주는 미군.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초코렛을 장에 내다 팔면 돈이 됐다. 사진 미국국립문서보관소

“그땐 생선이 무척 비쌌어. 미제 담배나 초코렛보다 비쌌어. 생선 갖다놓으면 생선사러 왔다가 미제 담배 카멜, 럭키스트라이크 이런 걸사가고 초코렛도 사가고 그랬지. 기름(석유)을 팔기도 하고.”

석유는 미군들이 부대에서 빼돌린 것들이었다. 지프차나 트럭을 몰고 온 미군이 차의 기름을 파는 경우도 있었지만 석유를 드럼통으로 가져와서 파는 경우도 있었다. 김동수씨는 미군으로부터 사들인 석유를 솔가지를 덮어 보관하다가 됫박으로 팔았다.

“석유 옮겨담을 마땅한 펌프나 뭐 그런게 없으니 흘리는게 반이지 뭐. 드럼통에 있는 건 호스꼽아서 입으로 빨면 석유가 나와. 그릇에 받아서 팔았지. ”

전력사정이 나쁘던 당시는 석유호롱으로 불을 밝히는 집이 많아서 석유를 사가는 이들이 많았다. 한번은 트럭에 드럼통 수십개를 싣고와 모두 팔겠다는 미군도 있었다. 당시 중학교3학년이던 형은 겁이 나서 절반만 사겠다고 하는데 김동수씨는 전부사자고 형을 졸랐다. 그동안 초코렛과 담배 등을 팔아서 모아놓았던 돈을 죄다 주고 드럼통 십여통을 샀다.

“형은 중학생이니 그래도 영어가 좀 통해. 어차피 그 미군이 빼돌린 훔친 기름이니 값을 많이 깎았지. 그래도 모아놓은 돈을 다줬어. 다음날 아침 그 미군이 일찍 집으로 차를 몰고 왔어. 겁이 덜컥 났는데... 아마도 석유값을 속이지 않아서 기분이 좋았던 것 같아. 좋은 소년이라며 석유 한통을 더 주고 가더군.”

형과 김동수씨가 초코렛은 물론 미군이 빼돌린 석유를 팔아 돈을 버는 것을 알았지만 아무도 나무라는 이는 없었다. 읍내에는 김동수씨와 형 외에도 하우스보이를 통해 나온 것, 양공주(※당시 미군을 고객으로 하는 유흥업소여성을 이르던 말)에게서 흘러나온 것 등 미군 물건을 팔아 생활비를 버는 아이들이 여럿 됐기 때문이다.

여자아이들의 고무줄을 끊어놓고 도망치는 짖궂은 장난도 잠시, 아이들은 배고픔과 전염병, 낯선 미군들과 마주하며 어른 아닌 어른이 되어갔다. 남북한 간의 밀고 당기는 전쟁이 계속 되고 있었다.

겨울전쟁 이후 횡성읍에는 미군들이 많았다. 공병대는 무너진 뒷내다리를 복구하고 도로를 가로막은 부서진 차량과 시체들을 치웠고, 횡성고등학교 쪽에는 미군 야전병원이 있었다. 사진은 미2사단의 경비행장이 있던 횡성문화체육공원 아래 강변

<이용희기자, 오숙민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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