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시가지와 봉산동 능선에는 포탄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군은 제천과 충주 방향으로 전선을 유지하고 우리 헌병은 봉산교를 폭파하도록 지시 하였다.
6.25 전쟁이 발발한 지 62년이 흘렀다. 전쟁에 참여했던 당시의 젊은이들은 지금 80세를 훌쩍 넘었고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났다. 6.25전쟁 그리고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시간들에 대해 다양한 잣대가 존재한다. 이 회고록은 6.25전쟁에 대한 역사적 연구가 아니다. 6.25를 경험한 한 개인이 전하는 전쟁기간 삶의 궤적이다. 횡성이라는 이름아래 함께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횡성인들의 삶을 통해 오늘 그리고 내일의 횡성을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편집자 주>
6월 25일 많은 병력손실을 입고 퇴각했던 북한군의 진입이 다음날 다시 계속되었다. 6월26일 새벽에 옥산포와 우두동 지역으로 진입한 북한군 병력은 약3개 대대로 추산되었다.
이때 연대장 임부택 중령은 이들을 격퇴시키지 못하면 소양교로 진입할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다. 연대장은 아침7시경 1대대장 이하 4개 중대장을 집결시켜 작전 명령을 하달했다. 옥산포로 진출한 북한군을 동쪽인 오른쪽에서부터 기습하는 측방 공격의 명령을 지시한 것이다.
제16포병 대대지원 사격과 7·8연대 1개 중대는 우측인 북쪽을 그리고 김명익 중위가 지휘하는 3중대는 좌측인 남쪽에서 공격하였다. 이들은 출발선인 남북으로 길게 뻗은 능선에서 제방을 폭파시켜 홍수와 함께 옥산포 북한군 측방을 덮쳤다. 풍지박산된 북한군은 북쪽으로 도주하다 아군의 기습공격으로 많은 병력손실의 피해를 입었다. 이때 아군은 76자주포 5문도 노획하여 폭파시켰다. 아군은 옥산포 북방 지내리에 진지를 구축하였다.
그러나 27일 인민군은 병력을 증강하고 자주포를 앞세워 옥산포로 서서히 진입해왔다. 이에 맞서 대전차포 중대장 심일 중위는 북한군 자주포를 명중시켰으나 자주포는 멈칫할 뿐 멈추지 않고 서서히 진입하는 것이었다. 이를 본 소대장과 사병 5명이 특공조를 편성했다. 특공조는 수류탄과 화염병을 들고 옥산포 보리밭에 잠복하여 북한군을 기습 공격하여 자주포 헤치 손잡이를 열어 수류탄을 넣어 폭파시켰다. 자주포를 앞세우고 뒤따라오던 북한군 역시 아군의 집중공격으로 수몰되었다.
한편 6사단 7연대는 6월 27일 전선을 고수하며 선전하였으나 동해지역 8사단이 후퇴하고 있다는 급보가 전해졌다. 이에 그치지 않고 27일 오후에 수도 서울에 인민군이 진입하였다는 통보를 받은 연대장은 더 이상 전선을 유지할 수 없게 되어 눈물을 머금으면서 홍천으로 병력을 이동하였다. 홍천으로의 안전한 이동을 위해 춘천시 학곡리 원창 고개에 2연대 일부 병력을 배치하여 이동하는 부대를 엄호토록 하였다.
원창 고개는 지형적으로는 횡격실의 특징을 갖고 있는데다가 급경사로 굴곡이 심하여 진지로는 매우 유리한 곳이다.
7연대 1대대는 27일 오후 인민군 2개 연대가 공격해오자 집중공격과 박격포를 쏘아대며 막아냈다. 결국 인민군은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해 후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7연대는 일부병력을 원창고개에 배치하고 홍천으로 이동하여 전선을 유지했다.
이 무렵 인민군 수십명이 백기를 들고 투항해 왔다. 아군이 환호하며 이들을 맞아들일 때 투항하던 인민군은 들고 있던 따발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혼비백산하며 혼란에 빠지게 되면서 결국 원창고개는 적군의 손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나 최신무장한 인민군을 대적하기에는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6사단 7연대는 산악지대와 하천에 구축한 지역에서 유탄공격으로 인민군을 제압해나갔다. 3일간이나 선전하면서 홍천으로 이동하여 홍천에서도 2일간 격렬한 전투를 치뤘다. 그리고 6월 29일 밤 10시 횡성읍 시가지로 진입하게 된다. 당시 인민군을 시가전에서 격퇴시킨 아군은 원주 이관리와 장양리, 소초면 산악지대 전선에 배치되어 인민군과 격전을 벌였다.
이때 본인은 헌병 3명을 지원 받아 원주시 시내 외각에 제천, 충주 방향 삼거리에 배치된 군과 이곳을 지나는 피난민의 원활한 이동을 위한 교통통제 안내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단공병대 상사 1명과 사병 5명이 헌병초소에 도착했다. 사단장 지시로 인민군 탱크 진입을 막도록 봉산교를 폭파 시키라는 지시를 받고 왔다는 것이다. 임무 신고를 마친 이들이 곧바로 임무를 시행할 수 있도록 폭파물의 설치를 지시하는 한편 아군이 완전 이동한 뒤에 피난민의 접근을 금지시키고 헌병대의 지시가 있을 때 폭파하라고 하였다. 원주 시가지와 봉산동 능선에는 포탄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군은 제천과 충주 방향으로 전선을 유지하고 우리 헌병은 봉산교를 폭파하도록 지시 하였다.
횡성희망신문 yongy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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