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특집 생물학자 이강운박사의 생태이야기
횡성...자연말고는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느낌이 있는 장소[생물학자 이강운 박사의 생태이야기] (9)
횡성희망신문 | 승인 2016.04.08|(101호)
1994년 계방산 탐사 시 동료와 함께. 이때 스쳐가며 만났던 횡성이라는 이름은 어딘가 촌스럽고 자연 말고는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느낌이 있는 장소였다.

영국유학을 포기했다. 당장 갈 곳, 할 일이 없었다. 체험적 생태교육을 계획했다. 탐사 도중 스쳐지나갔던 횡성. 1997년 여름, 횡성 내에서도 가장 깊은 골짜기 갑천 하대리의 연구소 자리로 이끌리듯 들어왔다. 몇 번에 걸쳐 연구소 터를 돌아보는 내내 황홀하면서도 사찰 안을 걷는 것처럼 마음이 차분해졌다. 결론적으로 참 좋았다.

영국 유학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자기는 결코 외국 가지 않고 한국에 남겠다며 고집을 부리는 아들 때문에. 내 목표를 위해 아들놈 떼어놓고 아내와 딸만 데리고 영국으로 유학 갈 수는 없었고, 소심한 아들을 타일러서 단념시키기는 더욱 어려웠다. 6개월만의 짧은 유학 일정을 모두 포기하고 귀국을 서둘렀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방향을 바꾸는 수밖에 없었지만 직장을 그만두고, 유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미 모든 재산을 다 처분해버렸는데 전혀 생각치도 않았던 돌발 상황 때문에 참 기가 막혔다. 아들의 돌출 행동으로 내 인생 지도상에도 없던 산(山)이 나타났지만 이 또한 오직 내가 짊어져야 할 인생의 무게였다. 유학 이외는 장래에 대한 특별한 계획이 없었으므로 당장 갈 곳, 할 일이 없었다. 대학 교수의 목표는 뒤로 하고 계속 생물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고 꿈에도 그리던 자연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동아일보 재직 시 만나 뵈었던 ‘ET 할아버지 채규철’ 선생께서 두밀리에서 시도하셨던, 학생들을 자연 속에서 맘껏 뛰 놀게 하며 가르치는 자연학교와 같은 생태 교육을 생각했다. 막연하게 ‘자연이니까 좋지 않냐?’ 식보다는 좀 더 구체적이고 만질 수 있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아주 생소한 이름이었지만 체험적 생태교육을 계획했다. ‘새는 철따라 쫓아 다녀야 하고 식물은 정적(靜的)이기도 하며 곳곳에 유명한 식물원이 많이 있었고 나름 식물 애호가나 가드너들은 많았다. 그러나 곤충은 작아서 카리스마는 부족했지만 가장 다이내믹(dynamic)할 뿐만 아니라 전문가 그룹은 전무한 상태였으므로 곤충을 통해 내 생각을 실현해 보자’ 이런 마음을 굳혔다.

2015년 12월 환경부와 함께 출간한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 Ⅰ’ 내용 일부. 횡성에서의 20여년의 끊임없는 노력에 대해 횡성이 나에게 준 큰 선물이었다.

곤충을 통한 생태교육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어 어렵지 않나 라는 생각도 했고, 한편으로는 생태나 환경으로 어떤 가치를 창출하고 시장성 있는 상품을 만들어 보겠다는 가능성을 생각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임시로 처가에서 숙식하며 장인 눈칫밥 먹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빨리 데려와 함께 살고 싶은 마음뿐 이었다. 충분치는 않지만 동아일보 탐사 단장 시절 갈고 닦았던 새, 식물, 곤충 지질 등의 얕은 지식만으로도 어느 정도 생태 교육에 필요한 콘텐츠는 가능할 것 같았다. 콘텐츠를 담을 연구소 장소를 물색하는 일이 중요했는데, 아무리 인위적으로 조성한다 해도 결국은 자연이 해 주어야 할 몫이기 때문에 부지 결정은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동아일보 탐사 단장 시절 탐조를 위한 습지나 철새 도래지, 식물과 곤충을 탐사하기에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 다녔다. 그 중에서도 강원도는 늘 마음을 끄는 곳이었다. 산 좋고 물 맑아 휴가철이면 모든 국민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이면서도 아직 때 묻지 않아 생태계가 온전히 보전되어 있는 강원도는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1994년 계방산의 식생과 곤충을 탐사하면서 횡성을 스쳐 지나갔고 그 때 만났던 횡성이라는 이름이 어딘가 촌스럽고 자연 말고는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느낌이 있는 장소였다.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 Ⅰ’의 인사말 부분.

1997년 여름, 횡성 내에서도 가장 깊은 골짜기 갑천 하대리의 연구소 자리로 이끌리듯 들어왔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내 키보다 훨씬 커 마치 나무 같은 개망초의 하얀 꽃이 물결치며 정글을 이루고 있었고, 계곡과 숲을 이루는 모든 나무와 풀에 애벌레가 과일 열리듯 주렁주렁 가득했고 어마어마하게 많은 나비가 나를 경계하지 않고 내 어깨위로, 머리로 나를 반기며 날아다니는 모습이 천국이었다. 가로등 하나 없어 새까만 강원도 깊은 산속에서 쏟아질 것 같은 별 빛 밤하늘을 보는 일이 나를 황홀하게 했고 험준한 산들이 에워 감싸는 굽이굽이 깊은 골짜기를 따라서 흐르는 맑고 투명한 계곡 물이 나를 움직였다. 손전등에 날아오는 뿔소똥구리는 또 얼마나 멋진지. 몇 번에 걸쳐 연구소 터를 돌아보는 내내 황홀하면서도 사찰 안을 걷는 것처럼 마음이 차분해졌다. 결론적으로 참 좋았다.

꿈은 이제 일상이 되어 20여 년에 걸쳐 횡성 생태계의 속살을 보았고 그 속살을 조심스럽게 파헤쳐 보물처럼 감추어져 있던 곤충의 사생활을 담아 2015년 12월 환경부와 함께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 Ⅰ’을 출간했다. 끊임없는 노력에 대해 횡성이 나에게 준 큰 선물이었다.

횡성희망신문  hschamhope@naver.com

<저작권자 © 횡성희망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횡성희망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스포츠
여백
신문사소개ㆍ기사제보ㆍ광고문의ㆍ불편신고ㆍ개인정보취급방침ㆍ청소년보호정책ㆍ이메일무단수집거부
(25234)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앞들서2로 23(2층)  |  전화 : 033)342-1507  |  팩스 : 033)343-1507
등록번호 : 강원아00116(2012.02.08)  |  발행인 : 합자회사 횡성희망신문 조만회  |  편집인 : 조만회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용희
계좌 : 합자회사 횡성희망신문 농협 351-0755-0672-03  |  이메일 : hschamhope@naver.com
Copyright © 2026 횡성희망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