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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전쟁, 6.25 회고(1)전쟁의 시작[우리지역 그때, 거기, 그사람]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12.08.22|(0호)

목마르게 기다리던 단비가 고요한 산하에 생기를 적셔주었다. 다음날 6월 25일 새벽4시 북한군 최전선에서 일제히 포문을 열어 평화로운 온 산하는 30분간 포화로 뒤덮였고 북한군은 38선을 넘어 남침을 시작했다.
 

6.25 전쟁이 발발한 지 62년이 흘렀다. 전쟁에 참여했던 당시의 젊은이들은 지금 80세를 훌쩍 넘었고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났다. 6.25전쟁 그리고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시간들에 대해 다양한 잣대가 존재한다. 이 회고록은 6.25전쟁에 대한 역사적 연구가 아니다. 6.25를 경험한 한 개인이 전하는 전쟁기간 삶의 궤적이다. 횡성이라는 이름아래 함께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횡성인들의 삶을 통해 오늘 그리고 내일의 횡성을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편집자 주>

 

 

 

▲ 사진은 필자의 1949년경 헌병하사관학교 수료후 임관초기 모습(왼쪽)과 최근 모습.

 


 

김명수
6.25참전유공자회 횡성군 지회장

 


 

 

 나는 횡성농업중학교(당시 농업중학교는 6년제) 재학 중 1948년 12월에 헌병하사관학교 3기로 입교하여 4개월간의 교육을 마치고 6사단 헌병연대 정보과에서 근무하다 2개월 후 6사단 7연대 헌병대로 파견되었다. 당시 7연대 헌병 18명 중 헌병하사관학교를 이수한 헌병은 6명이었고 12명은 보조 헌병이었다. 정보 업무를 담당한 나는 최전선 고지까지 방문하여 장병들의 근무 환경과 북한군 동향을 확인하고 귀대하곤 했다. 1949년 12월 초에 이르러 북한군의 남침 위기설이 난무하고 있다는 육군 정보대의 정보가 있었다. 나는 사단 헌병부장 정강 소령에게 정보대 동향과 최전선 북한군 동향을 보고하는 일을 했다.

 1950년 경인년은 오랜 가뭄으로 무더웠다. 춘천시 봉의산을 감싸고 흐르는 소양강의 정기가 흐르는 옥산포와 우두동 농촌이 한눈에 보이는 들판에 보리가 누렇게 결실을 맺고 있을 무렵 북한군이 1950년 3월경부터 북한군 병력을 38선과 39도선 전선으로 전진 배치하고 북한주민을 5㎞ 후방으로 이주시키고 있다는 정보를 확인한 연대장 임부택 중령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전 장병의 군기진작과 임전태세를 강조하고 일요일 외출외박을 금지시켰다.

 전통 야전군 지휘관인 연대장은 산하 지휘관 회의를 긴급 소집해 “북한군 동향이 예사롭지 않으니 최전선 산악지대의 적 진입에 유리한 지점과 소양로 주변을 중심으로 우두동 샘밭 등에 1개 대대 진지 구축과 옥산포 5번 도로와 북한강 요충지 능선에 각각 1개 중대 진지를 구축하라”고 지시하였다. 

 연대장은 1950년 봄부터 방어 진지 구축공사를 착수하였다. 이무렵 춘천사범학교 외 5개 중.고등학교 학생과 교사들이 자진해서 찾아와 방어 진지공사를 도와주겠다고 하여 교사와 학생들의 호국정신을 존중한 임부택 연대장이 이를 수락하였다. 남녀학생들이 구슬땀을 흘리면서 곡괭이와 삽을 들고 방어 진지를 열심히 구축하는 모습을 보면서 군장병들도 조국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겠다는 마음을 다지는 모습이 역력했다. 

 땀 흘려 진지를 구축하던 학생들은 이 방어 진지가 앞으로 3개월 후 요긴하게 사용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춘천시민들이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동안 장병과 학생들이 구축한 진지에서 전투훈련과 특공조직 훈련까지 철저한 군사훈련을 하고 있었다. 

 6월 24일 늦은 밤부터 시민과 농민들이 목마르게 기다리던 단비가 고요한 산하에 생기를 적셔주었다. 다음날 6월 25일 새벽4시 북한군 최전선에서 일제히 포문을 열어 평화로운 온 산하는 30분간 포화로 뒤덮였고 북한군은 38선을 넘어 남침을 시작했다.

 무방비 상태였던 아군은 구구식 소총과 수냉식 기관총, 81㎜ 박격포 2문, 61㎜ 박격포, 57㎜ 대전차포 2문과 제16포병대대 105㎜ 곡사로 10여문을 무기로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3개월 전 중요 요충지 방어진지 구축과 방어 훈련과 전투 훈련을 비롯한 특공조를 구성하여 적을 제압하는 훈련까지 연마한 7연대는 강력한 북한군 화력에도 지형에 유리한 진지 구축과 특공조 육탄공격으로 북한군을 제압할 수 있었다. 북한군은 40%의 많은 병력 손실을 입고 후퇴하였으나 아군 역시 중상자와 부상자가 많이 발생했는데 수송 운전병이 부족했다. 헌병하사였던 나는 직접 쓰리쿼터(Three Quarter:트럭보다 좀 작은 군용차) 를 운전하여 최전선 샘밭 여우고개 포화 속으로 들어가 중상자와 부상자 12명을 싣고 춘천시내 연대 의무대로 수송했다. 군인의 의표인 헌병으로서 본연지성의 임무 수행이었지만 당시의 아찔한 순간이 지금도 가끔씩 생각나며 보람을 느끼곤 한다.

 하염없이 내리던 비가 멎어 하늘은 맑게 개이기 시작했다. 연대본부는 휴가 중 귀대 장병과 대기 중인 병력을 포함해 완전무장하고 트럭4대에 탑승하여 전선을 향해 소양로를 질주할 때 연도에는 주민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필승을 다짐하는 “국군만세 !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장병들의 사기를 드높여 주었다.

 

▲ 횡성공립보통학교(현 횡성초등학교) 29회생들은 지금도 일년에 한번 동창회모임을 갖는다. 김명수씨는 물론 회원 모두 횡성군 참전유공자회원이다. 뒷줄왼쪽부터 이계환, 신규선, 한봉희, 김명수, 하봉운, 안만선, 최익승, 김종인, 신재윤, 조광식, 앞줄왼쪽부터 신승재, 김용석, 조규택, 장홍식, 박순상 회원. 사진에는 없지만 김동하(전 횡성고등학교장)회원도 참전유공자다.

횡성희망신문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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